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에서 배우는 값진 교훈들
요한복음 6:1-15
앞선 5장에서 AD 28년 오순절[맥추절]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기독론적 논쟁을 뒤로하고
요한은 년차 적 순서를 따르는 기록에 매이지 않고
거의 1년 뒤에 있게 되는 AD 29년 유월절이 가까운 무렵
갈릴리 바다의 동편 벳세다로 무대를 옮겨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계시한다.
요한복음서에는 일곱 개의 기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오병이어 기적은 네 번째 표적으로써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을 통해
질[質]을 변화시키시는 창조자 되심을 드러내셨다면
오병이어 기적은 양[量]의 변화를 이뤄내시면서
또 곧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풍랑의 바다를 걸어오신
수상보행[水上步行] 의 기적을 통해
그가 인간 한계의 법칙들을 유감없이 뛰어넘으시는
이 세상과 질서의 창조자시며 주관자이심을 보이시는데
이는 앞선 5장 유대인들과의 기독론 적 논쟁에서 강조하신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오신 것을 이렇게 증명하신 셈이다.
오병이어 기적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나타내셨다고 보이는데
한 가지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때가 저물어 가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기 위한 동정심에서 베푸신 기적이면서
둘째는 이 기적으로 제자들의 믿음을 일깨워주는 목적이 있었고
세 째는 이 표적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내심인데
이것은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 되시는 것을
이 기적 후에 이어지는 긴 강화에서 [6:22-69]에서 확인하게 된다.
1. 굶주림을 외면치 않으시는 동정심이 일으키는 기적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때가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자기 옆에 있고 싶어하는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가운데 베푸신 기적으로 소개하는데 [막6:34]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여러 가르침과 아울러
육신의 굶주림과 목마름도 외면치 않으시는 긍휼의 발로로써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이 기적을 창출하게 되는 것을 보며[마14:14]
전도/선교에서 복음이 우선인가 빵이 우선인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긍휼히 여기며 민망히 여김] 이 있으면
여기서 기적이 나오게 되고
복음과 빵 이 두 가지는 다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오늘 저녁 파탄 지경에 놓인 한 분을 만나러가게 되는데
나의 형편상 물질로 도울 수 있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그보다 그 분을 향하여 더 중요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내 안에 고갈되어 있음을 주님 앞에 회개하면서
내가 내밀려고 준비한 오병이어같이 작은 분량이라도
주님께서 크게 역사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2. 이렇게 말씀하심은.......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6:6]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이 직접 부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제자이며 베드로와 안드레와 함께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다 [요1:44]
여기서 벳세다 지명이 가진 의미는 “많은 물고기의 집”인데
예수님이 그곳 벳세다 출신 빌립에게 그리고
그 지명이 가진 의미를 따라 기적을 행하신 것이 이채롭다.
예수님은 빌립이 산술적 계산으로 어떻게 할 것을 다 아시고
질문하셨다고 하는데 이로써 빌립 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많은 이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성적 사고의 한계에 갇혀서 무한 자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부족함에 허덕이는 신앙을
일깨워주심에 이 표적 행하심의 또 다른 목적을 보게 된다.
당시 무리의 수효가 여자와 아이 외에 남자만 오천 명이니[마14:21]
회계를 맡은 유다의 돈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턱없이 모자랄 것이므로 조금씩만 나누어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라고 답변하였다
신앙생활에서 때로 이성적 사고를 뛰어넘는 믿음을 발동하지 않으면
우리[나]역시 빌립처럼 항상 부족함에 허덕이게 될 것을
이 대화에서 배우게 되며 무한 자원이신 주님을 의지함으로
부요한 마음의 부자로 살아야 할 것을 이 대화 속에서 배우게 된다.
적용하기
3. 빵의 메시야,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속하시는 메시야로 따를 것[6:14-15]
갈릴리 바다를 내려다보는 벳세다 언덕 위에서 베풀어진
광야의 식탁으로써 오병이어 기적에서 그 나눔에 참여한 사람들은
광야 이스라엘이 받아먹은 만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 분이 곧 모세가 말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여기게 되었으며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다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으로 보인다.
당시 남자만도 오천 명이요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인구가 많지 않던 그 시대에 인구비례로 어마어마한 무리인데
그곳에서 예수님은 왕으로 옹립될 수도 있는 위기를 맞는다.
그가 오신 목적은 빵의 메시야,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심이기에
예수님은 무리의 오해와 위기를 피해서 혼자 산으로 도피하신다.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심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며
한 순간도 이 목표에서 이탈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예수의 이름을 앞세우고서라도 정치판에 뛰어들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얻고 세를 과시하려는 것들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는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교회를 끌어들여서
세를 과시하려하고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은
얼마나 잘 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인지를 배운다.
주님!
임금 삼으려는 무리를 피하여
홀로 산으로 올라가신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시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시대적 소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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