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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15:22-33(2) 바울의 선교 계획과 기도 부탁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20. 9. 2.

바울의 선교 계획과 기도 부탁에서 배우는 것

로마서 15:22-33

 

앞선 말씀[15:14-21]에서 바울 선교에서 배우는 것으로써
선교에 임하는 그의 자세 세 가지를 보았다

1) 복음의 제사장 직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 수행으로써 선교인데
이는 복음 전도부터 시작하여 
이방인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세례까지를 
염두에 둔 책임 선교를 엿보게 한다. [15:16]
 
2)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선교: 
처음엔 지금의 터어키 동부 지역에 국한된 선교였지만
2차 선교에서는 1차 선교지역을 재차 순회하면서 
유럽과 동양의 교두보인 터어키 드로아[트로이]에서는 
성령의 인도 가운데 유럽으로 건너가는 선교가 되었다.[행16:9]

역사학자 고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바울을 싣고 간 배는
오늘의 유럽 문명을 싣고 간 배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루리곤
곧 동유럽 유고슬라비아 접경까지 선교 하였고[15:19]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들어가 석방된 후에는
서유럽의 끝 서바나[스페인]까지 선교하게 된다.[15:28]

3) 남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는 선교:
그의 선교 전략은 한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곳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전략[Planting Church]인데
남의 터 위에는 세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선교였다.[15:20]

이제 오늘의 말씀[15:22-33]에서는 
바울 자신과 로마 교회 사이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전개되는데 
이러한 사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도 보화 같은 교훈들을 얻게 되는데 
특히 그의 선교 계획과 관련된 교훈들이다.

1. 막힌 길도 포기하지 않고 열어가는 불굴의 정신[15:22]
바울은 그동안 로마로 가려고 했던 일이 여러 번 막혔다고 하는데
이어지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또 다른 선교적 과업들이
그의 로마행 발목을 잡은 것 같다[15:23 a] 

그러나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할 일을 다 완수하고
로마로 가려고 하는데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쓰고 난 후  
이어지는 사도행전 기사를 보면[행 20장 이후] 
예루살렘을 돌아서 로마로 가려던 그의 여정은 또다시 막히게 되는바
주님은 바울의 계획보다 더 큰 계획 가운데 그의 길을 인도하시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게 만드시고 황실 전도가 이뤄지게 하시어
당시 로마시를 가로지르는 테베르 강 서쪽 빈민가에 머물던 기독교가
황실 전도와 로마시 전체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게 하셨으니 
바울의 길이 막히고 또 막혔던 것들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을 본다. 

2. 선교지를 함부로 이동하지 않는 책임 정신[15:23 a]
그는 선교지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문제에서도 
중간에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고 확실하게 마무리했다는 것을 
"이제는 이 지방에서 일할 곳이 없고"라는 말에서 엿보게 된다. 

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으면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일꾼들을 세워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교회의 품을 통하여 성도들을 보호하고
또 교회를 통하여 계속하여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는 책임감을 본다. 

3. 더 크게 타오르는 선교의 Vision. [15:23]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들리려고 하는 원이 있었으니.......[15:23 b]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서바나로 가리라[15:28]
 
바울의 선교 비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는 중에 
선교의 지경을 주관하시는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점점 더 커지는 
선교 비전을 불러일으켜 주셨다.

처음에 파송교회였던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했을 때
지금의 터어키 동남부에 해당하는 갈라디아 지역 중심 선교였는데
2차 선교 여행을 떠나 아시아의 끝 터어키의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성령께서 그리고 예수의 영이 아시아에 머뭄을 허락지 않으시고
마케도냐인의 환상 가운데 (동)유럽으로 가는 선교 비젼을 주셨다.

그리고 그 이후 2차 3차 선교 여행을 진행하는 중에 
당시 세상의 끝으로 알려진 서바나[구약 요나에서는 다시스]로 가는
선교 비전을 주신 것을 밝힌 것을 보니 
그의 가슴 속에 타오른 선교 비전은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선교 현장에서 충실하게 사역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점점 더 크게 불타오르며 확장되게 하신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바울의 서바나 선교 계획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이 이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음으로 
초기교회 교부들의 글을 증거로 참고하게 되는데 
AD 96년경 로마 교회의 교부였던 클레멘트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동방과 서방에 복음을 전하며 전 세계에 의를 가르치면서
마침내 서방 경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통치자들에게 증언한 후 그의 믿음에 당연한 명성을 얻었다
이와 같이 그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서방 경계란 바울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서바나로 해석한다.)

