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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11:25-36(2) 구속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송축함

by 朴 海 東 2020. 8. 19.

구속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송축함

로마서 11:25-36

 

바울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이 불후의 명작 로마서를 쓸 당시 
바울의 선교 루트는 아직 로마에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이미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혼재된 로마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따라서 바울 자신은 로마를 방문하기 전  
먼저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와 깨달은 바들을
"이신칭의"라는 교리에 담아 편지 형태로 써보내게 되는데 
이 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책이 되어 
오늘 우리[나]의 손에까지 들려져 있고 묵상의 소재가 되고 있다.

1-8장에서 자력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며
타력 구원으로써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드림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이신칭의"의 축복과 
연약한 성도에게 성령의 개입으로 완성되는 구원론을 설파하였는데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교리적인 가르침에 이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교훈으로 이어지지않고 

1-8장에 나타난 교리적인 면에 이어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가르치는 12-16장으로 연결시키기 전
그 중간 [9-11장]에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삽입시키고 있는 것은 
이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의 감동하심이 이렇게 전개케 하신 것을 본다.  

이스라엘[유대인들]의 구원문제를 논하는 로마서 9-11장이 있음으로 해서
바울의 자기 동족 구원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이것은 원 가지인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구약과 신약이 조화롭게 연결되고
옛언약에 속한 백성들과 새언약에 속한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전 우주적 교회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을 보며
이러한 인류 구원의 청사진을 펼쳐보이시고 완성케 하시는 하나님을 
나도 로마서 11장 결론에 나타난 바울의 송영에 같은 마음으로 참여케 된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다루는 마지막 장으로써 
로마서 11장 후반부에서 크게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는 세 가지 이다 

1.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 역사적, 전 민족적 집단 구원인가? [11:25-27]

이 주제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11:26절에 나오는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 때문인데 
이 난해한 구절에 대한 신학자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2. 인류 구원과 관련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상호 작용 [11:28-32]
3.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를 송축함[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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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 역사저, 전 민족적 집단 구원인가? [11:25-27]

성경에 나타나는 난해한 구절들 가운데 
이 주제 역시 매우 이론의 여지가 많고 난해한 문제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11:26 a]

세대주의 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이스라엘"이란
마지막 때에 예수님 오시는 재림 직전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스라엘[유대인]들 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 재림 이전에 존재했던 이스라엘인들은 어찌되는가?

한편 영해[영적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이라는 말이 택함받은 자들에 대한 상징으로 볼 때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택함을 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총수이며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될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이 구절이 
문자적으로보나 문맥적으로보나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가운데 나오는 단어이며 구절임을 감안할 때 
분명 이스라엘[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앞선 문맥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와 비교 조화 되는 해석으로써   
"이스라엘[유태인들]중에서 선택된 사람들[남은 자들]로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인류 일반 인간의 전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께 은혜로 선택받은 이방인의 충만한수 + (플러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총수가
바울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비밀스런 계시가 아니겠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구원 받는 자들의 총수를 상징적 숫자로 나타내어
구약 12지파 X 신약 12 사도 X (충만 수) 1,000=144,000으로 표시한다.
[계시록 7:4. 14:1-3절에서는 이 숫자를 구속받은 자의 총수로 상징한다]

 

묵상글을 올리는 게시판의 한계상 다루고 싶은 주제를 다 올리지 못하나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도 꼭 남기고 싶은 것은 
인간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신비스런 지혜와 섭리이다 

유대인들의 구원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서로 상호 충돌되게 하시면서 또한 상호 의존적이 되게 하사 
유대인 혹은 이방인 양자가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가운데 있을 때 
서로에게 기회가 넘어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하시는 
이 구원하시는 방법의 신비를 사람이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거절이 이방인의 구원 기회가 되게 하시며 
유대인들에게 시기심이 발동하여서라도 
그 중에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스런 작정[예정]과 섭리를 생각할 때

이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희생제물로 내놓으시는
인간이 가히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신비스런 구속경륜과 같은 
또다른 신비에 속한 것임을 바울은 경탄하면서 하나님을 송축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요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11:33]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From Him]
주로 말미암고 [Through Him] 
주에게로 돌아감이라[For Him]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To Him] [11:36]-아멘-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또 한가지 꼭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는 말씀이다[11:29]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에게 복음에 담겨있는 진리의 빛을 보게 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성령의 선물을 주셨지만 
나는 성령님께 잘 협력하지 못하고 내 고집대로 할 때가 많아서 
성화 성장의 수준과 진척이 느리고 
때로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린 때가 너무 많아서 늘 죄스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구원하신 이후에도 
나에게서 보여지는 여러 실망스런 모습들 때문에 
나를 벌써 포기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정과 선택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시고 포기가 없으심으로 
오늘도 나는 나의 부끄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심기일전 다시 일어서서 나를 부르심의 길로 나아간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로써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나의 찬양 기도로 올려드린다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후렴]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2.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4.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