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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3:9-20(2) 주님! 나는 죄인 입니다

by 朴 海 東 2020. 7. 28.

주님! 나는 죄인 입니다

3:9-20

 

언젠가 미국 미네소타 미네아 폴리스에 사는 절친한 지인으로부터
서울 송파에 사는 열렬한 불교 신자인 자신의 언니를
전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미리 전화하고 방문하여 전도하였다

이미 70대 중반으로 넘어선 그 언니(보살님)은 송파의 비싼 아파트까지
자신의 연등이 걸려있는 절간에 기증 서약까지 하고
남은 여생과 죽음 이후를 불교와 자신이 속한 절간에 귀의한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전도의 접촉 점을 삼을 것인가 생각하다가
불교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성철 스님의 열반 송을 소개하였는데
성철 스님의 수양과 고행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만한 것이서
불도인이라면 그의 고행과 공로사상을 인정하는 바 이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10년 동안이나 자신이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며 잠잘 때에도 팔 년 동안이나
장좌불와(눕지않고 앉은 자세)로 고행하며 수양을 쌓았다고 하는데
모든 불도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이분이 막상 죽음에 이르러서 남긴
열반송을 보면 불교의 허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본다

적어도 사람은 죽음 앞에서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 없고
정직하게 될 수 밖에 없으니 그는 자신을 열반의 경지로 들어간 것처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유훈을 남겼다.
(평이한 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한 평생 무수한 중생을 속였으니
그 죄 얼이 수미산보다 더 하도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 갈래이리
한 덩이 붉은 해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

요약하면 나는 한 평생 중생들을 속여 먹었다
나는 (무수한 고행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제 산채로 무간 지옥[끝이 없는 지옥]에 떨어지니
허무 가운데 한 맺힌 헛된 인생을 살고 간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 보살님에게 성철 스님의 이 마지막 임종 열반송을
한문으로 풀어가며 설명하였는데
그는 잘못된 해석이라며 받아드리지 않았다.
자기 고행과 수행으로 죄 얼을 씻어내며
마침내 자신도 열반에 들어가리라는 이 무서운 맹신은
성철 스님의 열반 송을 가지고도 그 마음을 열지 못하여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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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을 자가 없고
오직 “이신칭의”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는 이방인들의 죄악상을 드러내었고
2장에서는 하나님의 선민 유대인들의 죄악을 드러내었는데

3장에 들어서면서는 이 편지 글을 쓰고 있는 바울 자신과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되는 로마교회 신자들 역시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드러내는 뜻으로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을
3:21절부터 시작되는 "이신칭의"의 복음으로 유도하는 것을 본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모든 인간의 죄악상을 논증함에 있어
사람이 가장 보편적으로 범할 수 있는 죄악으로써 다른 어떤 죄보다
사람이 입으로 짓는 죄 곧 "말의 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이는 시편 5:9절과 시140:3절의 인용으로써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구멍을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기에 빠른지라...." [3:13-14]

이 편지 로마서의 수신인이 되는 로마교회는
분명히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섞여 있었을 것이고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율법이나 할례를 앞세워
은연 중에 이방인 신자들에 대한 차별 의식도 있었을 텐데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도 모두가 죄 아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3:20]

적용하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울이 3:9절에서 말하는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속에 나 자신을 포함하며
그리스도와 복음이 아니면 
결코 희망이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특별히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짓는 죄로써 입술로 짓는 죄
곧 말의 죄에 대해 벗어날 자 아무도 없음을 강조하는데
이아침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깊이 받아 드린다 

지난 7월 2일 생일날 나는 잘 먹은 음식이 탈이 나서 
거의 일주일이나 고생했는데 설사로 탈진이 되고
배가 아픈 가운데서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생일날 만났던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말의 재미로 한 이야기지만 내가 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떠올라서 
아픈 배가 나아지기까지 참회 기도를 한 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입술을 함부로 놀리는
이 죄에서 내가 언제쯤이면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매일 매일 그리고 순간 순간마다 
나의 공로나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며
나를 변화 시켜가시는 성령님의 견인에 나를 맡긴다. 

주님!
과거의 어느 날 
내가 한 번 들은 것으로 끝나는 복음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이 복음 안에 거하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