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1-23
오늘 다시 주일을 맞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분요한 가운데서
다시 맞이하는 주일이어서
교회 모임에는 가지 못하지만
이 주일에 담겨있는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가족 모임 중심의 주일을 보내게 된다.
1. 안식 후 첫날[부활의 날로써] 주일의 중요성
요한복음 20장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안식 후 첫날 새벽과 [20:1 ]
제자들의 공동체 모임에 자신을 나타내신
안식 후 첫날 저녁때[20:19]를 강조한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을
다시 만나는 날도 다시 한 주간(여드레)를 지난
안식 후 첫 날에 만나주신다.[요20:26]
주님은 자신이 부활하신 이 날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신 것일까(?)
그리고 이 안식 후 첫날 곧 주님 부활하신 날은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날의 의미로 기록되며
주님의 날[주일]로 불리어 지게 되는데
[행20:7. 고전16:2. 계1:10]
이는 우리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옛 창조의 질서 아래서 타락된 이 세상에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재창조의 역사가
주님이 부활하신 이 날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리라.[고후5:17]
따라서 태초에 천지창조가 마쳐지던 일곱 째 날에
안식하시고 복주시며 거룩하게 하신 축복이 [창2:1-3]
[구약의 안식일로써] 일곱 째 날에서부터
[신약의 안식일로써] 주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 날
곧 한 주의 첫날[주일]로 바꿔진 것을 암시받는다.
오늘이 바로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신약교회가 지켜온
주님의 날[The Lord"s Day. 주일]인데
이 날에 내려주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편다.
2. 마리아가 빈 무덤 속에서 만난 두 천사와 나눈 대화와
무덤 밖에서 만난 예수님과 나눈 대화에서 배우는 것[20:11 -16]
안식 후 첫날 새벽 맨 먼저 이 무덤에 왔던 사람은 마리아였다
그러나 그녀는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의 시체가 도적맞았는가
걱정하며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알렸고
이 두 제자는 달려와 빈무덤 속에까지 들어가
시체를 도적 맞은 것은 아니고
특별한 일이 발생된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후 다시 뒤늦게 빈 무덤으로 돌아온 마리아는
슬피 울면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다 흰옷 입은 두 천사를 보게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이 두 천사의 존재가
슬피울며 무덤 속을 들여다보는 마리아에게는 보여졌는가 하는 점이다.
영적 피조물인 천사가 육안을 가진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슬피 울던 마리아의 영안이 열려져서
천사들을 보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왜 두 제자에게는 보여지지 않고 마리아에게는 보여졌는가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있음으로 더는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젊은 시절 한 부흥집회에 가서 경험했던 것을 덧붙이고 싶다.
그 때 설교시간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통성 기도에 들어갔는데
내가 기도하는 근처에서 기도하던 한 여자[권사로 추정되는 분]이
기도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떼를쓰며
예수님께 메달려 이야기 하듯 기도하는 것을 듣고 보았다
아마 환상 가운데 그의 영안이 열렸으리라.
그 때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었다
왜 주님께서 내게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그 분에게만 보이시는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해결받지 못한 질문으로 남아있는데
베드로와 요한도 같은 경우로써 성경이 침묵하는 것을 더 말할 수는 없다.
굳이 이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마리아의 경우
예수님이 이전에 부활과 관련해 주신 말씀이나
기록된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은 그만두고
베드로와 요한이 이해하고 믿은대로
시체가 도적맞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고 믿은
상식선에도 미치지 못하고 너무 슬피 우니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잠시 그의 영안을 열어
천사를 보게 하시고 천사를 통하여 그녀의 잘못된 슬픔을 지적하신 것같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24:5]
마리아는 주님의 시체가 도적 맞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슬픔 가운데 그 시체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잘못된 시선을 돌이키게 하려고
천사를 보게하시고 전언을 듣게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3.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법 [20:15-17]
마리아는 천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몸을 돌이키는데
(천사들이 무덤 밖에 서신 예수님을 보고 구푸려
경배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몸을 뒤로 돌이킨 것일까?]
그러나 마리아가 몸을 돌이켜 본 것은 평소 자신에게 친숙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동산지기의 모습으로 보인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영적 교훈이 담겨 있는 것같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체[부활체]가 되셨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이전의 자신의 모습에만 연련하여
자신을 상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암시해 주신다
그날 오후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이들은 70문도에 속한 제자 같다] 만나시는데
이들에게는 함께 길을 가는 길손[나그네]로서 만나주신다.
예수님의 빈 무덤가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주막에 들어가
함께 식사의 빵을 떼게되면서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그 현자메서 사라지신 후 뒤늦게 예수님 이셨던 것을 깨닫게 된다.
마이라의 경우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를 상대하는 방법에서
주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가 달라야 함을 배우게 하신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20:17]
그 것은 마리아와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이 경험한 것처럼
주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주시는 그 친밀함과 [마리아야!]
또 성경을 풀어주시는 말씀 속에서 만나는 것임을 배운다.
[그가 우리에게 말씀을 풀어주실 때 속에서 뜨겁지 아니했더냐:눅24:32]
그리고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떡을 떼신 것으로 상징된 성찬식에서 이다.]
4. 마리아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주님의 말씀
너는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20:17b]
부활하신 후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더욱 친숙하게 호칭하신다
이전엔 친구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형제다[요15:14]
그리고 내 아버지는 곧 너희 아버지라고 하시는 말씀 속에서
한 없는 위로와 축복을 담고 계신다.
제자들이 이런 말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었던가?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모두 비겁한 도망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한 번 선택하시고 세우신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나도 주님 앞에 부끄러운 지난 날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도 말씀하신다
너는 나의 형제(박**),
내 아버지는 곧 네 아버지이며,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이시다
주님!
자격 없는 나에게 이렇게 불러주시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어떠함으로 사랑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처음 택하시고 세우신 이후로
변함없이 나타내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 입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흡하여
더욱 충성되게 주님을 섬기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5.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21]
이른 아침 동산에서 마리아에게 부탁하여
제자들에게 전할 희소식을 보내신 주님은
그것으로 양이 차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가시는데
그 날에 발생된 여러 놀라운 소문 때문에
그 날 밤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주님은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들이 혹시 유령을 보는가 불안하고 의심하실까봐
친히 못에 박혔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이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하신다
그렇다 이 평강의 전언은 그냥 값없이 전언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못 박히시고 찔림을 받으신 수난의 결과로 주어지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평강의 평강이 아니던가?
그래서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수난의 종 매시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안을
주전 8세기 예언의 먼 지평에서 바라보면서도
너무나 선명하고 확실하게 해설하기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했는데[사53:5]
이제 그 평화가 주님의 수난의 열매로
축복의 현실이 되고 실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안다 그 진정한 평안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나]의 죄가 제거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화평의 평안 이라는 것을 .......
이제 그 것이 주님이 보여주신
그 못박히셨던 그 손과
창에 찔리셨던 옆구리 수난의 표적을 보이시는 가운데
그의 말씀 속에서 성취 되었고 나에게 까지 오게 되었다.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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