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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24:14-22 (2)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 (3)

by 朴 海 東 2020. 5. 27.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 (3)신명기 2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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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엄청 많으신가보다
연속 3일 째 이어지는 이 주제를 가지고 묵상 글을 올리게 된다.

1. 국적을 초월해서 빈한한 품꾼의 삯을 떼어먹지 마라. [24:14-15]

우리 동네는 신개발지역이라 그런지 요즘도 공사하는 곳이 많고
함바 식당에는 때 마다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끔 그들 속에 끼어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볼 때가 있다.
저임금으로 일하는 것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미움을 받기도 하며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단속도 심한데
주님께서는 너희 형제든 외국인[객]이든 그들을 학대하지 말며
그들의 품삯을 늦게 주거나 떼어먹지 말라 하신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하게 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처지를 동정할 수 있어야 되겠다.

특별히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일만 시키고 임금을 체불하거나
떼어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원망으로 인하여
그것이 너의 죄가 될 수 있다고 하시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긴다.

언젠가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중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온 부부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바닷가 양식장에서 겨울에도 찬물에 손을 담그며 오래 일했지만
사업장 주인에게 한 푼도 받지 못한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할 수 없이 또 다른 일을 찾아 간다는 사연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이든 너의 도시에 우거하는 외국인 이든
그의 품 삵을 떼어 먹는 것으로 이득을 보려고 하지 말라[24:14]

2. 죄의 연좌제를 시행하지 말라.[24:16]

아버지가 자식의 죄로 죽을 것이 아니며
자식이 아버지의 죄로 죽을 것이 아니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할 것이라 하심에는[24:16]
죄인은 자기 죄를 따라 죽을지라도 가족은 해를 받지 않게 하심이다.

과거 우리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역모와 관련하여 당사자 뿐 아니라
3족을 멸하였으며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하였다.
한국에서 연좌제가 폐지된 것은 1894년의 갑오개혁 때였다.
그 해의 6월 칙령(勅令)으로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을 폐지했으나
6.25 전쟁 이후 이 연좌제가 다시 부활하여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았다

이것이 다시 폐지 된 것은 1980년 8월 1일인데 완전히 소멸 된 것은
1990년대 초까지도 이어졌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리 속에 들어있는 보복 심리를 들여다보시며
각 사람을 자기 죄를 따라서만 죽을 것이며 죄를 연좌시키지 말라 하신다.

3. 재판의 공정성 및 과부의 옷을 저당 잡는 자에 대한 경고 [24:17]

최근 언론에서 윤석렬 검찰 총장의 장모와 사업상 재판이 붙은 사람들은
모두 실형을 받아 감옥으로 가고 그의 장모만이 이익을 독식하는
불평등 재판이라는 보도가 자주 나오는데 이런 기사를 볼 때 마다
뒷배를 봐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를 따라서
얼마든지 판결이 바뀌는 우리 사법 구조의 역기능을 엿보게 된다.

현 정부 들어서서 내세운 으뜸 공약이 사법 개혁이었는데
본래 개혁이란 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하지 않을 것을 본다.
속히 사법개혁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객이나 고아와 과부의 송사라도 공정하게 판결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과부의 옷을 저당 잡지 말라는 말씀도 주시는데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보지않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며칠 전 미국의 (현)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Steven Mnuchin)이
돈에 관한한 얼마나 냉혈한인가에 대한 보도를 보았는데
그는 자신의 재산을 쌓는 일을 위해 플로리다 주의 한 노인 과부가
채무를 미납한 돈, 불과 몇 달라 때문에 그 과부 할머니의 집을
가압류로 저당 잡았었다는 것 때문에 언론의 비판을 받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돈 독이 오르면 자신의 명예와도 관계없이 이렇게 되는가 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상징되는) 과부의 옷을 저당 잡지 말라.!

 

4. 곡식밭에 혹은 감람나무나 포도원에
자비의 실천으로 남겨두는 것이 있게 하라![24:19-21]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시는 규례가 연속되는 말씀 중에
자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한 개인이 소유한 곡식밭에서나
감나무나 포도원 같은 곳에까지 깃들어 있는 것을 본다.

자기 소유를 갖지 못한 가난한 자들이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도록
추수하는 밭의 곡식을 벨 때에 조금은 남겨두라는 말씀이나
과일 나무의 열매도 두 번에 걸쳐서 따지 말고
한 번 눈길이 지나갔으면 의도적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이 말씀은
레위기에도 나오는 자비의 실천인데 [레19-20장]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남겨지는 것 없이
알뜰살뜰하게 사는 것보다 조금은 헐렁하게 살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나의 넉넉한 마음에서 나오는 여유를 통해
그들도 얻을 것이 있게 하라고 하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흘리는 것이나 남겨지는 것 없이
알뜰살뜰 챙겨야 잘하는 것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말씀이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멋모르고 흘리며 남기는 나의 소유를 통해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것이 있게 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조금은 헐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자비의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고]
나의 이 헐렁함이 하나님의 축복과 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24:19b]
앞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도전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를 반영하는 삶의 동기는
내가 본래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종이었다는 것과
이러한 가운데서 속량 받은 자가 된 은혜를[24:18. 22]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단 마음으로 받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