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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1:34-46 때 늦은 회개는 회개가 아닌가?

by 朴 海 東 2020. 3. 25.

때 늦은 회개는 회개가 아닌가?

신명기 1:34-46


모세는 요단강가 모압 평지에서 가나안 입성을 앞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앞선 세대에게 주어졌던 율법을 다시 반복하여 가르치기에 앞서서 
앞선 세대의 선조들이 어떻게 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38년간 광야를 맴돌다 모두 사라지고 실패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무엇보다 더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불신앙이 결정적 이유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1. 하나님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에 반응하신다. [1:34]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슨 말을 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말에 대해 들으시고 반응하시기 때문이다 
개척교회 시절 어느날 마음이 너무 상해서 집사람을 앞에 놓고 
나 목회 안 해 라고 한 것 때문에 내가 받아야할 광야 훈련이 있었다. 

나는 내가 알아서 내 역량껏 목회하는 것 인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양 무리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목회이며
다만 인간 목회자를 사용하시는 것이었는데 
나는 양의 대 목자장이 되시는 주님께
 나의 시선을 두는 일에서 어두웠고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와 임재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을 경험하는 목회가 되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여기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 이야기 이기도하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 밖으로 쏟아내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거기에 대하여 반응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닫는다 

“ 여호와여!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2-3) -David-

2. 하나님은 악한 세대 가운데서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있으시다. [1:35-36]

하나님은 가나안의 진입로에서 불신앙으로 거절한 출애굽 1세대에게 노하시고 
그 세대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지만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신뢰했던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만은 외예로 하셨으며  특별히 갈렙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와 그의 자손은 그 땅을 볼 것이고 밟을 것이며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향한 
갑렙의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을 보셨고 그 믿음에 반응하셨다.
(because he followed the LORD wholeheartedly. )

후에 갈렙은 가나안 정복 사역에서도 가장 앞서는 사람이 되었고
당시 난공불락의 성으로써 아낙 자손(거인들)이 살았던 
헤브론의 정복자가 되었다.[수15:13-19]
그의 믿음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이르러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주님! 
덧없는 세월이 흐르고 겉사람은 후페하여 가더라도
속은 날로 새로워진 믿음의 사람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한 갈렙의 믿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3. 지도자는 자기가 맡은 사람들에 대해 그 시대의 영욕을 함께 짊어진다. [1:37]

출애굽 1세대들에게 가데스 바네아 이후 광야로 들어간 여정은 
그들이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의 기간이었음으로 
기쁨이 사라진 여정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반항과 반역이 많았는데 
특별히 물을 요구하며 원망하는 백성들에 대해 
므리바 물가에서 반석을 내려 친 사건은 
지도자 모세 자신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민20:12]
그러나 모세의 가나안 입성이 허락되지 않은 것은 
이미 가데스 바네아에서 결정된 것을 
후에 므리바 물가에서 재 확인 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본다. 
그 때 이미 너는 들어갈 수 없고 
여호수아가 대신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것이 예고되었다.[1:38]

무릇 한 공동체의 지도자는 
그 공동체의 명멸에 대해 운명을 함께 한다는 것을 
여기 모세의 경우를 통해 보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지도자는 나만 살아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님을 본다. 

타니타닉 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대서양의 차가운 바다에 침몰할 때 
그 배의 선장이 배의 브릿지에서 배의 운전 힐을 잡고 
배에 남은 승객들과 함께 물 속으로 수장되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모세도 자기가 맡았던 사람들에 대해 그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변화산에서 다시 만나는 모세의 모습에서 
그는 지형적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천국에 있음을 본다]

4.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1:40]

이 얼마나 청천병력 같은 방향 지시인가 
가나안이 아닌 정반대 다시 광야 길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오늘도 나의 신 불신에 따라 내가 가나안에 진입하기도 하며 
광야 같은 신앙생활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받게 된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출애굽 하여 홍해까지 건넜지만
광야에서 맴돌았던 출애굽 1세대처럼 
나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신불신에 따라 가나안이 아닌 광야에서 맴도는 
메마른 신앙생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유념한다.


5. 때 늦은 후회나 때 늦은 회개는 회개가 아닌 것인가?[1:41-46]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쏟아내게 만드는 본문이 
오늘의 말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집입로가 되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더 이상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방향을 돌려 광야 길로 들어가라고 했을 때
때 늦은 회개의 모습을 보이며 
이제라도 우리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실제로 무기를 들고 아모리 산지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말하며[1:41]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1:43]

그리고 그 결과는 아모리 족속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이다.1:43-44]
그들은 여호와 앞에 슬퍼하며 통곡까지 했지만 이게 다 무용한 것인가?

내가 아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은 때 늦은 회개라도 받으시며 
다시 기회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참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이고
아니다고 하시면 아닌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지혜로우시며 후회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가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실수함이 없으시고 가장 선한 것이다.

혹시 그것이 내 생각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중심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에서 판단하고 따라야 함이 참 믿음이다

그러나 가데스 바네아에서 거역했던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 것을 드러내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뜻대로가 아니라
자신들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정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경솔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만들어내고 경솔히 행하는 이런 모습으로 
가나안에 들어간다면 정복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착에 이르기까지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을 
미리 내다 보신 것이고 
비록 그들은 못 들어가더라도 이어지는 광야 훈련에서
제대로 믿음의 훈련을 받아 
그들의 자식들 세대에서라도 들어가게 하심을 원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달리 생각해 보면
비록 광야 38년의 여정이 고달픈 것이지만 
(이 것은 나의 생각인데)
자식을 위하여 못할 것이 없는 부모의 심정에서 생각할 때
자식들이라도 행복과 잘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받아드릴 수 있는 광야 여정으로써
깊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을 또 다시 거역했고
자신들의 마음 상태와 믿음의 수준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후에 가나안 정복시대를 지나
정착시대에 들어간 사사시대에서 
내 소견대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모습으로 재현되는 것을 보게된다

주님!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은
주님의 말씀[계시]에 응답하는 
나의 반응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내 상식과 내 생각으로
주님의 뜻을 만들어내지 않게 하시고
참 회개가 아닌 슬픔의 감정으로 
회개를 대신 하는 일이 없게 하시며
주님이 가라하시며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며
돌이키라 하면 돌이킬 수 있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