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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히브리서 *

▼ 히브리서 9:23-28 (2) 인간 사후에 마주하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by 朴 海 東 2019. 3. 29.

인간 사후에 마주하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히브리서 9:23-28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미 성전의 휘장이 찢겨나가
성전 제사가 막을 내렸고 더 이상 의미도 없는데도
여전히 땅 위의 성전과 제사에 집착하는 히브리인들과
이런 모형적인 것에 유혹을 받아서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는 모형이 아니 실체로서 하늘 성전과
또 지상 성전에 무수히 드려져온 제사들을
십자가 희생 제물로 단번에 완성시키고
하늘 성전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의지하여 구원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9:23-26]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불과 한 세대 전[30여 년 전]에
같은 유대인으로서 같은 땅에 사셨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던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 그는 하늘에 들어가 우리를[자기 백성을]위해
하나님 앞에 대제사장으로 나아가시게 되었는데[9:24]

이는 그가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자기 백성]의 죄를 없이하시려고
세상 끝[그리스도의 초림은 옛 세대를 종결 짓는 시점임]에
나타나신 분이셨다는 것과 [9:26]

2). 사람이 한 번은 죽은 정한 이치와 같이
예수님 역시 죄를 없애는 희생을 한 번만 치루는 것으로도
완벽한 속죄의 희생 제사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며 [9:27]

3). 자신이 죄를 담당해 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재림 하실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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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사후에 마주하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9:27]

요즘으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을 만큼
막장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사람들이 죄와 그에 따른 심판과
지옥을 무서워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단번에 치루신 희생 제사와 비교하여
인간이 반드시 한 번은 치루고 들어가야 하는 죽음과
죽음 저편에 엄연히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들이 처하게 될
무서운 심판의 모습은 불못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 받게 되는 계시록의 기록에서 뿐 아니라 [계20:15]

이것을 더욱 리얼하게 회화화 시킨
미켈란제로[1475~1564]의 최후의 심판 성화에서도 엿보게 됩니다.
그는 60세가 되던 해에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 1468~1549)에 의해
이 작업을 지시받게 되는데 6년의 작업 끝에 1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면에 온갖 인간의 형상을 391명의 육체의 군상으로 그려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로 성경을 회화 화하는 작업을 완성합니다.

영감이 넘치는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가 틀림없이 단테(1265~1321)가 쓴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이 그림의 오른쪽 최하단에는 지옥으로 쫓겨 가는 악인들이 나오는데
그 중 당나귀 귀를 한 지옥 왕 미노스를 거대한 뱀이 휘감고 있고
그의 성기를 깨물고 있는바 이 지옥 왕 미노스는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

이그림을 보면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구분하는
천사의 손에 들린 책을 보면 천국으로 보내는 명단의 책은
그 책이 얇고 작은 것에 비해
지옥으로 보내는 천사의 손에 들려진 책을 보면
크고 두꺼운 것을 보면서 천국에 청함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 받은 자가 적다는 주님의 말씀에 다시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주신 말씀의 마지막 구절로 주신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가 강력하게 마음에 닿아집니다.

죄와 상관없이[Not to bear sin] 라는 의미는
죄를 품지 않는 다는 의미이며
이로써 죄를 잉태하고 사망을 낳지 않는 다는 의미입니다

종교개혁가 루터의 말처럼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새가 머리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죄악된 생각들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지만
죄가 내 안에 품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나의 선택으로 된 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 세상 끝을 살고 있는 성도로서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게 됩니다.

주님!
하늘로 들어가신 주님께서
두 번째 다시 나타나실
그 날을 기다리며
죄와 상관없이
정결한 신부로 단장하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 신앙과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