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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3:1-8 Are you born again? [2]

by 朴 海 東 2020. 1. 8.

Are you born again? [2]

요한복음 3:1-8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첫 번째 유월절 예루살렘 방문에서 
성전청결 사건을 시도하신 것 외에
사람들이 자신을 믿게 하는 표시로써 많은 표적도 행하셨는데 
그러나 이 표적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은 아님을 아셨다

그래서 바로 앞선 문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믿었으나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했으니 
이는 그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라로 마치고 있다.[2:25]

이제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이어지는 3장에서
예수의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구원받을 믿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기적 믿음에 머물러 있었던 한 사람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은 어떻게 거듭나게 되는지 구원의 계시를 전달하는데

당시 니고데모는 당시 율법 준수에 대해 최고의 경건파였던
6천여 명 바리새인에 속했던 사람이고 
사회적인 명망으로는 유다사회를 지도하는 
72인 산헤드린에 속하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 인사 였다. 
이런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독대를 청한 것인데
이 모든 것을 엿들은 요한은 그 때 일을 회상하면서 
지금 인간의 최대 관건이 되는 구원/거듭남의 계시를 전하게 된다. 

참고로 요한복음 3장에서 표적 신앙에 머물렀던 이 니고데모는 
후에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가 말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게츠름하게 눈을 뜨게 되고[7:50]
요한복음19장에 이르러는 거듭난 예수의 제자가 되어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져오기도 한다. [19:39]

1. 거듭남(Born again)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 오고간 그 날 그 밤의 대화에서
가장 관심 있는 주제로 묵상하게 되는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가져온 기대 섞인 질문과 
이에 대해 마치 동문서답같이 보이는 예수님의 답변 이다 

니고데모: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당신이 행하신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짧게 오고간 이 첫 번째 대화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먼저 예수님의 답변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 이다
마태/마가/누가 공관복음에서는 이 "하나님의 나라 "가 
주제가 되고 있는데 반해 여기 요한복음에서는 
이곳에서 와 후에 빌라도의 대화, 두 곳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 왕국의 시대를 연상케 하는 하나님의 나라였는데
나라의 독립을 꿈꾸는 열심당원 중에는 바리새파가 많았고
이들은 주전 164년에 있었던 마카비 혁명을 꿈꾸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들은 주후 135년에 있었던 코크바 혁명 이후에야
정치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오직 토라 연구와 정결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니고데모의 질문 속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시는 당신이야말로
우리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분이 아니겠냐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엿보게 되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지금 이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세상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를 설명하시는 바  
그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탄생에서부터 주어진 이름처럼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곧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의 왕으로 오신 분인데 
지금 니고데모는 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거듭남 곧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어서]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생[랍비]정도로만 보일 뿐 이었고 따라서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듣기에는 동문서답 같은 답변을 하신 것이다.

즉 네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지금 네 앞에 앉아있는 내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온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네가 알 수 있으련만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나를 알아보는 눈이 닫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영적 출생인데 
이미 요한복음 1:12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나의 왕, 나의 구주로 모신 자들로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인 것이다


2. 거듭남의 비밀 [어떻게 거듭나는가?]

현재 우리 한국 교계에 알려진 세칭 구원파 사람들은
거듭남/구원에 대해, 기독교 역사 초기에 나타난
영지주의 이단들처럼 한 번 “깨달음”을 얻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이며 거듭난 것으로 강조하면서 
구원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말함으로 
자신들의 대단한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 것처럼 자부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다.
구원 곧 거듭남은 내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될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거듭난 자로서 성화성장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나의 평생에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주제가 되는 거듭남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이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하신다[3:5]

여기서 예수님은 구약 에스겔을 배경으로 말씀하시는데
물로 씻음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심으로 [에스겔36:25-28]
새사람 곧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신 셈이다.

물은 구약의 의식법상 어떤 대상에게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것을 상징했는데[례11:32. 민19;12. 31:23]
이것이 신약으로 와서 죄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된 것을
상징하는 물세례의 예표가 되었다.[행19:3]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으로
거듭남 곧 중생의 주도권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되는 것임을 밝히시는 바 
니고데모가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할 길이 없음으로 
예수님은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로 이야기 하신다

바람과 영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데 
히브리어 “루하흐”와 헬라어“퓨뉴마”가 그것이다.
유대인 이면서 헬라의 사고에 익숙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바람과 성령을 관련시켜서 설명하신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을 설명하기 위하여
바람과 영[성령]으로 설명하시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불현 듯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골짜기의 뼈들이 생각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그의 영으로
그를 골자기로 데려가 많은 뼈들이 있는 것을 보이시며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고 물으셨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셨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37:1-5]

그리고 그 날 그 환상 가운데서 벌어진 일은
에스겔이 주의 말씀을 대언할 때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는 형체가 되었고 
이어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여 
이 사망을 당한 자들에게 들어가라고 하였을 때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겔37:6-10]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이야말로 
죄와 허물로 죽어 마른 뼈와 같이 된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거듭나게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엿보게 하는데 그것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사람은 어떻게 거듭나고
어떻게 새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또 이 말씀을 뒷받침 해주는 
구약의 배경들을 생각해보면서 
오직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역사와[엡5:26]
죽은 영혼 가운데 바람 같은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겔37: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요3:5b]

그리고 구약과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어받아서 
우리에게 놀라운 거듭남의 비밀을 재해석 해주는 
신약 성경 속의 사도들의 글에서 재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