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15:14-21(2) 바울의 선교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20. 9. 2.

바울의 선교에서 배우는 것

로마서 15:14-21

 

무덥고 습했던 금년 여름은 팔월 한 달 내내 로마서를 묵상했는데
오늘 아침은 바울과 로마 교회는 어떤 관계였을까?에 관심이 간다.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도 아니며
아직 한 번도 공식적으로 방문했던 교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간 앞선 말씀에서 친숙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면  
바울의 1-3차 선교여행 중에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리고 그와 함께 동역했던 어떤 사람들(브리스길라 아굴라 등)이
이미 로마 교회에서 지도적 역활을 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이제 그의 로마서 편지를 다시 요약해보면 
먼저 기독교 구원의 핵심 교리로써 이신칭의를 논했고[1-8장]
이어서 이 소중한 이신칭의보다 율법을 고수하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은 과연 어찌 되는가를 논했으며[9-11장]

12장부터는 이신칭의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실천적인 문제,
1) 곧 몸의 사용에서부터 시작하여 [12:1-2]
2) 교회 안에서 은사의 적절한 활용과[2:3-13]
3) 교회 밖에서 불신자들을 상대하는 자세와 
특별히 원수같은 사람들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를 논했고[12:14-21]

4) 그리스도인의 대 국가관과 납세 의무와 [13:1-7]
5) 그리스도인의 경건과 종말론적인 신앙자세를 강조했다.[13:8-14]

6) [그리고 14장에서는 다시 로마 교회 내부의 문제로 눈을 돌려]
음식 문제로 촉발된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 사이의 갈등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논했는데 특별히 이점에 있어서는 
아직 율법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때문에 
이방인 성도들보다 복음의 통찰력이 부족하고 믿음이 약했던 
유대인 성도들의 입장에 서서 이방인 성도들이 그들 유대인 성도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14:1-15:13]

7) 그러나 이제 오늘의 말씀[15:14-21]에서는 
로마 교회 내 이방인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편지글이 
좀 과격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과 함께 [15:14-15]
자신이 이방인 선교사로서 가지는 긍지와 받은 사명과 
지난 1.2.3차 선교 여행 중에 복음 전도 현장에서 있었던 
말과 표적과 성령의 역사하신 것을 말하며[15:16-18]
[자신의 글이 좀 과하다고 하여도] 자신이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복음의 아비 같은 마음이 되어 말한 것임을 이 편지 속에 담고 있다. 

특별히 그동안 로마 교회에도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이유도
이 편지글에서 엿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선교 여행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가장 동남쪽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서북쪽에 해당 되는 일루리곤[현지명: 유로슬라비아]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는 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15:19-21]
이미 로마에는 복음이 들어가서 이미 교회가 세워진 것을 감안할 때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지역들을 전도하느라 갈 수 없었음을 밝힌다. 

로마서에 나타난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헤아려 볼 때
그는 아직 한 번도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그 교회 안에는 
그를 아는 성도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데 
지중해 연안이 세상의 전부로 알았던 그 시대에 
당시 세상의 중심이며 심장부로 여겼던 로마로 사람들은 살길 찾아
몰려들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는 이미 바울의 선교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이렇게 
복음의 아비 된 자의 심정으로 이 로마서를 쓸 수 있었겠는가?
-----------------      -------------------       --------------------

이제 오늘의 묵상 글을 이렇게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바울 선교에서  세 가지를 마음에 새기게 된다. 

1. 복음의 제사장 직무[15:16]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결신 자들을 얻어 
그들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그리스도의 품인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게 될 때 
정결한 제물을 드림과 같은 의미로 이해했다. 
아마 한 이방인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어 세례를 받을 때
그의 모든 부정이 씻어지고 정결케 되어 주님의 것으로 드려지는
이 기쁨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선교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어제는 답답한 마음으로 자건거를 타고 한강 변을 달리면서
주님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도하였는데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마땅히 하여야 할 직무로써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닿아진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위축되어 있지만
시대나 시류의 변화와 관계없이 주어진 이 직분에 충실할 수 있어야 겠다.

적용하기

2. 복음 전도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것 [15:19]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동유럽]까지가 의미하는 것]

바울은 로마 시민권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어찌 당 시대,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도 가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당시 로마에는 이미 복음이 들어갔고
이미 교회도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지역에 관심을 가졌고
따라서 아시아와 동유럽 쪽에 집중했다는 것을 그의 글에서 본다.

오늘 우리 시대 우리나라는 이미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져서
어느 시골 산골짜기나 외딴 섬에도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도리어 너무 많아서 경쟁이 되고 있을 정도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고 있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바울의 선교 정책에 나타나는 것처럼 
남이 닦은 터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생각할 때[15:20]
우리 한국교회의 유일한 출구로써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속히 북한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에 
우리 한국교회의 기도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북 간에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리기를 바라기보다 
여전히 남북 간 대립을 부추기며 고착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각할 때 우리의 문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속히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큰 틀에서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1945년 해방 후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교회들이 헐려진 후 어느덧 70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북한 사람들은 
벌써 두 세대가 복음을 듣지 못한 가운데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어서 속히 그곳에도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기를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마음 문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3. 남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 것.[15:20]

바울 역시 로마에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리하지 않은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이 로마 밖에서도 너무 많은 것과 
또 로마에는 이미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을 통해
복음이 들어갔고 교회도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우리 한국교회 형편을 보면 이제 더 이상 교회당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교회 없는 지역이 없고 한 상가 건물 안에도 교회가 몇 개씩 들어가있어
통로에서 만나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사이에도 서먹함이 있고 
또 불신자들이 보기에 어떠할 것인지 민망할 정도로 포화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다른 교회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이며 부끄러운 민낯이고 자화상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교회들에 대해 
주님께서 정리하게 하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기도 한다.

남이 세운 터 위에 또 하나를 더 얹혀 세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에게 돌파구는 속히 북한의 문이 열려야 한다는 것과
또 북한으로 연결되는 철로와 고속도로를 통해 북한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랍권과 더 멀리 땅끝까지 향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복음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 얼마남지 않는 대종말론적 기간에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제사장 국가로 세움을 입어
북으로 열려진 도로와 철길을 통하여  
많은 선교사들과 많은 선교 물자들이 선교 지역으로 이동되도록 
가장 우선적으로 북한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나라들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이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