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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11:11-24(2) 접붙이기 비유에서 배우는 하나님의 자비와 준엄하심

by 朴 海 東 2020. 8. 18.

접붙이기 비유에서 배우는 하나님의 자비와 준엄하심

로마서 11:11-24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다시 작렬하는 여름 태양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어제 섭씨 34도까지 올라가는 불볕 더위였는데
이제 바야흐로 바닷가 해수욕장들이 성시를 이룰 것 같다. 

최근 코로나 환자가 세자리 수로 급증한 요즘 매우 조심스럽기도 한데 
해수욕장 입장 객들에게도 모두 열 채크를 하는 우리나라 방역 모습이
외국 방송에 소개 되기도 한다고 하니 자랑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광화문에서 있었던 반정부 집회에 대규모로 참석한 
성북구의 한 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8월 17일 319명이 나왔고
이들에 의해 접촉된 사람들도 수 없이 많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교회가 세상에 덕이 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민폐를 끼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그냥 할 말을 잃어버린다

우리 교회의 세력이 너무 커지고 너무 교만해진 것 같다. 
세상의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 잡도록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의 산물로 세우신 정부 권력 마저 무시하고 
이겨먹으려는 이런 교회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실지 두렵기 조차 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교회의 대표되는 전** 목사와 그의 부인과 
비서들까지 모두 코로나 확진자들로 판명되었고 
그 교회에서 확진자로 나온 300여명에 의해 접촉된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아서 이 역병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위기에 처했다는데  
그나마 이렇게 되어서라도 그들의 교만함이 꺾어진다면 다행이겠다.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은 로마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 가운데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자고 하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향해
성령의 감동을 따라 경고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였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유대인 신자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니라."[11:17-18]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11:20 b]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참 독특한 특성을 가진 민족이 있으니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이스라엘[유태인들]이다. 
이들은 세상과 별나게 자신들을 구별하는 것 때문에 
다른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또 자신들의 독특한 종교적 열성 때문에 이질감을 갖게도 만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2차 대전이 일어난 전쟁 발발 배경을 보면
1940년 초기 히틀러는 전후 독일을 복구하면서 
자신이 지독히도 미워하는 유태 민족을  
독일과 유럽에서 말살시키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드러내려는 광기가 
엄청난 전쟁의 폭풍으로 몰고 가게 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태인들에 대한 경시와 미움은 
이미 이 로마서가 쓰여진 로마제국 초기에서부터 나타났는데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에 고린도에 갔을 때 동역자로 만났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역시 로마제국 글라우디오 황제 때
[AD.50년 전후로 추정] 자주 일어나는 유태인들을 폭동으로 인해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함으로 그들 부부도 
고린도로 내려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에서도 엿보게 되는바[고전18:1] 
이러한 유태인 경시 풍조가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도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 9.10.11장에서 유태인들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골자로 말하면서
그럼에도 그들은 아주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남은 자들이 있으며 
비유컨데 참감람나무의 원가지인 이들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켜서라도
돌이키게 하시려고 그들의 가지를 꺾고
돌감람나무인 너희 이방인을 접붙이신 것이니 
원 가지인 이들이 돌이킨다면 얼마나 더 잘 접붙임될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유대인 신자들에 대한 경시나 자긍심 또는 교만을 떨지 말라고 경고한다. 

접붙임과 관련된 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오늘 아침은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니 본래 접붙임이란 
돌감나무를 대목으로 하고 참감나무를 접목으로 삼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바울의 접붙임의 설명에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영적 영역에서의 접붙임으로 
이방인들이 영적으로 유대인 대목[본나무] 가지에 접붙임이 된 것을 
잘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적절한 비유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 깊이 새기는 교훈은
오늘의 말씀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대로 구원받은 이방인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준엄하심 이 두 가지 면을 생각하고 
다른 가지[지체]들에 대한 경시나 교만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교만하면 이런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위험이 있고
혹은 하나님께서 죄에 빠지게 내버려 둠으로써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쓰라린 체험으로 배우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주님!

쓸모없거나 
나쁜 열매 밖에 맺을 수 없는 내가 
주님의 생명에 접붙임이 되어
나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후손되게 하시고 
영적 유업을 받게 하셨습니다

은혜 아니면 소망이 없는 
본래 나의 나된 모습을 
언제나 잊지 않게 하시고.

주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이 두 가지를 항상 기억하며
겸손히 주님을 섬기고
형제를 섬기는 신앙과 삶에 
나 자신을 세울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