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4:43-54 말씀에 의지하는 행동하는 믿음

by 朴 海 東 2020. 1. 15.

말씀에 의지하는 행동하는 믿음

요한복음 4:43-54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가는 오늘의 말씀 이해하기]

예수님이 공생에 초기에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성전청결 작업과 또 많은 표적을 행하신 것은(2:23)
매시야로써 자신의 등장을 전국구로 알리시는 
적절한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한 편 이때부터 예수님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는  
시기심과 경쟁의 경계 대상으로써 
위험한 표적의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니고데모 같은 존경받는 인물은 예수님께 찾아와 
존경을 표시하고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에게는 경계 대상 1호로 지목된 것 같다.

따라서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를 떠나 
요단강 쪽으로 올라가 자신의 지원자가 될 수 있었던 
세례 요한의 변경된 세례 터로써 애논 근처로 가셨는데 
매의 눈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그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고자 
그곳까지 추적하여 따라와 예수의 동태를 감시하였으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그 곳 세례 터를 떠나 [4:1]
다시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가신 것을 당연한 수순 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까지
일찍 단명하게 목숨을 잃으시면 안 되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는 시점까지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시간 관리가 필요하셨다. 

바로 이 점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대부분의 시간이 
북쪽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지지고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도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는 
명절과 같은 특정한 기간에 제한 되었던 것을 엿보게 된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이제 예수님이 갈릴리 쪽으로 오신 과정과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는데 
세례요한의 변경된 세례 터에서 가까운 요단강에서 떠나 
사마리아 수가 성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복한 이틀을 보내시고 갈릴리로 향하면서 
갈릴리 사역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의미심장한 마음을 담아 남기신다. 

"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하느니라." [4:44]

1. 유명세를 타는 것보다 명예보다 소중하게 여기신 것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누가복음의 저자도 남겼는데 
에수님이 자신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그의 놀라운 가르침에 비해 그는 고작 
목공소 집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눅4:22]
예수를 배척하는 분위기에서 사용했다. [4:24]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요한이 오늘의 본문에서 밝히는
예수님의 입에서 스스로 나온  이 말씀은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의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

달리 이야기 하면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위협이 존재하는예루살렘과 유대지역에 비해 
이 곳 갈릴리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나의 성장 과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거나 높이지 않는 분위기가 될 것이니 
당분간은 목숨을 보존 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리기까지는
목숨을 보존하기를 원하시는 것 때문에 
너무 빨리 유명해져서 목숨을 단축하기보다
오히려 높임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신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에서 천국의 일꾼된 나에게도
사람들에게 유명해지는 것과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밝혀주는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마음 깊이깊이 새기게 된다.



2. 다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표적 [4:46 ?54]

요한은 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 책의 결론부분에 가서
예수의 행하신 표적이 많고도 많지만 
이 책에 다 기록할 수 없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선별하여 기록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요20:30-31]

이런 의미에서 여기 갈릴리 가나에서
지난번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표적 외에 
또 다시 먼 곳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쳐주신 이 표적 역시
그의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선별하여 기록한 표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갈릴리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죽어가는 자기 아들을 살리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인데 
그의 집이 갈릴리 호수의 중앙 북쪽 해안 도시인
가버나움에 거주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당시 갈릴리 지역과 베례아 지역은 헤롯 안티파스가 
분봉 왕으로 지배했는데 아마 이 신하는 가버나움에서
왕명을 받들어 집행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곳 가버나움은 또한 이 책의 저자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가나까지는 
16마일 약 3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신하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가버나움으로 따라가기보다는 
그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가기를 유도하셨는데 
이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야 믿는 기적추구적 믿음보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에 서기를 바래서 하신 것이다[4:48]

왕의 신하는“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는 그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중에 자신이 집에서 아들이 살아난
이 기쁨을 전하러 오는 종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살아난 시각이 예수의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인 줄 알고
저와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4:53]

갈릴리 가나에서 먼저 번에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질을 변화시는 창조주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었다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그의 신적 능력을 
또 다시 한 번 드러낸 셈인데 
이 책의 저자 요한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님이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신다.

그러고 보니 이곳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의 제자 나다니엘[바돌로매]의 고향이기도 하다.[요21:2]
그 역시 친구 빌립에 의해 예수님께 인도받았을 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예수의 신적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기도 한데 여기 자신의 고향 가나에서
다시 한 번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예수의 신성을 본 셈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가장 인상 깊게 닿아지는 교훈은
왕의 신하가 예수를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기를 원했다가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면서 노중에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4:50]

자신의 눈앞에서 기적을 보기 원하며
기적을 보고서야 믿겠다는 기적추구적 믿음보다 
말씀의 권위를 의지하는 계시[말씀]의존적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이신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오는 내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않으면서도 믿게 되는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미리 주신 말씀으로도 받아드리게 된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 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말씀[계시]에 근거하여
나의 믿음을 가지며 그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인데 
이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사람을 상대하시는 그의 인격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하신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을 
내가 실천하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타내보일 때
이러한 나의 믿음에 반드시 반응하여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