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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8:48-59 예수님의 기독논쟁에서 보게 되는 것[2]

by 朴 海 東 2020. 2. 4.

예수님의 기독논쟁에서 보게 되는 것[2]

요한복음 8:48-59  예수님의 기독논쟁에서 보게 되는 것[2]


어제 중국 우한에서 사역하는 분으로부터 보내진 편지를 
제3자를 통하여 받았다. 
2019년 2월 중국 정부는 종교규례를 발표하여 
중국 내 가정교회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삼자 교회들을 중심으로 
체제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하북성 우한이 이 종교 정책의 시범지가 되어 
교회 핍박이 가장 심한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48개의 교회당이 강제 폐쇄 되었고 선교사들은 추방 당했는데 
이번에 우한에서 발생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공무원 중에
제일 먼저 사망한 사람이 종교정책을 수행했던 사람이라고 하니
이 역시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꾸며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망 기사가 신문에까지 나왔다고 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아무쪼록 중국 당국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을 통하여 
교회 핍박(교회당 파괴. 성경책 불태움. 십자가 내림. 
교회당 마다 CCTV 설치와 감시. 국기와 시주석 초상을 걸게함. 
예배 시간에 정부 선전 시간 넣음. 교회 집회 봉쇄. 선교사 추방.
교회 지도자들 수감 등 등) 더 이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도록 

그리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매시지를 듣고
깨닫고 회개하며 만유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지금도 핍박과 통제 아래서도 은밀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곳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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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기독논쟁에서 보게 되는 것[2]

초막절기 끝무렵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 있었던
예수님과 유대인들(산혜드린 의원들을 포함한 다수의 유대인들) 사이에
오고간 메시야 논쟁에서 오늘의 말씀은 이 논쟁의 정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이제 그가 메시야(그리스도)인가 아닌가의 차원을 떠나서
자신을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 주장하는 것 때문에 
이 참람한 말을 견디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 죄로 몰아 
돌로 쳐 죽이려는데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보여준다.
[당시는 헤롯 왕에 의해 성전 건축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돌로 쳐 죽일 석재[돌]들을 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공사장 부근에 널부러져 있었던 것 같다.]

율법에 의해 계시된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삼위 하나님의 제 2위(二位)로서 자신을 주장하는 예수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의 반응은 무섭게 달아 오른 것 같다. 

한 편 이러한 논쟁의 충돌이 가져오는 위험을 뻔히 다 아시면서도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뜻을 다 이루기 위하여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증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순종의 극치를 보게 된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오고간 기독논쟁에서 발화된 열기가  
마침내 크라이막스로 터지는 부분은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분이시라"에서 방점을 찍게되고[8:54]

마침내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제 2위 하나님으로서
예수님 자신의 선재성을 드러내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까지 들먹이시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증언 하셨을 때 [8:58]
주고 받은 대화로써 기독논쟁은 파국을 맞고 분노로 폭발되었으며
이제는 주고받는 말 대신 돌을 들어 쳐 죽이려는 사태로 나간 것이다.

[자신이 돌에 맞을 위험도 감수하시면서 예수님이 증언하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 말씀의 문법 구조를 보면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
내가 아브라함 그 이전에 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그 이전부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I am. 현재형 동사를 사용함으로
오직 구약에서 하나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선언을 하신 셈인데 
요한은 이 복음서의 서두에서부터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1:1-2]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Paul-

적용하기

그런데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계셨던 자신의 선제성을 드러내시기 위해 
아브라함에 대해 언급하시며 자신을 증언하시는 말씀 가운데 
또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 구절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하신 점인데 [8:56]
믿음의 족장으로서 175세를 살고 간 아브라함 생애에서[창25:7]
특별히 어느 시점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게 되는 과정에서 보게 되면
이삭(웃음과 즐거워함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의 출생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내다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이며[갈3:16]
특별히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장차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의 방법으로써 
자신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내어 주실 것을 순종의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눅10:24. 히11:13. 벧전1:10-12]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와 위상을 우리 인간에게 알리는 계시로써
구약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에서 더욱 환하게 드러내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이 땅에 인자(사람의 아들)로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아들[예수님]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기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증언하여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완성된 계시로써 신약을 거부하고
구약이라는 계시의 프레임에 갇혀서 
성부-성자-성령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본다. 

나같은 죄인이 성삼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늘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놀라운 계시를 전달해 주심으로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시고 
또 후에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이 놀라운 사실을 확증하여 주시며 
또 우리[나]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이 놀라운 계시를 깨닫게 하시고 믿어 고백하게 하시는 주님께 
이아침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무릎을 꿇으며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