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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15:1-11 (2) 면제년 해방법의 실현을 위하여

by 朴 海 東 2020. 5. 21.

면제년 해방법의 실현을 위하여

신명기 15:1-11


나의 동서 이** 목사는 본래 서산이 고향인데 부모님들이 빛을 지게 되어 
더 이상 빚 갚을 능력도 안 되고 갈수록 살길이 망막해지자 
전 가족이 야반도주를 했는지 대전으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어느 날 대전에서 우연하게 채권자를 만나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이들의 사정을 훤히 알게 된 이 채주가 말하기를 
더 이상은 빚 독촉 하지 않고 돈도 받지 않을 터이니
"예수나 잘 믿으시오!" 했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가 그동안 억눌려 살아온 그들을 해방시켰는지 
너무 감사해서 그 날로 전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부모님과 삼형제가 모두 예수를 믿게 되고 목회자까지 나왔으니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한 이 채권자의 면제 선언이 
한 가족이 모두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 셈이다. 

1. 면제년[안식년]의 해방법이 주는 의미:

오늘의 말씀 신명기 15:1-11절의 말씀은 
이미 주신  출애굽기 21:1-6절의 확대 해석이다. 
출애굽기 20장에서 모든 율법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을 주신 다음에
이 십계명의 구체적인 적용을 위해 주시는 율례의 첫 번째 말씀이
출애굽기 21장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그 것은 놀랍게도 오늘 주신 말씀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빚을 지게 되어 종으로 팔려진 사람들에 대한 말씀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이 된 종들에 대해
그들을 6년간 부려먹었으면 7년이 되는 해에는 풀어주라는
면제년[안식년] 해방법을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최 하층민이 된 사람들을 위한 인권을 이렇게 보호하심으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은 더 말 할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은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수준과 관계없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셈이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노예제도는 당연한 것으로써 
사람을 상품화시켜 인간의 인간다움을 앗아버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나라들과 달라야 함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렇게 면제년 해방법을 선포하게 하신 것은  
표면적으로는 노예의 신분으로 들어간 사람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이지만 
실상은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삼는 일을 차마 볼 수 없으시며
채무에 눌려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5:2b]

그런데 면제년의 해방법은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어 종으로 팔린 경우 외에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빚을 지게 되어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관관계가 된 사람들 사이에도 해당되는 것을 보여준다.

" 매 7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15:1-2]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실천한다면 너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내가 하는 말을 따른다면) 네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15:4-5]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15:6]

일곱 째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 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5:9-10]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은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떠나서라도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 거하는 형제 중에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하신다.[15:11]

이것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며
손을 움켜지지 말라 하시는 15:7절의 말씀과 서로 대비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손을 움켜쥐거나 손을 펴는 것 같은
몸짓 언어까지 사용해 가시면서까지 리얼하게 말씀 하시는 것은
사람이 물질[돈]문제 앞에서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가를 아시기에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시리라고 거듭 거듭 세 번이나 약속하실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된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예레미야 34장은 오늘 주신 말씀과 정 반대로 행하여
파멸로 간 것을 보여준다. 

그 때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모든 귀인들이 예루살렘 광장에서 모여 
우리가 이렇게 망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면제년 해방법”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제라도 모든 노비들을 풀어주고 모든 빚을 탕감해주자는
자유의 선언을 하게 되는데[렘34:8-10]

그러나 그들은 후에 뜻이 변하여 
다시 풀어준 채무자들을 종으로 삼게 되는바 
그들이 이렇게 조석변이 같이 된 것은
마침 애굽에서 나온 군대 때문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바벨론 군대가 
일시 포위를 풀고 애굽 쪽으로 향하자 이렇게 변한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면제년 해방법과 관련하여 그들의 속내가 드러난 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로 이 점을 지적하시면서 
바벨론 군대를 다시 돌리어 
이제는 너희가 모두 종으로 잡혀가리라고 하시며 
그들을 모두 바벨론의 손에 넘기시는 것을 보여주신다. [렘34:12-22]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고 할 때 
많이 가진 것은 많이 가진 그것으로써 자랑이 아니며
갖지 못한 자들에게 자비를 실천할 기회를 얻은 것이며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은 
그 높은 자리에 있는 그 자체로써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고통 받는 자들을 자유하게 할 책임이라는 것을 본다. 

세계 역사의 흐름에서 공산주의가 다 무너진 가운데서도 
왜 유독 북한은 여전히 저렇게 남아 있어서
우리에게 고통의 시그널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왜 하나님께서 벌써 처리해도 될 만한 북한을 여전히 두고 계시는가?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변된 우리 남한 사회의 극심한 자본주의가  
발생시키는 폐단을 고치시기 위해서 아직 더 두고 계신 것일까?

젊은 시절 목회할 때 지하에서 문구업을 하시는 한 집사님께서 
나에게 찾아와 "장기 기증 서약"을 하시겠다고 하기에 
왜 그러시냐고 하니 사업상 빛을 졌는데 채권자가 갚을 것이 없으면
장기라도 팔 수 있게 내놓으라고 하니 궁지여책으로 이렇게 하시며
서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이 있었다. 

빚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갚을 것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라고 한다는데
오늘의 말씀은 이런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나]에게
그렇다면 채무와 채권의 관게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 해야 하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두신 가난한 자들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 오늘의 말씀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큰 도전과 숙제를 남겨준다. 

주님!
채권 채무와 관련하여 
자비롭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손을 움켜쥐지 말고 펴라는 말씀도 받았습니다  
제가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의 길로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