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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33:1-13(2) 왜 부르짖으라고 하시는가?

by 朴 海 東 2020. 9. 18.

왜 부르짖으라고 하시는가?

예레미야 33:1-13

 

[오늘의 말씀 배경]
성경 예레미야에 기록된 사건과 내용들은
역사적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어서
앞선 연대의 사건들이 뒤에 나오기도 하고
뒤의 사건들이 앞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변동없이 일관되게 한 목적과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본다.

오늘의 말씀은 BC 588년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제10년 차에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에 포위되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말씀을 바로 전한 것 때문에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주시는 말씀이다 [32:2]

예레미야는 여기 시위대 뜰에 갇히기 전에 
궁중 감옥으로 삼았던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있는
토굴 옥 음실에 갇혀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목을 조여올 때 
원병을 청한 애굽의 군대가 올라오자 
바벨론 군대가 일시 포위를 풀고 물러가게 되고 [37:5]
그는 이 틈을 이용해 잠시 고향에 다녀오려고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게 되는데   
그가 항복하러 가는 것으로 오해한 방백들이 
그를 붙잡아 이처럼 깊은 토굴 옥에 가둔 것이었다[렘37:11-15]
 
예레미야는 그 토굴 감옥에서 고생이 얼마나 극심하였던지
시드기야가 그를 궁정으로 불러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물을 때 
자신을 다시 요나단의 집 토굴 옥으로 보내지 않기를 간청하여
그나마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고 전쟁 배급소로 설치된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받아먹었다[37:16-21]

그러나 그의 고생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결사 항전을 벌이는 동안에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때문에
반정부 시국사범으로 몰려서 
방백들의 주청으로 사형선고를 받아[38:4]
이번에는 왕궁 안에 있는 가장 깊은 감옥인 
왕의 아들 말기야의 깊은 구덩이에 처 넣어지기도 하는데 
이 곳은 왕궁 곳간 밑에 있었다. [38:11]

이때에는 더이상 매일 한 덩이의 떡을 넣어주는 것도 없고
거기서 굶어 죽으라고 처넣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는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의 간청으로
사형을 면하고 30명을 동원하여 다시 끌어올려져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는데[38:1-13]

바로 이와 같은 급박한 처지이며 
이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적 상황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이어서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을 받게 된다.[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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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게 두 가지 두 가지 질문을 해보게 된다. 
첫째는 (예레미야가 이미 기도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에게 부르짖으라!(Call to me!)라고 하시는가? 이며 
두 번째는 기도의 응답으로 말씀하신 크고 비밀한 일은 무엇인가? 이다.

 

1. 부르짖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부르짖어야 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는 당시 시국범으로 몰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가운데서
이미 기력이 소진되었고 영적으로도 다운되었으며 
기도도 나오지 않고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사명을 
포기하는 자리에까지 내려간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자포자기는 감옥에 갇히기 전에서부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주의 강권하심을 받아 일어서곤 하였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20:9]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보면
바른 말을 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심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짓 진술서까지 쓰고
풀려나오는 경우가 많았던바 
지금 반정부 시국사범으로 몰려 깊은 옥에 갇혔다가
겨우 다른 감방[시위대 뜰]로 옮겨져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려는 것 때문에
당하는 그의 고통은 이보다 크면 컸지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그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생각해 볼 때
여기서 부르짖으라 하심은 
우선 예레미야 자신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데
의욕이 꺾이고 마음이 흔들리며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는
힘을 써서라도 부르짖지 않으면 
그러한 영적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란 영적 영역에 속한 것이어서 
사람이 몸을 써서 하는 육체노동보다 더 어려우며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영적 집중력을 모우지 않으면 
절대 기도가 나올 수 없고 그대로 깔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성경에 나오는 기도에는 
항상 수식어(형용사)가 앞에 붙어 따라 나오는데 
힘써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등등
기도의 힘을 불어넣기 위해 
육신적으로 기도의 손을 꽉 진다거나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이런 모습들은
모두가 영적 기도의 몰입을 위한 육적 모션들이며
위기의 상황에서 기도가 너무 어렵지 않도록
평소 기도에 깨어있으라는 말씀도
다 이런 맥락에서 주시는 것 같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왕궁의 가장 깊은 감옥에 갇혀서 
떡도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라도
아직 그가 더 전해야 할 말씀과 사명이 있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선 그를 영적으로 살리시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시고
한편 당시 구스인 환관 에벳멜렉을 통해 
구명 운동을 하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38:10] 

나도 평소 기도의 자리에 나갈 때 
자전거를 타고 벌판의 오솔길을 달리면서도
미리 부르짖는 기도의 자세로써 주여! 주여!를 
수없이 외치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곤 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기도가 수월해지는 것을 자주 경험하곤한다.  

위기적 상황에서는 주님과 소통되는 기도를 위하여 
먼저 몸으로 드리는 기도가 필요함을 ”부르짖어 기도하라“에서 배우게 된다.

 

2. 기도의 응답으로 보이실 "크고 비밀한 일"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예레미야가 선포하게 되는 말씀에서 엿보게 되는데
당시 고대근동지방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유다의 운명에 관련된 장래사로 이해하게 된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세계경영의 핵심으로써
신흥세력인 바벨론을 일시적이나마 융성하게 하여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는 심판의 도구로 삼으시며

이 징계를 통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회복하여 돌이켜 오게 하시며 [33:6-7]
이전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큰 기쁨과 
세계 열방 앞에서 찬송과 영광이 되며
그들에게 주신 복을 보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33:8-11]

특별히 오늘의 말씀에서 바벨론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결사항전이 헛된 일 이라고 하시며
이것은 바벨론의 힘이 커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나로부터 말미암은 일이라고 하심은 두 절로 그치는데 반해

그들의 회복과 치유와 다시 받을 축복의 말씀은
네 배나 많은 여덟 절로 선포하게 하심을 보면서
그들이 일시적인 징계에 떨어지나 
결국은 복을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된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마치면서 마음에 새기게 되는 교훈은
첫째로 내가 사명을 맡은 자리에서 힘이 소진되어
의욕이 상실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가게 될 때 
다시 살아나는 출구는 부르짖어서라도 기도해야 함을 배우며

두 번째로 사명자는 자신의 육신이 감옥에 갇혀도
자신이 자기 안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갇히지 않는 한 
그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세상을 향한 혹은 자신이 속한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예레미야가 당한 것처럼 
매국노/변절자/사람들을 낙심케 하는 자라는 말을 들어도
그의 메시지는 시종여일하게 같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가 작정하시고 진행시키는 일을 
단독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돔성의 멸망 전에 아브라함에게 알리셨고[창18장]
지금 예루살렘 멸망 전에 예레미야에게 알리신는 것처럼 
말씀 전달의 사명자로 세운 종들과 
특별히 깨어 기도하는 종들의 영혼을 통해 
그의 비밀한 계획들을 알리시며 더욱 기도하게 하심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