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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27:45-56 십자가를 바라보는 聖 금요일의 단상[斷想]

by 朴 海 東 2020. 4. 10.


마태복음 27:45-56


아름다운 봄꽃들이 아파트 단지 곳곳에 피어있는 이 찬란한 봄에 
그러나 가장 쓰라리고 눌린 가슴으로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게 되는 
오늘은 2020년 4월 10일 성 금요일, 아침  
주님의 제자 마태가 전하는 그 날의 기록을 펼쳐들고 
죽음으로 생명을 선물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묵상하게 된다.

간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포박 당하신 채 밤새도록 맨발로 차가운 밤의 냉기를 딛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서 계셨을 주님을 생각하니
편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왠지 모를 부담이 되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몸과 마음은 더 무겁기 만 하여서 
이른 시간이지만 숲속 기도 동산에 다녀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1. 정오(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어진 무서운 어두움 [27:45]

이 책의 저자 마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6 시간 중에
특별히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에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그 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이
하루 중 최절정의 시간인 정오(Noon)로부터 시작하여 
제 구시(오후 3시)까지 절정에 달했던 것을 밝히고 있다. 

그 때는 일식도 아니었는데 태양이 가장 밝아야할 시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세 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가운데 
그 누구도 심지어는 십자가 아래 있었던 사람들조차도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를 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어둠이 세상의 밝음을 삼켜버린 가운데 
예수님은 홀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계셨다.

온 우주에 편만한 자연계의 피조물들이 자신의 창조자가
인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 시간만큼은 
차마 바라볼 수 없어 태양조차 빛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러나 그보다 더 
“그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합1:13]
자신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한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차마 볼 수 없는 참담함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돌리셨고
그 순간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부터도 분리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자의 영혼이 경험하게 되는 
처절한 지옥의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27:46]


인간 세상에서도 가장 쓰라린 고통이라면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싫어버림을 당하고 
버림을 당하는 것이어서 행간에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도 있는데
남자들의 경우 한 때 사랑하는 여성으로부터 
버려지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폭력으로도 나타나는가 하면 
여성들의 경우는 남성 기피 증 이라던가 
혹은 결혼 포기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 수 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시며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한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분리되고 버림당하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고통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버려진 상태를 암시하는
캄캄한 어두움 가운데서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시며 큰 소리로 외치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버려짐의 절규야 말로
이아침 내 마음에 닿아지는 가장 큰 울림이다.
그가 버림을 당하셨다.
보통 버린다는 것은 쓰레기 같은 것들을 버린다는 것이며
더 이상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는 법인데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시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존재로 살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버림을 당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로 안김을 받게 되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신칭의로써 로마서 1:17절에 불을 붙인 것은
그보다 앞서 탑속의 체험으로 유명한 시편22:1절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는 시편 22편을 묵상하면서 이 버림받은 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가 
예수님 이신 것을 깨닫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찍이 주전 8세기 선지자 이사야는 수난 의 종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그가 형벌 받으심과 죽으심이 대리적 대속 적 죽음인 것을 밝혔는데
이사야 53장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3.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27:51a]

이 책의 저자 마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6 시간 쯤 지난 뒤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면서 
3시간 동안 계속된 어둠이 걷히고 다시 밝음이 비쳐지면서 
그 때 나타났던 특이한 현상들에 대해 몇 가지 기록을 남긴다.

1)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2)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3) 무덤들이 열려져 죽음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다.

여러 묵상의 소제들을 남기는 주제들 가운데서 
특별히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구약에서 드려온 무수한 동물의 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를 완성했다는 것이며 
이는 그가 친히 모든 죄악들을 그 한 몸에 담당하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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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게 되는 성 금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내 영혼의 정서적인 감동을 물같이 쏟아내는 
묵상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시작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담담히 이 글을 맺으면서도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은

십자가 사건은 나의 한 순간의 감정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안에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친히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내가 기록된 그의 말씀을 통해서 붙잡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또 그 십자가를 통하여 주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은혜와 축복을 
내가 예수님 안에서 나의 것으로 누리는 것이 중요함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그의 부르심을 따라 나의 남은 일생을 그에게 헌신하며 
그가 부르시는 제자의 삶에 나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새긴다. 

[말씀에 응답하여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 X 2)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