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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37:1-10(3) 양다리 걸치는 신앙에서 벗어나기

by 朴 海 東 2020. 9. 26.

양다리 걸치는 신앙에서 벗어나기

예레미야 37:1-10

[오늘의 말씀 요약]
1)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바벨론에 의해 여호야김의 형제이자 
고니야(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다[37:1]

2)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예례미야를 통해 
전달하시는 말씀을 여전히 받아드리지 않는다.[37:2]

3)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다.[37:3]

4)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올라옴으로 바벨론 군대가 
일시 포위를 풀고 물러간다. [37:5]
(이것은 시드기야의 기도 부탁으로 되어진 일이 아니라
바벨론 점령지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반역 진압을 위해
바벨론 군대가 일시 이동한 틈새를 이용해 일어난 일이다)

5)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37:6-10]
(바벨론 철군을 기뻐하는 유다인들에게)
바벨론 군대가 다시 와서 이 성을 빼앗을 것이며
바벨론의 부상자들만으로도 이 성을 불사르게 될 것이라 하신다.

적용하기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 11년은 
왕국의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잃어버린 세월 11년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실제 성경의 기록은 유다의 마지막 왕이 시드기야가 아닌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야긴으로 인정하고 있다(왕하25:27)

이미 1-2차에 걸친 바벨론 침공과 포로지 추방이 있었다
BC 605년 다니엘을 비롯한 엘리트 귀족들이 잡혀갔고
성전의 기구들도 약탈당하여 제사 기능이 마비 되었으며
2차로 BC 597년 여호야긴이 잡혀가고
시드기야가 즉위하던 그해에는 왕궁의 기능도 마비시키고
군사들과 기능공들까지 모두 잡아가 
더 이상 반란의 구심점이 될 것들이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더이상 나라의 독립된 주권도 잃어버린 시대였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이렇게 바벨론으로 기울어진 시대에도
시드기야와 고관과 백성들은 여전히 종이호랑이가 된
애굽을 의지하고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애굽을 견제하던 바벨론 군대가
점령지 타지역의 반란 제압을 위해 이동하였을 때 
일시적 틈새를 이용해 올라온 애굽의 군대가
유다 왕국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레미야는 착각에 빠진 유다 백성들을 향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는 변화가 없으며
바벨론 군대가 다시 와서 
반드시 이 성을 빼앗아 불사르게 되리라고 예고한다.

1. 양다리 걸치는 신앙에서 벗어나기 

오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서 마음에 닿아지는 화두는
유다 백성들의 양다리 걸치기 신앙인데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에서 보여지며
한편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한데도
여전히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애굽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에서 드러난다. 

하나님도 의지하고 애굽도 의지하는 이 이중성은
실제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모습을 오늘 나의 신앙과 삶에 적용해본다면 
애굽으로 상징된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것으로써 
오늘 나는 하나님과 세상(현실) 사이에서 
이런 양다리 걸치기 신앙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죄악으로 어둠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선택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그의 작정과 섭리가 
우선 나에게 고통이 되고 손해가 되는 일이라도
그의 뜻에 맞추고 순응하는 길 밖에 없으며
이러한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이 유다 왕국이 나가야 할 길이었고
오늘 내가 나의 신앙과 삶에 적용해야 할 진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지나고 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며
내가 상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한 
새 희망의 길로 이끄신다는 것이
언제나 변함 없는 성경의 보편적 진리이다 

주님! 
앞날이 보이지 않고 
다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기록된 말씀이 보여주는 
보편적 진리의 로드 맵을 따라 
오늘 나의 행보를 정할 수 있게 하옵소서

 

2. 강대국 의존에서 하나님 의존으로 돌아서기:

더불어 오늘의 말씀을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적용하면서
지금 우리는 국제 정치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우리나라는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도 생각해본다.  

엊그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의 기조연설에서
우리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촉구하였는데 
이해 당사자인 미국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이라는 절망감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정부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소연평도 NLL 근처에서 실종되어 
북한 수역에서 사살당한 기사로 인하여 국내 여론이 들끓으며
이런 와중에 북한의 실권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 발표와
또 이를 둘러싼 국내 여론이 양분되어 대립하는 것을 보았다. 

북한과 남한 그리고 이들의 종주권 노릇을 하려고 하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는 눈치를 보아야 하며 
자주 독립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쯤이나 진정한 주체를 가진 독립 국가가 되어 
국제 정치 질서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평화 통일 정책 추진은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하여 
미국의 가름막에 막혀있는데 이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자국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일에는 
동맹도 혈맹도 좋지만,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나가는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주변 열강들의 변화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힘 있는 나라들이 아니라 
세상 나라들의 역사를 이끄시며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 앞에 기도하며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을 배운다

오늘 우리 한국 정치의 보수 진영에 자리를 틀고 앉은 교회들이
대규모 집회를 나갈 때마다 손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미국이 봐주기를 바라며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과연 이 점을 어떻게 내려다보실지 궁금하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바벨론이 강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위한 일시 도구로 사용되어
유다 왕국을 접수하게 되도록 그 나라를 강하게 만드시며
당시 국제 질서를 주도하게 하신 것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오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하나님 절대 주권 사상에서 볼 때

우리는 헛다리를 딪어서도 안되고 
우리는 양다리를 걸쳐서도 안되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만군의 주 하나님 앞에
그리고 그의 주권적인 작정과 섭리 앞에서 
두 손 들고 드리는 항복 기도를 통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그가 열어주시는 열린 문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