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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9:38-42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매장 [埋葬 ]

by 朴 海 東 2020. 3. 13.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매장 [埋葬 ]

요한복음 19:38-42


AD 30년 봄, 유월절 (니산월 14일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의 죽음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따라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의 죽음은 
저주받은 자로서 죽음이기에[신21:22]
보통은 까마귀밥으로 던져지거나 
연고자가 있는 경우에도 가매장 정도로 처리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이 함부로 처리 될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와 상담했던 니고데모 인데
(이 두 사람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의기투합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유대 사회에서 유력한 산헤드린 의원이었기에
총독 빌라도로부터 시신을 넘겨받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함부로 처리될 위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당돌하게 예수의 장례를 위해 나섰지만 
한 편 이 일 때문에 그들의 지위를 빼앗기고 심지어는 
유대사회에서 출교 당할 수 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것 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를 따라서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자의 죽음이 되었기 때문에
시신을 장례하는 그 자체로써 산헤드린 공회에 대한 도전이고
저주받은 자의 사체를 만지는 죄와 부정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용기있게 한 것일까(?)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그 십자가 주변에서 끝까지 함께 있었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또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관심 있게 주시했는데
이처럼 용기 있는 두 관원의 이야기와 
또 그들이 준비해온 것들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 
요한 자신도 그들을 도와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한 것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 장례 절차는 매우 신속히 진행된 것 같은데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였기 때문이다
이날은 유월절 일주일 가운데 가장 큰 날인 안식일을 앞두고
예비 일로써 금요일 늦은 오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오후 3시경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것을 감안하면
안식일이 시작되는 일몰까지는 불과 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아서
자칫하면 년 중 가장 큰 날로써 유월절의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위험부담도 함께 지니고 있었는데 
어디서 매장지를 구하며 장례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긴박한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늘 아버지께서 준비하셨다
먼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키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두 사람이 용기 있게 나서게 하셨고

두 번째는 매장지가 먼 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 
다행히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서 가까운 동산 안에
요셉의 것으로 소개되는 새 무덤이 있었던 것도
아들의 죽으심 이후를 준비하신 아버지의 간섭 가운데 이루어졌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혹은 니고데모 한 사람만 등장해서는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이기에 두 사람을 예배하신 것이리라

또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사전에 서로 상의가 있었던 듯 
요셉은 자신의 매장지 새 무덤과 시신을 감쌀 세마포를 준비했고 
니고데모는 세마포 사이에 이겨 넣을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을  
약 백 리트라(72파운드/34Kg)가져왔는데 
이 정도의 량이면 왕의 장례식에서나 사용될 만한 분량이라 하니
긴박한 시간에 예수님의 시신을 이처럼 왕의 장례답게 
정중히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향하신 하늘 아버지의 손길이었으며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준비시키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하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은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에 두니[19:42]로 마쳐지고 있는데 
일몰이 되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무덤이 가까운 곳에 있어 거기에 두니라."는 이 한 구절 속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이례로 섭리하시고 준비되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자상하신 간섭하심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매장 [埋葬 ]

