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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4:1-8(2)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등장시키는 "이신칭의"의 확증

by 朴 海 東 2020. 7. 29.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등장시키는 "이신칭의"의 확증

로마서 4:1-8

 

사람들은 자기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거저 얻게 되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어하고 실감하지 못한다. 

자기 훈련의 결과로써 올림픽의 매달을 따듯
자기 노력의 결과로써 일류대학에 들어가듯
자신이 얻은 모든 좋은 것은 
자신의 수고가 들어간 것을 당연시 하는데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적 법칙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무언가 자기가 해야만 자기의 것으로 실감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모두 자기 노력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 주어지는 것들이 아닌가 
사람은 임종 시에 산소 한 모금[공기]를 흡입하지 못해
세상 줄을 놓고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지금 내가 살아 숨쉬며 마시는 이 공기가 모두 공짜이며 
모두 인간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고 선물이 아닌가

하물며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던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들이 어디서 자신의 영원한 장래를 보낼 것인지를 앞에 놓고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의와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열어놓으신 "이신칭의"의 축복이야 말로
인간이 받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혜이며 선물이 아닌가?

나는 청소년 시절 우리 고향 동네가 되는 대전시 동구 산내에 살면서
그 동리 산 속에 있었던 "호렙산 기도원"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후에는 그 곳의 예쁜 네 딸들 중에 두 번째 딸 에게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 때 그 기도원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일인데
어느 날 한 스님이 기도원을 찾아와 "임마누엘"이 무슨 뜻이냐 물었고
기도원 원장이었던 나의 장인 영감이 그 뜻을 풀이해 주면서 
이 열렬한 진리의 구도자는 거기서  고행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사연인즉 이 스님은 정말 진리의 참 도를 알고 싶어서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행과 수양 속에서 참선/기도를 드려왔는데 
어느 날 기도 중에 자신의 눈 앞에 "임마누엘"이라는 글자가 보여
손을 내밀어 잡으니 거기서 피가 쏟아져 나오기에 
이 글자의 뜻을 알고 싶어서 기도원까지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맨 인간 구원의 진리가 
자신의 고행과 수양 같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자력구원"이 아니라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시고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우리 인간 가운데 사시며 
마침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이루어주신 
"타력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비로서 자신의 모든 고행과 노력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평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적용하기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서 의를 인정받을만한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으로[롬3:23]

이신칭의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가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희생하신
하나님의 의[그의 선하심/착하심/신실하심]을
믿고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로 받아드릴 때  
인간이 의롭다함을 받게 하시며 [하나님의 법정적 칭의]
인간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하는 이 놀라운 구원의 진리는

이방인 종교가들이나 도덕주의자들뿐 아니라 
더욱 특별히 율법을 생명처럼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믿기 어렵고 받아드릴 수 없는 구원의 도리가 되기 때문에 

이 로마서의 저자 바울은 성령의 영감 가운데 
이 “이신칭의”의 영적 법칙을 뒷받침할 수 있는 두 인물 
곧 유대인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두 인물로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있었던 일을 샘풀[실예]로 제시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아직 자식 하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리라는 
말씀[약속]을 믿은 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것과[창15:6]

또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 죄를 짓고 
영적 진통 가운데 드렸던 예언적 고백으로써
하나님 앞에 아무 일한 것도 없으며
자기 공덕이나 자기 의를 갖지 못하면서도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들의 복” 이 있음을[시32:1-2]
여기 "이신칭의"의 진리를 뒷받침하는 말씀으로 인증하고 있다.

"이신칭의"의 진리를 확증해 주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등장시키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맛있는 햄버거 빵떡의 윗짝과 아래 짝이 생각난다 

우리가 이 생명의 양식을 맛있게 받아먹게 하시려고
윗 짝의 빵떡에는 아브라함을 
아래 짝 빵떡에는 다윗을 두고서 
그 사이 속살에 "이신칭의"의 말씀을 넣어 
우리에게 받아 먹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주님께서 당신의 종 바울 사도를 통해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샘풀로 등장시키면서까지 
“이신칭의”의 구원을 확증해주시고 보장해 주심을 감사 드린다.

내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단 번에 180도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화는 나의 전 생애를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때로 나의 마음에서 유출되어 나오는 죄악들이 나를 더럽히고
나는 부정한 자라고 여기게 하며 너는 의와 구원에서 멀다고 하는
사단의 정죄가 내 마음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나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보시기 때문에 [고전1:30]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사랑의 눈빛 그대로 나를 바라보시며
의와 거룩함의 절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 빛 그대로 
나를 바라보시는  “이신칭의”안에 나를 두셨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안심하게 하며 의와 평강의 길로 가게 하신다. 

주님! 
인간 구원의 길을 위해 열어놓으신 
“이신칭의”를 아는 진리의 빛 가운데
나를 이끌어 주시고 
이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