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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3:9-21(3) 그 후 니고데모는 어찌 되었을까?

by 朴 海 東 2020. 1. 9.

그 후 니고데모는 어찌 되었을까?

요한복음 3:9-21


어느덧 겨울의 한 복판으로 들어왔는데 
지난 3일 동안 눈이 아니라 비가 내렸다
만일 눈으로 내렸으면 
많은 함박눈이 내렸을 것인데
그 대신 겨울치고는 많은 비가 내렸다 
아마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 담장 가를 지나며
꽃이 백옥같이 크고 예쁜 목련나무를 보니
목련의 봉오리들이 봄인가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가 도로 들어간 듯이
조금은 틈새가 벌어진 
볼록한 봉오리들을 달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온난했던 지난 3일을 뒤로하고
오늘 아침은 영하의 날씨로 시작된다. 
지난 6일 소한[小寒]이 지났고 
오는 20일 대한[大寒]이 지나면
다시 봄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2월로 들어서게 되는데 
벌써 서풍의 노래 詩처럼 
“겨울이 깊으면 봄은 멀지 않으리”가 떠오른다. 

이아침도 새벽을 깨어 일어나 
천하제일지서[天下第一之書]로 평가받는 
요한복음 묵상에 들어가면서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의문들을 생각해보며 여기에 남긴다. 

1. 요한복음3:16절은 
예수님의 직접 하신 말씀인가?

성경 중의 성경으로 
성경 전체를 대표한다고 하는 
요한복음3:16절에 대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나눴던 
그 밤의 대화를 요한이 상기 하면서 
예수님 승천 후 60여년이 지난 후  
이 책을 쓰게 되었을 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지난 일을 회상하며 
자신의 설명[해설]을 달은 것인가(?)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한
내가 가진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모두
빨간 색으로 칠해져있는데
오늘의 말씀 요3:9-21절은
모두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이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승천 후 
대체로 60여년이나 지나간 그 때  
성경 저자들이 어찌 그 말씀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겠느냐고 하며
모두가 후대 성경 저자들이
말을 만들어 쓴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보아도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분명한 
직접 화법의 글인 것을 보면
요한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수님이 하셨던 대화로써 [3:9-15]의 말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믿게 되며

다만 직접 화법으로 기록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들은 [3:16-21]
요한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기록한
묵상적 설명[해설]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중의 성경이며
성경 전체를 한 구절로 요약하는 
요한복음 3:16절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꿀벌이 꽃에서 꿀을 빨 듯 나의 평생을 두고 
거듭 묵상할 말씀으로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2. 그 후 니고데모는 어찌 되었을까?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니고데모는 영에 속한 일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 
자연 그대로의 사람(자연인)으로 보인다. 

사람의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해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냐고 묻는 그에게
예수님도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하셨는데
다른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영적으로 캄캄한 
밤 같은 인생들인 것을 말씀하신 셈이다. 

그들은 매시야가 오시는 날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구원받을 조건으로써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마치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구원의 방법으로써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져서[십자가에 달려서]
그를 바라보고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놀라운 구원의 계시를 전달하신다. [3:14-15]

밤에 예수님께 찾아왔다가 
영적코드가 맞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쓸쓸히 돌아갔을 
바로 그 니고데모를 위해 
예수님이 기도하신 듯 
그는 마침내 후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을 
요한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일찍이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3:14
모세의 놋뱀이 바로 이 분인 것을 깨달은 것같다]

그가 당시 그토록 높은 신분의 사람이지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진리를 찾았던
그 구도자의 모습만으로도 
그는 진리의 문에 가까이 섰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것인지 요한복음 7장에 들어가서 
그는 게츰츠레 하게나마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데 [요7:50-52]

놀랍게도 이 복음서의 끝 부분에 가서
그는 이제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 시체가 내려졌을 때
아리마데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정중히 장례하는 사람이 된다. 

그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
가져온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은[요19:39]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여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은  
마리아의 향유 옥합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영적으로 캄캄했던 자연인에서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영접한 성령의 사람이 되었고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을 
요한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 것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진리를 찾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니고데모를 예로 들어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