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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시편 119:17-32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

by 朴 海 東 2019. 9. 14.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

시편 119:17-32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말씀]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see wonderful things in your law.[NIV]

Open my mind 
and let me discover the wonders of your Law.[C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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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편 119편은 히브리 알파벳에서 
세 번째 와 네 번째 자음인 기멜과 달렛으로 시작되는 
각 8절씩 16절이 소개되고 있다.

세 번째 연이 되는 17-24절에서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되는 말씀을 주제로 삼는다면
네 번째 연이 되는 25-32절에서는 
내 삶의 고통 속에서 붙드는 말씀을 주제로 삼게 된다.

여기서 시인은 후렴처럼 “율법”을 들먹이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총칭하는 것으로써 이해하게 되며 

이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나의 이성과 지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강조하고[119:18]

이 말씀만이 괴로운 인생길에서 나의 위로이며 
힘이 되고 즐거움 인 것을 고백하며[119:19-20.24.25]

이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주의 은혜로 가능한 것을 고백한다. 119:29.32]

하나님의 율법[말씀]이라는 큰 틀 안에서 
시인이 고백하고 간구하는 여러 작은 주제들이
산발적으로 늘어놓아 있기 때문에 
자칫 흐름을 놓치고 산만함을 느낄 수 있는데

나 역시 오늘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마음에 닿아지는 한 구절만이라도 
묵상의 소재로 삼고 싶은 것은 119:18절에 
“내 눈을 열어 주의 말씀에서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간구하는 시인의 기도이다. 

여기서 눈이 열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마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강렬한 빛을 받는 순간 
육체의 눈은 감겨졌지만 후에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의 안수로 
그의 영안이 열려져서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를 바로 알아보고 
자신처럼 영안이 감겨져서 어둠 가운데 사는 이들에게 
이 눈을 뜨게 해주려고 복음을 전한다는 간증에서 엿보게 된다.
[물론 그의 육안도 아나니아의 안수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행9:18]

“내가 너를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건져 내어 
이제 그들에게로 보내는 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이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자들 가운데서 
유업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더이다.”[행26:17-18]

-------가이사랴 법정 청문회에서 
로마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진술한 바울의 간증-------

혹자는 영안이 열린다는 것에 대해 
신비 체험에 들어가 천국 황홀경을 본 다던가  
혹은 영적 환상을 보는 것 등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바울의 고백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눈[영안]이 열린다는 것의 가장 좋은 예는
내가 말씀 안에서 주님을 바로 알아보게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이같이 눈이 열린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요 최고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흑인 노예선의 선장이었다가
폭풍우 바다에서 회심하고 예수님께 돌아온
죤. 뉴톤은 그가 작시한 영어 찬송가 
Amazing grace에서 이 사실을 고백하는데 
이전에 눈이 멀었다 다시 뜨게 되었다는 이 찬송은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애창하는 찬송이 되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이전엔 소경이었으나 지금 나는 눈이 열려 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이나 죤 뉴톤의 고백에서 보는 것처럼 
눈이 열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오늘의 시편 119:18절에 개입하여 생각해 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 말씀을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바로 보게 되고 만나게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기도했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그렇다 외롭고 괴로운 나그네 인생길에서 
성도가 가장 사모하고 추구할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는
이 시편 저자의 간절한 소원과 고백처럼 
이 기록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살아계셔서 이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 
주님의 현존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며[Face to face]
여기서 위로와 소생의 힘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하나님과의 맞닥뜨림은 
율법서에서 자신을 직접 계시하시는 그의 말씀에서
혹은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계명들 가운데서
도덕적이며 인격적이신 그의 속성과 성품들을 보면서 
또는 율법서와 선지서에서 그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어떤 구속사 플랜[계획]을 가지시고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고 계시는지를 알게 되는 가운데서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들과 시편의 저자들의 가슴으로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전달하시는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그의 현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도 이아침 시편 저자의 기도와 고백을 깊이 공감하며 
다시 한 번 나의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여기에 다시 적어본다. 

나의 눈을 열어 
주의 법[말씀]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말씀]들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말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시119:18-20]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나도 시편 119편의 저자가 
자신의 눈이 열려져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기록된 말씀 속으로 들어가 실제적으로 직면하고 
[이것은 시편 저자의 고백처럼 실로 놀라운 일인데]
자신의 영안이 열려 그토록 보기 원했던
그 간절한 기대와 소원을 가지고
묵상[큐티]에 임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공자는 아침에 道를 깨우칠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는데 
내가 아침 큐티[묵상 시간]에 
기록된 말씀 안으로 들어가 내 눈이 열려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내가 달리 더 무엇을 바라겠으며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큰 가치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자로 오시기 500년 전 사람인 공자가 
복음을 듣지 못했지만 道[도]를 깨우치고자 했던 그 이상으로 
그리고 시편의 저자가 이 道[말씀]를 붙잡고 
마음이 상하도록까지 헐떡이며 사모했던 그 이상으로
나도 인간의 존재와 의미와 목적이 되시며 
나의 모든 것이 되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공자나 시편 저자의 절렬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매일 아침 주님의 말씀을 펼치고
기록된 말씀 안에서 주님을 찾을 때
나의 눈 열어 
말씀이 보여주는 기이한[놀라운] 것들을
나도 직면하고 목도하며
깨달아 알 수 있는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