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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2:12-19(2) 주님! 나는 행복한 나귀가 되고 싶어요

by 朴 海 東 2020. 2. 17.


요한복음 12:12-19


AD 30년 유월절 5일 전 ( D-day -5]

지난 밤 마리아/마르다/나사로의 가정이 있는
베다니에서 하루를 유숙하신 예수는 
이튼 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신다. 

이 기사는 다른 복음서에도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 베다니 마을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맞은 편 벳바게 마을로 두 제자를 보내
어미 나귀와 함께 메어있는 
한 어린 나귀 새끼를 풀어오게 하시는바 [막11:1-3]
이렇게 하심은 자기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스가랴 9:9절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심이었다

이어서 베다니에서부터 따라 나온 무리들과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부터 쏟아져 나온 무리가
감람산 기슭 길가에 서 있는 종려나무 가지들을 꺾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게 된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이러한 예루살렘의 대대적인 환영 인사는 
이전 마카비 시대에 시리아 군을 격파하고
성전과 성전예배를 회복하는데 앞장섰던
하스몬가의 시몬 마카비가 [BC 142-135년 통치]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때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 세월이 흘러 
진정한 매시야로 오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사람들은 다시 그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바 
당연히 그들은 예수가 다시 다윗 왕국을 재현하여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출하여 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함 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어긋나게 
전쟁의 승리와 용맹을 상징하는 준마가 아니라 
평화의 시대에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니

이는 그가 스가랴의 예언처럼 자기 백성을 향하여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오심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이제 곧 자기 백성에게 이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과 단절시킨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내다보시면서 입성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지상생애를 마감하는 마지막 종착점이 될 
예루살렘을 향하여 입성하시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나귀의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장면이 인상 깊게 닿아진다.

요한 자신도 다른 제자들처럼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후에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절 이후에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예수님 자신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12:16]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한 웅재 씨의 "행복한 나귀" 노래가 생각난다.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수많은 인파 사이를 지나간 이 나귀는
스가랴 선지자 예언을 성취하는 바로 그 나귀가 되었는데 
예수님이 굳이 날쌤과 승리를 상징하는 군마가 아니라 
왜소하고 느리며 나지막한 나귀의 새끼의 등에 타신 것은
오늘도 그는 화려하거나 자랑할만한 것이 없어도 
겸손하여 그와 동행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등에 타시고
자기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인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드리며 
나도 예수님을 태우고 간 바로 그 나귀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한웅재님의 “행복한 나귀” 찬양 가사를 나의 기도문으로 올려드린다. 

주님!
나는 그 행복한 나귀가 되고 싶어요. 
묶여있는 저를 풀어주세요 
세상의 욕심에 죄에 
나 자신을 묶고 있는 저를 풀어주세요 

그리고 주님을 섬기게 해주세요 
주님을 등에 업고 살게 해주세요
그러면 세상은 나를 보지 않고 
내 등에 업힌 주님을 보게 되겠죠.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