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찾는 이방인들의 눈으로 교회의 수준 가늠하기
마가복음 11:15-25
4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자신의 등장을 유대 나라 온 누리에 알리는
공생애 출발선상에서 나타내신 것과 [요2:13-17]
공생애 말기 수난 주간에 두 번 나타내신다.[눅19:45-48]
여기서 말하는 성전 안에서라는 것은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놓고 볼 때
이방인도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제수 용품에 대한 매매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순례자 자신들이 직접 유월절 희생 제물인
소/양/염소/비둘기 같은 제물들을 가져와야 했으나
성전 제사를 맡은 제사장들이 제물 검사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음으로 할 수 없이
이들과 결탁한 상인들을 통해 제물을 사야했고
성전 지도자들은 자리 세 명목으로
많은 뒷돈을 챙기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는데
예수님은 여기에 대하여 반기를 드신 것이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1:17]
이 말씀은 이사야56:7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여기서 만민은 이방인들도 포함하는 말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서도 예배 받기 원하셔서
"이방인의 뜰"도 만들게 하셨지만
이방인들이 이곳에 와서 본 것은
불결하고 시끄러운 시장바닥같이 변질된 성전이었다.
더불어 이곳에서 거래되는 제수용품들과
외국에서 온 순례자들의 환전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매매 형태에 대해
예수님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이 강도의 굴혈은 예레미야 7:10-11절의 인용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며
불의한 소득을 챙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가 속에서 터져 나와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시고 환전상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신 것이다.
많은 묵상의 소재를 남겨주는 오늘의 말씀에서
단 한 가지만이라도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은
성전 제사 기득권자들의 사욕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는 이방인들의 눈에
하나님의 이름과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의분을 터트리신 예수님의 모습인데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 시대에
이방인들(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며
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은
그의 교회된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시게 되는가? 로 적용해 보게 된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의 성전 뜰에서
예수님이 바라보고 느끼신 것이 곧
이방인들이 바라보고 느낀 것이었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 어떤지를 진단받는 것은
곧 이방인들이 우리 교회에 대해서 느끼는 것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가?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에서는 십자가를 거꾸로 달아도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종교적 심리가 하나님을 찾는데 순수했고
그 대안의 처소로써 교회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교회 역시 자본주의, 물량주의에 휩쓸려 교회를 기업화 하였고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힘이 커지고
교회의 크기와 성도 수에 비례하여 목회자의 성공이 평가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교회는 목회자들과 그들을 떠받치는 사람들에 의해
사유화 되고 사욕의 집단화가 진행되면서
이 집단의 세력과 힘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큰 교회든 중형교회이든 교회의 세습이 정당화 되는 쪽으로 가버렸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열매로 세워진
세상 속의 교회가 인간의 사유화로 전락하였을 때
세상이 바라보는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의 종교적 심리를
하나님께로 연결시킬만한 거룩한 신비적 요소를 상실해 버렸다.
요즘 우리 시대의 교회는 정부의 권위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 같다.
얼마 전 한교연(한국 기독교 교회 연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과 관련한 정부의 평가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발표문을 보았는데
교회들은 큰 소리를 치고 정부에서는 협력을 당부하는 읍소 형태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서 교회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이 정치 세력화 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고
이런 교회를 바라보는 이방인[세상 사람들]의 눈에 우리들의 교회는
예수님 당시 이방인의 뜰을 찾아와서 성전 권력자들의 횡포를 보고
도리어 실망하고 돌아가는 이방인들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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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들을 위하는 교회 중심의 역사를 보게 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지금 세상에 만연하게 퍼져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판데믹[세계적 대유행]도
그 출처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 세상 기독교 나라들과 이 땅의 교회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마음껏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의 자유를 누려온 교회들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예배가 중단된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시기는 한교연[한국교회연합]이 정부를 향해
코로나 대처를 잘못한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교만을 떨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사회에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한 우리들의 죄 때문에
이 나라에 재앙이 왔다고 회개하며 납작 엎드려져서 겸비하고
나라와 민족 앞에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할 것인데
예배[제사]하지 못하는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기고 있으니
이 재앙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 이방인의 뜰에서
이방인들이 바라보았던 성전의 모습이 곧
예수님의 바라보셨던 모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서
오늘 우리 시대 이방인들[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곧 주님의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이 두려운 각성을 가지며 오늘의 묵상을 내린다.
주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이 땅 고쳐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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