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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20:24-31 (2)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by 朴 海 東 2020. 3. 16.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4-31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이
그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을 방문했을 때 
그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See]
손으로 만져보고[Touch]
느껴보기 전에는[Feel]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항변한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 도마의 의심과 

(다시 한 주일이 지난 주일, 제자들의 모임에서)
그가 다시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당신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한
이 최고의 신앙고백을 이 복음서의 결론으로 제시하며
그가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을 밝히는 것으로 종결 짓고 있다.[20:31]

이렇게 함으로써 이 복음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서언으로 밝힌 로고스 찬가의 한 구절로써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를 
도마가 고백한 "나의 하나님"을 결론으로 성취시키고 있음을 본다. 

[물론 요한복음 21장 한 장이 더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부록의 형식으로 첨가된 것으로써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치유하기 위해
갈릴리 바다를 찾아가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던지신 사랑의 문답을 통해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이 
형식의 과정과 믿음의 과정을 지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따르게 된다는 완성의 과정을 밝히고 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큰 화두는 
무엇보다 도마의 의심인데 
이 도마의 의심은 오늘 우리 현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주님께 향한 동일한 의심이며 항변이요
동일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See]
그 못박혔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에 넣어보고[Touch]
느껴보기 전에는[Feel]
결코 믿지 못햐겠다는 도마의 의심과 항변은
오늘 이 시대에 주님을 믿는 우리[나]에게도 
그리고 무신론자들 가운데서도 더욱 크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해 주신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나]에게는 상대해 주지 않는 것인가?
주님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답답하고 컬컬한 의심의 구름이 걷히고
내가 더 화끈하게 주님을 믿을 수 있을텐데.......
이것은 오랫동안 내 안의 의문으로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점에서 이 의문이 풀렸다 
한 가지는 도마는 그의 신분상 열두 제자 중의 하나[20:24]
곧 우리 교회의 기초(터)가 되는 “사도”라는 점이고[엡2:20]

또 다른 한 가지는 주님께서 도마를 상대하시고 난 후에
세우신 “영적 법칙”으로써  
“복 있는 자 곧 참 믿음에 선 자”에 대한 선언이다.[[20:29]

도마가 열두 제자 중의 하나 라는 점과
그들이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신 교회의 기초석이 되고
너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었다고 하는 이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엡2:20] 

만일 열두 기초석이 되는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도마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는 세상 속의 교회는 
도마 한사람 때문에라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점에서
도마가 가진 사도 적 신분이
그토록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며
바로 이 점이 주님께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
그의 요구대로 부활하신 자신을 증명하셔야 했던 이유이다.

이 의심의 사도 도마를 상대하여 확인시켜주시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는 엄청난 고백을 이끌어 내신 주님은
이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주님을 보지 않고서도 믿게 되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영적 법칙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는 선언이다.

주님은 자신이 승천하신 후 복음의 세계화가 이루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잘못된 방법으로 믿을 것도 아셨다 
그 중의 하나가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신앙인데 
본질을 추구하지 않고 비본질에 집중하는 이런 신앙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후에 유다를 대신하여 실제적인 12 제자 속의 한 사도가 된 
바울의 글에서 잘 설명되고 있는 것을 본다.[ 골2:18-19. 고후11:14]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2:19]

이제는 봄으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고 만졌고 느꼈던 그 예수를 
(교회의 터가 되는) 사도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예수 잘 믿는 자들이고 복 있는 자들이라고 하신다[20:30-31]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