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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5:10-18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by 朴 海 東 2020. 1. 18.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0-18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세 가지를 묵상의 소재로 삼게 된다
1.  네가 ~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5:10)
2.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

3.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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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청결 사건으로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청년 예수의 명성을 만인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었지만
한 편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드려졌고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을 위해 구축해놓은 
사회 안전망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표적이 되게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북쪽 갈릴리로 가서 사역하시는데
이렇게 피해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절 기간을 이용해서라도 
충돌이 불가피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야 했고 
이러한 우려는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38년 된 병인을 고치신 사건은
그 병인이 고침 받을만한 믿음이 있어서라기보다 
이 병자를 통해 (광야)38년으로 상징된
당대의 병든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가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드러내시기 위함인 것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 되며 
이것은 그가 안식일에 병을 고친 것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1. 안식일인데  네가 ~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5:10)

그날 안식일에 38년간 누워 지냈던 그 병인이 고침을 받고
예수의 명을 따라 자신이 누웠던 침상 도구를 들고 갈 때
이를 목격한 유대인들은 곧장 반사적으로 
"네가 ~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5:10)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외에 
그들이 안식일 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더욱 번쇄하게 쪼개 
세분화 시킨 39개 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지적한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는 안식일 법 하나만으로도
일반 서민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닌 
사람이 만든 법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얽매는 조항들 이었다.
예수님이 다른 날들도 많이 있는데 
굳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같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당시 잘못 굳어진 유대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고 개혁이었다.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 계명의 기본 정신은
사람이나 가축을 기계처럼 부리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은 쉼을 갖도록 하여 
그들에게 숨 돌릴 여유를 갖게 하라는 것인데 
이런 것은 간과되었고 사람들을 더욱 옭죄는 계명이 되었으니
예수님은 지금 스스로 안식일의 파괴자로 보이면서까지 
당시 기득권 세력들을 향해 이 문제에 정면 도전을 하신 것이다.

(안식일에) "네가 ~케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는 이 구절이 
여기 성경에 쓰여 있고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의 단초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오늘도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세우고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남을 정죄하는 너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지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그 계명에 담겨있는 
바른 정신인지 너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으로 닿아진다.

2.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
See you are well again
Stop sinning worse may happen to you.”

이 구절에 대한 말씀은 원문 또는 영어 성경 버전에서 
뜻이 더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예수님이 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그의 믿음이 촉발시킨 기적이라기보다 
이 기적을 통해 유발될 어떤 일들을 염두에 두시고 
병인을 고쳐주신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병자는 고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과는 바른 관계가 아닌 것이 드러나 있다. 

너에게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 발생되지 않게 
지금 죄를 짓고 있는 상태를 멈춰라! 
(“Stop sinning worse may happen to you”)

예수님은 여기서 그의 잘못되어 있는 상태를 
현재 진행형 죄로 지적하셨는데 
이는 그가 고침을 받아 육신을 회복되었으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아닌 것에 대해
현재 진행형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그는 얼마 전) 안식일에 너를 고친이가 누구냐고 질문했던 
바로 그 사람들(5:12)에게로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밀고하는 것을 본다. [5:15]

주님께서 그 병인을 따로 만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육신의 질고를 고침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치유 회복되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되지 않을 때
더 나빠질 수 도 있다는 것을 이 말씀 속에서 배운다.

적용하기

3.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5:18)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히브리 언어에서 모음은 빼고 자음으로만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며 혹은 아도나이[주님]으로 부르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하며 동등됨을 말하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 내지는 자기 정체성을 노출시키는 이 말씀은
폭탄선언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로까지 몰고 가는 말씀이 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어
자신을 계시하게 하시는 이 사역을 마냥 미룰 수 없어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자기 신분을 드러내시며 터트리시게 된다. 

요한이 주후 90년경에 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 
왜 그는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가장 큰 충돌이 된 이 폭탄선언을 
이 성경 계시의 말씀에 들어가도록 쓸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것은 이 충돌이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요한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초기 교회 당시까지도
이 기독론적 논쟁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하게 된다 

엊그제 볼일이 있어 이태원에 갔었는데 가장 놓은 언덕 위에
이슬람 본당 사원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아치 형태로 되어 있는 문 입구에 
“알라(하나님)은 한 분 이시고 
모하메드는 그의 사도시다”라고 아랍어와 한글로 쓴 것을 보았다

이것은 이슬람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데
그들은 예수가 선지자는 될지언정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받아 드릴 수 없는 이신론(二新論)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이 점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면서
이신론(二新論)의 오해를 불식 시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심을 강조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이 계시를 깨닫고 예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으며
오직 그를 통해서만 아버지께 이를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랴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 삼위일체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며
창세전부터 감추어 있던  이 놀라운 계시를 우리에게 알리시려고
그 수많은 충돌을 돌파하시며 마침내 십자가로까지 가신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에 이 아침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