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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1-11 첫사랑

by 朴 海 東 2019. 11. 4.

첫사랑

요한계시록 2:1-11


오늘 주신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서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첫사랑/고난을 두려워 말라는 
세가지 테마를 묵상 글로 남기게 된다. 

1.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2:1]

에베소 교회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은 
오른 손에 일곱 별[일곱 교회의 사자]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걸으시는 주님이시다

1. )일곱 별을 붙잡으신 분

여기서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양무리를 이끄는 주님의 종들을
일곱 별로 상징하심은 
비록 그들이 세상에서는 비천하게 보여도
그들은 하늘의 스타들이며
주님의 오른 손으로 붙잡혀 있는 종들인 것을 엿보게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별이라고 하심은 
이 계시록이 기록된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별을 보고 길을 안내받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주님께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심은 양무리된 주님의 성도들이 
그들의 모본을 보고 주의 길을 따라가게 하심이 아니겠는가?

교회의 지도자, 목자는 학벌이나 학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기본 요건의 한 부분은 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붙잡아 주시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요건이며
양무리의 앞장 서가는 자신들에게 이런 자각이 있고서라야
주님을 대신한 양무리의 목자이며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

지상의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호칭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일곱 금촛대로 비유하심은 
교회가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이는 역활을 한다는 것과 
또 주님께서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신다 하심은
그가 하늘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요
오늘도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의 교회들[성도들] 가운데 와 계심을 암시하고 계신다.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게 하신 그분이
그의 수고를 통하여 지상에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함께 와 계신다는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교회는 이 지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존귀한 자들의 모임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

교회가 세상에 비아냥 거리가 되는 지탄 받는 지금 이 시대에도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잊지 말고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교회 사랑을 배워야겠다.

적용하기

2. 첫 사랑 [2:4]

에베소 교회에 찾아오신 주님의 많은 칭찬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르게 단 한가지 책망으로 주신
첫 사랑을 버렸다는 한 마디 말씀이 
모든 칭찬을 상쇄하고 남을 아픔으로 닿아진다. 

주님은 첫 사랑을 그리워하신다. 
바울이 아데미 여신 숭배의 도시 에베소에서 3년 반동안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쳐서 세워진 이 교회가 
어느 덧 한 세대가 지나가면서 사도 요한이 맡을 때 즈음에 
이 처음 사랑이 식어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아니었던가(?)

당시 예수님과 같은 한 시대 안에서 함께 지냈던 그의 입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천금같은 것이었는데 
그가 강단에 제대로 서기도 힘들어진 말년에 이르러서는 
제자들이 부축하여 강단에 세우면 
소자들아! 사랑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서로 사랑하라! 는 
이 한 마디만을 입버릇처럼 후렴처럼 강조 했다고 한다. 
(아마 예수님께서 이 교회를 향한 책망을 만회하기 위한
첫 사랑의 회복을 바래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만큼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성도들간의 형제 사랑이요
이 것이 곧 주님께 향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이 계명에 답고 있다.

그렇다면 이 첫 사랑이란 무엇인가?
1996년 가을부터 1997년 봄까지 방영되었던 KBS의 드라마 첫사랑은 
평균 시청율 40%를 오르내리고 심지어 60%까지도 가는
국민 드리마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인식되고 있는데 
영화관 주인 집 외동딸 효경[이승연 역]과 
영화관 간판쟁이 아들 찬혁 [최수종 역] 사이에 신분을 넘어서는
그 애틋한 (첫) 사랑이 드라마 곡에 실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이 첫 사랑의 회복을 요구하심은
교회 성도간 사이에 형제 사랑이 
수준과 신분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故 옥한흠 목사님이 기독교 방송에 나와서 대담하는 것을 보니 
처음 강남에 개척할 때 은평교회란 간판을 걸고 시작하고
가난하고 구차한 사람들이 초창기 멤버들이 되었었는데 
점점 강남이 개발되면서 부유층들이 들어오게 되자
결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되었다고 한다.

옥 목사님께서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을 붙잡고 제발 이러지 말라 하여도
그들은 목사님은 몰라서 그래요 하면서 하나 둘씩 밀려나가고 
결국은 부자 교회로 남겨져 오늘 날의 사랑의 교회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고백을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옥 목사님은 교회의 본질로써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은평 교회를 사랑의 교회라고 바꾸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간판쟁이 아들 찬혁이와 부자집 딸 효경이 사이에 오간 
애틋한 첫 사랑의 이야기처럼
진정한 사랑은 삶의 수준과 배움과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일 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교회의 능력이라는 것을 엿보게 한다. 

오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에 이 사랑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며
교회 안에서 한 지체된 사람들[성도들]을 대할 때 
물질의 다소나 배움의 유무 혹은 외모 등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가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실만큼 
사랑하신 형제요 자매로 나도 받아 드리고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기도하기

3.  (시련을 당하더라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2:10]

최근 3일 동안 마치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같은 
그리고 감히 예수님께 비교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무덤 속의 3일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차마 현지 사정상 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이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 배가 자주 아파서 
화장실을 들랑거린 횟수가 많아졌고
마음이 짖눌려 식사도 뒷전이었으며 
잠도 깊이 들 수없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침내 오늘 아침 각오하고 침상 머리에 머리를 대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바로 이 말씀을 주셨다 
고난을 두려워마라! 
혹 고난이 오더라도 
그 고난은 상징적 제한 기간이 있는 십일 동안 뿐이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 말씀을 받아 드리기가 어려워 기도 속에서 신음하는 나에게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하신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격려하셨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네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 27]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신 말씀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말씀 이었다.[요16:33]

그래서 나는 지난 3일 동안 내 마음을 짖눌렀던 그 문제 앞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였으며
정확히 오늘 오전 11시 지난 3일동안 극심한 고통이 되었던 
이 문제를 벗어나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3일의 시간을 통하여 나는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불안과 근심 걱정 초조 두려움을 갖고 찾아오는 마귀를 물리치는 비결은 
나를 두렵게 만드는 그 문제에 집착하여 스스로 쫄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처지의 문제가 되었든 담대함으로 정면 대결하고 나갈 때 
풀려지는 것임을 산 경험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주님! 
평소에 소중한 것인 줄 몰랐던 것들이 
내가 고통 가운데 처하여 힘들게 되었을 때
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나는 죽고 주님으로만 사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나의 남은 인생의 빈자리를
나를 통해 사시는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을 경험하는 영적 실제의 삶으로 나를 이끌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