요한복음 19:38-42


AD 30년 봄, 유월절 (니산월 14일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의 죽음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따라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의 죽음은 
저주받은 자로서 죽음이기에[신21:22]
보통은 까마귀밥으로 던져지거나 
연고자가 있는 경우에도 가매장 정도로 처리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이 함부로 처리 될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와 상담했던 니고데모 인데
(이 두 사람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의기투합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유대 사회에서 유력한 산헤드린 의원이었기에
총독 빌라도로부터 시신을 넘겨받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함부로 처리될 위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당돌하게 예수의 장례를 위해 나섰지만 
한 편 이 일 때문에 그들의 지위를 빼앗기고 심지어는 
유대사회에서 출교 당할 수 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것 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를 따라서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자의 죽음이 되었기 때문에
시신을 장례하는 그 자체로써 산헤드린 공회에 대한 도전이고
저주받은 자의 사체를 만지는 죄와 부정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용기있게 한 것일까(?)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그 십자가 주변에서 끝까지 함께 있었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또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관심 있게 주시했는데
이처럼 용기 있는 두 관원의 이야기와 
또 그들이 준비해온 것들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 
요한 자신도 그들을 도와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한 것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 장례 절차는 매우 신속히 진행된 것 같은데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였기 때문이다
이날은 유월절 일주일 가운데 가장 큰 날인 안식일을 앞두고
예비 일로써 금요일 늦은 오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오후 3시경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것을 감안하면
안식일이 시작되는 일몰까지는 불과 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아서
자칫하면 년 중 가장 큰 날로써 유월절의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위험부담도 함께 지니고 있었는데 
어디서 매장지를 구하며 장례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말 긴박한 시간을 다투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늘 아버지께서 준비하셨다
먼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키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두 사람이 용기 있게 나서게 하셨고

두 번째는 매장지가 먼 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 
다행히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서 가까운 동산 안에
요셉의 것으로 소개되는 새 무덤이 있었던 것도
아들의 죽으심 이후를 준비하신 아버지의 간섭 가운데 이루어졌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혹은 니고데모 한 사람만 등장해서는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이기에 두 사람을 예배하신 것이리라

또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사전에 서로 상의가 있었던 듯 
요셉은 자신의 매장지 새 무덤과 시신을 감쌀 세마포를 준비했고 
니고데모는 세마포 사이에 이겨 넣을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을  
약 백 리트라(72파운드/34Kg)가져왔는데 
이 정도의 량이면 왕의 장례식에서나 사용될 만한 분량이라 하니
긴박한 시간에 예수님의 시신을 이처럼 왕의 장례답게 
정중히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향하신 하늘 아버지의 손길이었으며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준비시키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하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은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에 두니[19:42]로 마쳐지고 있는데 
일몰이 되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무덤이 가까운 곳에 있어 거기에 두니라."는 이 한 구절 속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이례로 섭리하시고 준비되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자상하신 간섭하심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덤에 매장되심을 통해

그의 생애가 보여주는 비하와 승귀 사이의 전환점을 보게 되는데

탄생-> 십자가에서 죽으심-> 무덤에 장례되심->

부활-> 승천-> 보좌우편으로 귀환이라는 전 과정을 놓고 볼 때

무덤에 매장되심은 곧 비하의 과정을 끝내시고

영광스런 승귀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아들의 장례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 시키신 두 사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운둔의 제자였지만

결정적일 때 쓰임 받았는데 나도 이런 은혜를 입고 싶다.

 

3. 예수님이 안장되신 무덤이

1) 십자가에서 처형된 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함 동산에 있었고

2) 아직 아무 사람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었으며

 

3) 이 무덤의 소유자가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인데

그는 부자요(27:57) 경건한 자며(15:43)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투표에 가담하지 않은 자(23:51)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미 예수님이 오시기 800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이 사람 부자 요셉의 무덤에 예수님이 장례될 것을 예고하신대로

성취되게 하신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이사야53:9b]

 

4. (장레를 통해 표현되는) 죽음에도 품위가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첫 생의 출발이

베들레헴 가축의 우릿간 구유(여물통)

그 핏덩이 아기가 뉘여지면서

산모 마리아를 돕는 요셉의 손길을 통해 시작됨같이

생을 마감하는 그 마지막 가는 길에서는

同名異人 요셉의 손길을 통해 장례되면서

왕의 장례와 같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보며

사람의 죽음에는 품위가 있으며

그것은 장례를 통해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나

주님의 은혜로 품위있는 장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탄생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는 자리까지 내려가심으로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생의 길을 다 거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무덤에 들어가셨지만 그 곳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광으로 들어가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친히 무덤에 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 부터 다시 시작되는

부활과 승천과 하늘 영광의 입성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나도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드러나지 못하는 은둔의 제자일지라도

결정적일 때 쓰임받을 수 있는 주님의 좋은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