 

4.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사랑의 밴드로 묶게 하는 구제헌금 프로젝트 [15:25-28]

바울은 자신의 당대에 이방인 선교사로 활약하면서
자신보다 8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수 많은 예언들이 [사49:6 etc.]
자신의 시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도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감동하고 고무되어서 그런지 이방인 선교를 감당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복음의 출발점이 되는 예루살렘과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간절하였으며
따라서 당시 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유대 사회에서 출교 된 것뿐 아니라 기근으로 어려움에 빠진 것을 알고
이들을 기억해 달라는 다른 사도들의 부탁을 따라 
이방인 교회에서 제법 많은 구제헌금을 모금했던 것 같다.

이것은 그의 선교 계획의 한 프로젝트였는데
이제 그는 로마에서 서바나로 가려는 직선 노선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거쳐 가는 우회로를 택함으로 이 사업을 종결지으려 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바울은 이 구제 사역을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 사이를 
사랑의 밴드로 묶는 일로 보았기 때문에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라는 말로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선교 계획 [프로젝트]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부유한 나라와 지역의 교회들이 가난하고 힘든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는 것을 물질로도 표시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지금까지 나의 선교사역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많이 맞추었는데 
그래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것은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고 교회 대 교회 차원에서
교회들이 나서줄 때 능력 있는 사역이 될 수 있다. 

5.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않기[15:29] 
“내가 너희를 방문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바울은 로마 교회 방문을 앞두고 자신이 그들에게 갈 때
함께 나눌 축복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데 
이는 교회들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 마음에 넣어주신 확신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갈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그가 이방인 중에 선교하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신 여러 가지 표징들과 사역의 열매들에 대한
간증일 것이며 또 그가 전했던 복음의 말씀들 곧
로마서 1-8장에서 전달했던 이신칭의의 복음을 
실제로 그들 앞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전함으로
그들이 받은 구원의 축복을 확증시키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증진 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간증과 말씀 사역과 교제를 통해 
그는 로마 교회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만족과 쉼을 기대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15:24 b. 15:32]

바울이 로마 교회 방문을 앞두고 그들과 함께 나눌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으로써 영적 유익을 끼칠 일이 있다는 것은
오늘 내가 어떤 한 교회를 방문할 때 (혹은 가정들을 방문할 때)
그 교회나 가정에 끼칠 수 있는 영적 유익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만일 이런 것이 없이 대접을 받으려고 방문한다면 민폐가 될 것이다
요즘은 교회들이 선교사들의 방문을 심히 부담스러워하는 시대인데 
교회들의 거리낌이나 부담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는 바울처럼 주님이 나누게 하시는 
충만한 영적 유익의 축복을 가진 자로서 방문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6. 예상되는 극렬한 유대주의 자들의 핍박과 
투명한 헌금 전달을 앞에 놓고 부탁하는 기도[15:30-33] 

이제 오늘의 말씀 마지막 단락의 주제로써 
선교사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인데 
그는 예루살렘 방문을 앞에 놓고 마음에 돌덩이처럼 묵직한 남겨진
근심이 있어서 이렇게 기도 부탁을 하고 있다.

첫 번째 기도 부탁은 복음에 순종치 않는 유대인들의 핍박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두 번째 기도 부탁은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헌금을 잘 받아주어서
그것이 받음직하게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 제목 속에는 유대인 성도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방인 성도들이 보낸 헌금을 기꺼이 감사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이러한 기도 부탁에 대하여 
첫 번째 기도 제목에 대해서는 우려한 대로 극렬 유대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과 체포로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하나님께서 로마군 천부장(루시아)을 급히 보내어 
그를 구출하신 것으로 나타났고 [행21:31-32]

두 번째 기도 제목으로써 헌금 전달에 대한 기도 제목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바울이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과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했다는 기록 속에
모두 함께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행21:17-20 A]

기도하기

이제 길게 쓴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에 새기는 교훈은 
마지막 주제로 올린 “받음직한 헌금 전달”의 교훈이다.

헌금을 전하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겸비한 마음이 되어 
헌금 전달이 잘 되기를 염려하며
받음직 하게 되는 헌금이 되기를 간구하는 기도 제목에서
특별히 구제 헌금과 같은 성격의 헌금을 전할 때
나는 주는 자이고 너는 받는 자라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전달하는 자가 받는 자를 높여놓는 모습에 의미가 있다. 

헌금을 받는 자들이 전달하는 자로부터 비굴한 자존심을 
느끼게 되지 않도록 오히려 더 조심하면서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울의 헌금 전달 정신에서 엿보게 된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자의 자리에 있을 때
특별히 구제 헌금과 같은 것을 전달하게 될 때에 
다만 주님의 것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의 자세로써 
받음직한 헌금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전할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