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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14:22-29 (2) 신명기 율법이 가르치는 십일조의 적절한 활용

by 朴 海 東 2020. 5. 7.

신명기 율법이 가르치는 십일조의 적절한 활용

신명기 14:22-29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구절은 

매 삼년 끝에는 소산의 십분의 일을 택하신 장소인 

중앙 성소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성읍에 저축하라고 하시는데 
이는 그 성읍의 가난한 자들[레위인/객/고아/과부 등]을 위한 
사회복지 기금[물자]를 조성하여 그들 역시 배부르게 만들어 줌으로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이 임하게 되리라고 하신다.[14:29]

혹자는 삼년 끝에 드리는 십일조는 본래의 십일조 외에 드리는
또 다른 십일조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신학자들의 의견을 분부하나)
성전의 운영을 위해서가 아닌 각 지파가 사는 성읍의 가난한 자들 
곧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사회복지차원의 기금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 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써 십일조 개념의 새로운 면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에 새기는 교훈은

1.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십일조를 헤아려 드림으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으로써 십일조이며

2. 이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거룩함의 표시로써 나타내는 십일조 이고

3. 특별히 (매 3년 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기금 조성으로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유지하게 되는 비결로써 십일조 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위의 1. 2는 잘 지켜지고 있는데 
교회 밖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기금 조성 차원의 십일조는
잘 가르치지 않았으며 또 우리 교회들이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지금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처럼 신정국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십일조 사용을 따로 할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국가적 책임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할 수 도 있는데 그러나 신명기가 반포되었던 그 시대나 
지금 우리들의 시대나 시대는 바뀌고 변했지만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는 
우리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써 
교회는 교회 자체의 몸집만 불리기 위해서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금을 독점하지 말고
사회복지 공동기금 조성을 위해서도 사용해야함을 배우게 되는데 
이로써 한 국가나 지역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교회를 통하여서도 나타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자
국가가 나서서 파탄 위기에 처한 민생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소속 승려 5천명이 
기부금 형태로 국가에 기부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개신교의 개척교회 목사나 미 자립 교회 목사들은
고아나 과부의 수순으로 살았던 
레위인들의 경제 수준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운 시기에도 그동안 교회 자체를 위해
충분한 비축 금을 마련하여 거기서 꺼내 쓰고 있는 교회들은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출자는 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같은 교단 안의 어려운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위해
그동안 교인들에게 받았던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이 
오늘의 말씀을 실천하는 적절한 적용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속 교단이나 교회가 이렇게 교회 내의 어려운 성도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체 몸집 불리기만 지속할 때 
정말 말씀에 깨어있고 의식 있는 성도라면 
나의 십일조를 내가 속한 교회 안에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혹은 교파나 교단의 벽을 초월하여 주변의 어려운 교회들을 위해
긴급구제헌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