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주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다.
요한복음 20:1-10
중국과 북한을 국경선으로 구분하는 압록강에서
북한 쪽 만포를 마주하는 중국 쪽은 集安[집안]이라는 곳인데
그곳엔 저 유명한 고구려의 대왕인 광개토왕의 돌무덤이 있다
여름에 단기 선교를 오게 되는 분들을 안내하여
그 곳에 여러 차례 가보았는데 어떻게 그 큰 돌들을 사용해서
무덤을 만들었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현재 이스라엘에서 관광 코스로
안내하는 예수님의 돌무덤은 확실한 위치라 아니라고 한다.
만일 그곳이 광개토왕의 돌무덤만큼 확실한 것이 되었다면
관광 코스 차원을 떠나 그곳을 우상숭배 화 했을 것이리라.)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광개토왕의 돌무덤이 떠오른 것은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후 돌 무덤에 안치 되셨는데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종교지도자들의 요청으로 빌라도 총독은 누구든지 라도
그 무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무덤 입구를 막은 큰 돌에
로마 황제의 도장까지 찍게 한 사실이다. [마27:66]
(아마 이런 도장은 색깔 있는 실리콘을 바르고 찍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덤을 지키는 군사들까지 배치했으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 돌무덤 안에 들어가 시체를 훔쳐가기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유월절기의 큰 날로써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을 지난 첫 날 이른 새벽{아직 어두운 시간에)
그 곳을 찾아갔을 때 놀랍게도 이 돌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큰 돌이 옮겨지고 무덤의 입구가 열린 것이었다.[20:1]
[다른 복음서에는 적어도 서너 명의 여인들이 동행했는데
요한은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만 기록하였지만
그녀가 빈 무덤을 보고 자신과 베드로를 찾아와 말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알지 못하겠다고 한 말에서
"우리"라는 복수의 일행이 있었던 것을 엿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요한이 기독교의 기초이며
토대가 되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하는 첫 장면에서
돌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황제의 도장까지 찍힌) 그 큰 돌이
열어 제쳐 진 것을 첫 번째 구절로 기록함에는 큰 의미가 있는 것같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날 저녁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
문들이 다 닫혀 있었지만 그 가운데 들어와 서신 것처럼
돌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그 큰 돌이 그대로 가로막고 있더라도
부활하신 영체로 그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음서에서 보는 것처럼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무덤을 가로막은 큰 돌을 밀어내고
심지어 그 돌을 깔고 앉은 것은 [마28:2]
이 글을 읽게 되는 모든 사람들 곧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향하여
주님의 승리! 곧 부활의 승리! 를 상징적으로 표시하였다는 것을
이 한 대목에서도 넉넉히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오늘의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이 무덤을 찾아온 베드로와 요한이 그 돌무덤에 직접 들어가
그들이 보고 느낀 바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 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둘러가며 감쌌던 세마포는 그대로 있고
그 안에 몸통만 없어진 것을 근거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하면서
세마포로 몸을 감싸면서 그 사이 사이에 몰약 섞은 침향을 발라
(애굽 사람들이 미이라를 만드는 것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시신은 접착성이 있는 향유를 바른 세마포 속에 들어가
(마치 누에고치의 형상처럼) 그 안에 보존된 셈인데
시신을 감쌌던 이 세마포는 그대로 있으면서 몸통만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감쌀 때
몸통 따로, 머리 부분 따로 감쌌기 때문인지
이것들이 따로 따로 놓여있었다고까지 증거하고 있다.[20:7]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들은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가
아직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근거로 해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접착성 향료로 이겨서 굳어진)그 세마포가 그대로 놓여 있으면서도
(마치 누에고치가 껍질은 그대로 두고 ) 나비가 되어 날아간 것처럼
예수님이 그 속에서 나와서 사라지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말처럼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 가져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살아 나오셨다는 것을 현장의 증거로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20:8]
만일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하여 현장의 증거 뿐 아니라
기록된 말씀으로 까지 확인하였다면 완벽한 확인이 되었을 텐데.......
그들은 믿기는 믿었지만 또한 믿을 수 없는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동료 제자들에게 연락하여 저녁에 다락방으로 다시 모이게 되고
그 밤 그 곳에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현실로 만나게 되며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부활 관련하여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르치시게 된다.[눅24:44-49]
[부활 예언들: 시 16:10-11. 110:1,4 118:22-24. 사53:11-12, 등 ]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부활 신앙을 강조하신 이 가르치심은
오늘 내가 믿고 의지하는 성경의 권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후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도 바울도
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경대로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되었다가
성경대로 [성경에 기록된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강조한다[고전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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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은 일어나서 고인이 되신 세계 C.C.C. 총재 이셨던
빌 브라이트 목사님의 마지막 남긴 글들을 일부분 읽어 보았다
그는 생애 말년에 페섬유낭종 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었는데
(이병은 요즘 발생된 코로나 19처럼
폐의 기능을 약화시켜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병이다)
그가 82세에 주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조금 더 수명을 연장 받으면서 남긴 이 책의 제목은
(죽음을 초월한 위대한 신앙인 빌 브라이트)로 나와 있다.
한 평생 주님을 신뢰하며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온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주님께 향한 신뢰와 소망을 더 환하게 밝히는데
한편 그는 이 책에서 무신론자들이 임종에 가까워서 갖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밝히고 있다.
(18세기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를 비롯하여
로마 제국의 흥망사라는 역사적 서사시를 쓴 에드워드 기본 등 등)
그들이 세상에서는 유명세를 얻었지만 죽음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워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도 밝힌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나라들과
심지어 미국마저도 정치 예술, 스포츠 등 그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모든 분야들을 셧다운 시키는 것을 보면서
이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전염병을 통해
여기 지구별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주시는 큰 교훈이 있음을 느끼는데
그 것은 곧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되어 그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사랑하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게 하신 이 말씀 앞에서
나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으로 닿아지는 것은
(황제의 직인이 찍힌)돌무덤의 큰 가름막 돌이 열어 제쳐 진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의 부활과 그 가름막 돌이 굴려 제쳐 진 것은
이제 죄와 죽음도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왔던 사탄 마귀의 세력도
모두 끝장이 났고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된 주의 성도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 한 가지 상징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주시고 확증해 주신 것인데
그 돌이 내 마음에서도 이미 벌써 굴려지고 옮겨진 것이다.
부활의 주님!
내 마음과 인생의 길을
가로막았던
모든 슬픔과 절망들을
부활하신 날
돌무덤을 가로막았던
그 돌을 제쳐 내신 것을 통해
충분히 몰아내 주시고
영광과 승리에 동참하게 해주셨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 감사합니다.
때로 슬프고 힘든 이 세상에서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더욱 아름답게 섬기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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