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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25:1-10(2)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 (4)

by 朴 海 東 2020. 5. 28.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 (4)

신명기 25:1-10

 

 

연 나흘 째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를 주제로 하여 묵상하게 된다

1. 범죄자 처벌에 있어서 태형 40대를 넘기지 말라.[25:1-3]

쌍방 간에 시비가 생겨 재판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졌을 때
악인에게 태형을 내리게 되면 40대를 넘기지 말라 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단서 조항을 붙이는 것은
40을 넘겨 지나치게 때리면
네 형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에 있다.[24:3b]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악인으로 지칭된 자를
네 형제라고 하심이며 따라서 처벌을 하더라도
그의 잘못을 고치고 바르게 되기를 위한 선한 동기로 하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처벌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다고 하심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태형을 가할 때는
태형을 맞는 자가 볼기짝을 드러내고 맞을 때 수를 세게 하여고
태형을 맞는 자가 까무러칠 때는 때리는 자가 대신 수를 세어서
정해진 수를 넘기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율례[규례[까지 주시는 것일까?
최소한 범죄자의 생명과 인권까지도 배려하시는 것을 엿보게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유린하며
함부로 했던 것들을 시정하는 법률들도 제정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따지고 보면 성경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며

이것은 또한 이처럼 범죄자 곧 악인으로 판결된 사람에게까지
(네 형제라도 하시며) 이런 인격적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존중되고 배려되게 하라 하심이다.

2.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25:4]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존중이
말 못하는 동물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동물 복지권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
한편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시는 문맥 속에서
일하는 소와 관련하여 말씀하시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위의서 범죄자의 생명과 인권 보호와 관련해 말씀하시면서
하물며 일반인들의 생명과 인권은 더 존중되고 보호하게 하심같이
말 못하는 동물에게까지 이렇게 배려 하여야 한다면
사람에게는 더욱 그리하여야 하지 않겠냐고 하심이며
이어지는 말씀에서 소처럼 죽도록 일만하고도
남편이 죽어 가련하게 된 한 과부 여인의 문제를
이스라엘의 존립을 존속하게 만드는 법전과 관련시켜 말씀하신다.

3.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이 주는 교훈 [24:5-10]

오늘 우리 시대 우리의 문화와 맞지 않은 이스라엘의 결혼 문화를
우리의 시각에서 이해 하는데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각 지파별, 가문별로 이어가게 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문화에서 한 가장[남편]의 죽음으로
대가 끊어질 위기가 되었을 때는 그 형제 중에서 대신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라고 하심인데 이렇게 말씀 하시는 데에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시는 규례" 큰 문맥적 흐름에서 볼 때
과부되어 홀로 된 여인을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계대 결혼 법” 규례 속에 담겨 있다는 것도 엿보게 된다.

한 남편[지아비]를 의지하고 그 집안에 들어와서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소처럼 일만 하다가
남편이 죽어 홀로 되어 외로운 과부가 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가까운 형제 중에서 남편이 되어 주어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하고
그 가문과 집안의 대를 이어주라 하심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계대 결혼의 규례에는 결혼의 의무가 부과된
전 남편 형제들의 자율성도 존중되고 있어서
만일 그가 결혼하기를 싫어한다면
형제의 의무 된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성문 장로들 앞에 나아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권한의 포기를 천명하여야 했고
이에 대하여 과부된 여인은 그의 신발 한 짝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의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 이라는 수취를 당하게 하였으며
그가 만일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집을 향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신 벗김을 받은 자의 집이라”는
부끄러움과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2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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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이한 이스라엘의 결혼계대 법에서
신발을 벗기는 행위가 무슨 의미 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 드리는 것은 “권한의 포기”로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호렙산 불타는 떨기나무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에
신을 벗고 맨발로 섬으로 더 이상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자기 인생의 권한을 내려놓은 것과 일맥상통하기도 하고

한편 베들레헴의 부호이며 유력한 자인 보아스가
자신의 친족 중 하나인 룻의 남편 기룐의 대를 이어주며
룻을 아내로 삼으려고 했을 때 그 보다 더 가까운 친족인
또 다른 기업무를 자가 있어 성문 앞 장로들 앞에서
그가 신을 벗어 권리 포기를 함으로
보아스에게 그 차례가 돌아간 것에서도 맥을 통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서 “자기 권리의 포기”라는 것이
긍정적 의미에서도 쓰이고 있고 부정적 의미에서도 쓰이는데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이 난해한 결혼 계대 법에 근거하여 마음에 새기는 교훈은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에 기초하여 선택하고 결정할 것이며
나의 사적 유익을 위해 부정적 의미에서 권한의 포기를 한다면
이에 따른 수취와 불명예도 반드시 따른 다는 것도 명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