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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18:1-14 사람 잡는 기독교 선무당들

by 朴 海 東 2020. 5. 21.

사람 잡는 기독교 선무당들

신명기 18:1-14


신명기의 두 번째 설교[강론]은 5-11장에서 십계명과 쉐마, 
그리고 12-28장에서 십계명의 확대 해석과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적용할 시행세칙[법도와 규례]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제사장들의 생활보장”을 다루는 본문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제5계명에 대한 확대해석이 되며 
이스라엘의 영적 아비들로서 그들의 위상을 생각해 보게 한다. 

1.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생활보장을 우리시대에 적용하기

하나님의 신정통치 국가로 출발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매개하는 자들로서
앞선 말씀[17장]에서는 재판관과 왕에 대한 규례를 주셨다면
오늘 말씀[18장]에서는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을 언급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신정통치의 매개자들로써 
항상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18:5]
하나님의 백성 된 다른 11지파가 도와야 할 것을 명하심이다.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타나내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오늘 주신 말씀에서 마음에 묵직하게 남겨지는 네 가지를 적어본다

1.[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 18:1-2]
너희는 분깃이나 기업이 없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기업이시라 

2.[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 
너희는 그들의 생활보장을 위해 마땅히 줄 것을 주어야할 것이니 
제물의 소와 양의 앞다리/두 볼/위/첫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양털 등이다

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내가 그들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을 그 직분에 택하여 세웠고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였기 때문이다.[18:5]

4. 레위 인의 거주지 이동과 관련하여 
그들의 직분은 보장되고 유지되며 그들의 사유재산은 보호된다.[18:6-8]

위에 정리한 네 가지 말씀 가운데 묵상의 소재로 삼게 되는 것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자신들의 몫이나 
기업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나머지 11지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생존과 생활의 공급원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시대에는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된 이후 
이제는 예수를 믿는 성도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적 신분이 되었는데
레위 지파 제사장과 백성들 사이에 주신 이 수요 공급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문득 이 말씀과 매칭이 되도록  
성령님께서 떠오르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25:4]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염려하심이냐 ........[고전9:9]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이 신명기의 말씀을 주신 구약 율법의 시대가 지나가고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신약의 이스라엘로써 
교회시대가 되었고 복음의 시대가 되었음으로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백성들 사이의 설정되었던
수요 공급의 관계는 사라졌지만 
적어도 이 명령 속에 담겨진 의미와 정신,
곧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겼던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항상 서서 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되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헌금의 손길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으로 적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목회자들의 세계나 선교사들의 세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존재하여 수요 공급의 불균형으로
개척교회 목회자들이나 선교사들에게는 가난의 고통이 있어서
심지어는 생업을 위해 자신들의 자리를 떠나는 일도 있는 것인데
이러한 문제는 소속 교단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로 이해하게 된다. 

“ 레위 인이.......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 [18:6-8]

여기서 그의 직분은 그대로 유지 보존된다는 것과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 목사, 선교사 세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혹은 그들이 일하고 싶지만 설 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씀으로 닿아진다. 

더불어 이 말씀은 대형교회들과 많은 연봉을 받는 목사님들
그리고 소속 교단의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교단의 정책 입안과 정책 집행의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이
가능한 일자리의 공급과  헌금의 적절한 분배를 위하여 
얼마나 고심하며 힘써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씀으로도 이해하게 된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통치와 교통의 매개자로 세우신 제사장들과 달리
거짓된 신들의 매개자들로서 거짓 영매들의 문제를 다룬다.]

2. 사람 잡는 기독교 선무당들

무당들의 세계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는 무당이 된 자신들은
전생의 업에 의하여 무당이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생의 업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무당들에게 접신되는 귀신도 다르므로 
무당과 선무당은 엄격하게 구분되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선무당이라고 함은 
서투르고 미숙하여 굿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당을 말한다

어디까지가 맞는 이야기고 틀린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무당과 선무당을 구별하는것을 보면 
이 세계에도 무당질을 잘하는 고수들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미신의 세계에서 사주팔자 운명을 논하고 굿 해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무당들이 가끔 교회 안에서도 
기독교 무당으로 나타나서 연약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교회를 혼란으로 빠트리는 경우를 보는데 심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민이 된 자들은 
절대로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진언자나 박수나 
초혼자[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자들]를 용납하지 말라고 하시며 (18:10-11)
이방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의 말을 듣거니와 
너희는 결코 용납지말라 하신다. 
인간에게 장래사는 닫혀있는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14)

가끔 기독교인들 가운데 현실이 답답하고 망막하여 
혹시 점쟁이에게 찾아 가는 일이 있다고 하나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이런 문제들에 
극심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시므로 대부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정작 교회 안에 있다. 
길지 않은 목회생활에서 느낀것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은 초자연적 영역에 속한 영적인 문제에는 매우 심약해서 
누가 기도를 많이해서 매우 영험하고 
특별 예언기도도 해준다고 하면 그만 넘어가고 만다

특히 집안에 우환이 있다거나 입시철과 같은 시즌이 되면 
이런 증상들이 심해진다 답답한 현실에서 기도를 받음으로
 영적 유익을 얻는 것이라면 왜 나쁘겠는가? 그러나 도가 지나쳐서 
길흉을 말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예언 기도를 해준다거나 
자신을 신통방통한 기도의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기도를 받으러 간 그 사람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기도해주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을 만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라도 
그 앞에 서기를 바라시며 또 그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라도 
못 이룰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작은 믿음마저 마귀에게 빼앗기고 
기도 많이하는 사람 의지하는 신앙으로 변질 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안에 만연될 수 있는 
기독교 무당이나 미신에서 벗어나려면 
은밀 장소를 찾아가는 기도보다 공개적으로 함께하는 기도회가 좋고 
혹 방언이나 방언 통역 또는 예언사역이 이루어질 때도 
아무리 신령한 사람이라도 혼자 하게 버려두지 말고 
같은 은사를 가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더불어 함께 
차서를 따라 분별하며 모임을 갖는것이 유익하다. [고전14:26-33]

성경적인 은사활용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때 
교회는 얼마든지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져 마귀의 장난 터가 될 수 있고
성도들의 영혼은 병들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은사활용이 무질서하여 
사람잡는 선무당들이 활개치며 혼란해진 고린도 교회에
은사활용의 지침을 이렇게 써 보낸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람 잡는 선무당들이 
이방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도 자생될 수 있음을 유념하면서 삼가 조심스러운 글을 올린다. 

주님!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붙들고 주님앞에 서게 하시며
겨자씨 같이 작은 믿음이라도 귀히 보시며 축복하시는 주님의 응답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