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바라본 주님의 십자가 [2]
요한복음 19:28-37
AD 30년 봄,
유월절 기간 중 가장 큰 날(니산월 14일 안식일) 전
성 금요일, 갈보리 언덕에서 있었던 십자가 이야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가운데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중
이 책의 저자 요한은 네 마디 말씀을 전달하고 있고
또 십자가 위에서 성취된 성경 예언 중 네 가지를 증거한다.
1. 가상칠언[ 架上七言] 중 네 마디 말씀:
1)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
2) (사랑하는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19:27]
3) 내가 목마르다[19:28]
4) 다 이루었다 [19:30]
2. 십자가 위에서 성취된 예언들 중 네 가지:
1) 내가 목마르다-시22:15. 시69:3.절의 성취
2) 신포도주 적신 해면을 우술초에 매어 입가에 적셔줌[시69:21]
3)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음[출12:46. 민9:12 시34:20]
4) (뼈를 꺾는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림 받으심 [스가랴12:10]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자신이 십자가 처형의 사형집행 장에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자로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19:28-30]
이 특별한 죽음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첨가시키고 있다[19:31-37]
1. 예수의 죽으심 [19:28-30]
유대의 시간으로 3시(우리 시간으로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후
제 6시(12시)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가운데
제 9시(15시)까지 이어지면서 성전의 휘장의 한 가운데가
찢어졌다고 한 누가복음의 기록을 참고하면 [눅23:44-45 ]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6 시간을 버티신 셈인데
보통 죄수들이 십자가에서 죽지않고 매달려 있는 시간이
24 시간 혹 건장한 사람은 48 시간까지 간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신체적으로 좀 허약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공생애 3년 동안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해 내시며
많은 반대자들에게 시달리신 일과
또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무리들을 상대하시며
병인들을 고쳐주시는 등 등
집도 절도 없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거리의 전도자로서
잘 잡수시지도 못하시고 편안한 잠자리도 없으신 가운데
가르치심과 치유하심과 복음을 선포하심같은 사역들을
강행하시는 가운데 몸이 약해지고 영양실조도 있으신듯
십자가에서 쉽게 체력이 바닥나신 듯 하다.
1) 목마르심 [내가 목마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미 빌라도의 법정 뜰에서
채찍에 맞아 많은 피를 흘리신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이내 목이 마르시고
입술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
시편에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을 생각해 내시면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신다.
시편22:15절에서는 목마름의 극치를 혀가 타들어가
혀가 잇틀에 달라 붙어버렸다고 했는데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생수의 근원이신 그가 [요7:37-38]
이렇게까지 혀가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당하신 것은
우리[나]의 목마름을 해갈하여 주시기 위해서
친히 목마른 자의 자리에 서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 사람들이 신 포도주[가난한 이들의 음료] 통에
해면[스폰지 기능을 가진 것)에 적시어
우슬초[식물줄기]에 매어 입술에 적셔주었다고 했는데
이처럼 십자가상에서 일어날 상세한 일까지도 이미 다
시편에 기록되어 있음에 놀라움을 갖게 된다[시69:21]
2.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It is finished]
수동태 문장으로 되어있는 예수님의 이 발언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하게 되며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을 참고하자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로써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약에서 속죄 제사를 통해서 나타났던 사죄의 방법이
단번에 완전히 이루신 것을 말씀하심이다[히7:27. 롬6:10]
언젠가 고고학자들이 로마의 유적을 발굴하던 중
우연히 당시 사용되었던 세금 영수증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써있는 단어가 테텔레스타이 이었다고 한다.
곧 다 이루어졌다 [다 지불되었다]의 의미로써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영혼]을 아버지께 넘기시면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라고 하심 가운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의 눈빛에서
더 이상 죄의 대가로써 진노와 형벌을 찾을 수 없도록
나의 모든 죄와 저주와 죽음이 처리되었음이
2.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설 [31-37]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날
그 사형집행 장소의 현장에 있었던 증인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과 또 그 이후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그러한 일들에 발생된 것들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는 당시 초기 교회 안에 만연했던 영지주의 이단
곧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온 것을
믿지 않으며 가현설[예수가 인간의 모습만 취한 것]을
주장하는 이단들을 염두에 두면서 쓴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육신적으로 확실한 것이었으며
죽음 이후 그 시체의 처리 과정도 어떠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이 해설을 통해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 되셨던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부터 시작하여 18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신성[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처럼 십자가 죽으심과 관련하여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을 강조하심에는
당시 영지주의 이단들을 막아내고 한 의도가 엿보인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1서4:2]
1) 시체 검시관이 수명을 단축시키기 위해
다리를 꺾어서(억지로)죽이지 않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름
유대인들에게 한 주간 동안의 유월절 축제 중 마지막 날
니산월 14일이 지나는 토요일(안식일)은 큰 날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 달린
시체를 놓아둔 상태에서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그리고 율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생각하여
빌라도에게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하게 되는데
따라서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라면
망치로 무릎을 강타하여 관절뼈를 꺾어서라도 죽여야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 양쪽 옆에서 함께 메 달렸던 두 강도들보다
체력적으로 강하지 못하셔서 그런지 6시간 만에 죽으셨는데
다른 두 죄수들은 그 때까지도 살아있었음으로
시체 검시관은 무릎 뼈를 꺾어서라도 죽여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여서
확인을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조차도 모두 말씀을 성취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갖게 된다.(슥12: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유월절 규례에 의하면
유월절 의식을 위하여 잡게 되는 양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데[출12:46. 민9:1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도
뼈 꺾임을 당하지 않으신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이처럼 유월절 양으로서 돌아가실 것을
이렇게 미리 예표하게 하신 것을 성취하신 셈이다
AD 30년 봄 유월절,
예루살렘 성문 밖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은 정녕 자기 백성을 위한 유월절 양으로 죽으셨고
그가 흘리신 피의 효험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자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신다.
2)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옴 [19:34]
이책의 저자 요한은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얼마나 가깝게 다가가 그 현장을 보았는지
심지어 시체 검시관이 창으로 찌른 옆구리에서
피만 나온 것이 아니라 피와 물이 나온 것까지 증거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너희로 내 말이 참인 것을 믿게 하여 함이라고 한다[19:35]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의학 생리적으로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가장 강조되는 것은 심장파열 되어 죽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체적 고통보다 더 정신적인 고통이
수반된 현상으로써 가슴이 터져 죽으셨다는 것인데
아마 한 번도 아버지와 단절된 경험이 없었던 예수님에게
우리[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린 그 시간
아버지께로부터 단절되시고 버림받으셔야 하는 그 아픔이
가슴이 터지게 하는 심장 파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도 있는데
예수님이 “내가 목마르다” 하신 말씀과
사람들이 해면에 적신 신포도주를 입에 대주게 되는
예언의 말씀 그 사이에 나오는 시편 69:20절에는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이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는
버림받은 자의 절규가 나온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천지간에 매달린 채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훼방과 거절을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렇게 심장이 터져 죽으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주님!
십자가 아래서
조롱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하늘 아버지께로 부터도
버림을 당하시는 그 순간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기댈 곳을 잃어버린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으로
심장이 터져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은 헛되지 아니하여
옆구리를 찌른 창끝에서
피와 물이 함께 쏟아졌을 때
그 피와 물은 핏빛 꽃이 되어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오듯
주님의 신부된 우리 교회가 나오게 되었고
우리는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리신
주님의 것, 주님의 양, 주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사순절 두 번째 주간을 지나는 오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분요하지만
우리[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면서
이 하루도 주님의 사랑 때문에
살아갈 이유가 있는 이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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