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서당/예레미야

예레미야 37:11-21(2) 시련 속에서 더욱 빛난 하나님의 말씀

by 朴 海 東 2020. 9. 27.

시련 속에서 더욱 빛난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37:11-21

 

코로나 팬데믹이 온 세상을 덮어 나가고 우리의 산하에도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는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늘 또 다시 아름답게 펼쳐지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 아래 
구월의 세 번째 주일을 맞는다 
들엔 이내 가을이 깊어서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리다 보면
보랏빛 들국화며 우거진 갈대 숲들이 변함없이 반겨주는데 
오늘도 내가 자전거로 달려가는 종착점 아치형 다리에서 서서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오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1. 진정한 리더쉽의 조건 - 휘둘리지 말고 소신을 밀고 나갈 것 

오늘의 말씀 예레미야 37장 후반부를  읽으면서 
불현듯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생각났다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 1623년 4월 11일 (음력 3월 12일)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 반정에 성공한 서인 붕파는 
자신들이 옹립한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가 
중국의 평원을 놓고 명과 다투고 있던 청을 배척하고
사대주의 명을 지지하는 서인 세력들을 힙입어 
왕위에 올랐음으로 친명 정책으로 나가기를 고집하였다. 

따라서 청나라 홍타이지가 군사를 이끌고 와 왕이 피신한
남한산성을 포위했을 때 척화파의 대표 김상헌의 주장과  
주화파의 대표 최명길의 간청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왕 인조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청나라의 공격 앞에 굴복하고
결국 남한산성에서 나와 이전에 조선이 오랑케라고 불렀던
여진족 금의 후대- 청나라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런데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조선의 우유부단했던 인조보다 더 우유부단했던 왕이었던 것같다. 
그는 친바벨론으로 나가는 것이 살길이라고 주청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전언을 무시하지 못하면서도 
한편 바벨론을 배척하고 친애굽정책을 고집하는 신하들로 인하여
그는 최후 결정권자인 왕으로써 자기 소신을 주장하지 못해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시드기야의 흔들리는 마음은 겁잡을 수 없어서 
지금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만들어놓은 토굴 감옥에 갇혀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불러와서
나라의 운명을 비밀히 물어보는 것에서 엿보이는데[37:16-17]
이는 그가 신하들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이렇게 드러낸 것이다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성경의 역사에서도 보는 것처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국사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왕의 자리는 
그냥 이름과 명예로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멸망으로 가는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선지자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결국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신하들에게 휘둘려서 
비침한 최후를 맞게 되는 시드기야 왕의 이야기는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의 선택이 
그에 속한 공동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배우게 한다. 

2. 오해 받는 자리에 나가서 억울한 누명을 쓰지 말것 

본문 37:11-13절에서는 바벨론 군이 애굽 군대의 출병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고 일시 물러난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적고 있다

우리 개역성경에는 갈대아인의 군대[바벨론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해 예루살렘에서 떠났다고 썼는데  
영어성경 NIV 버전에서는 단지 두려워해서라는 말은 빼고 
단지 애굽의 군대 때문에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이러한 상황 변화는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복합적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이미 애굽의 군대는 BC 605년 유프라테스 상류에서 있었던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군대에게 결정적으로 깨졌기 때문에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기록들을 보면 
여기서 애굽 군대가 다시 바벨론 군대를 능가해서가 아니라 
바벨론 제국이 점령한 또 다른 지역의 반란을 제어하기 위해
애굽의 관문을 지키던 바벨론 군이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이에 
애굽 군대가 에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이 열린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일시적인 변화를 오판하고 있는 유다 왕국에서
그동안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살길이 있다고 외쳐온 예레미야에게는
이것이 비록 일시적 변동이라고 하여도 매우 곤란한 입장이 된 것 같다.
왜냐하며 유다 왕국이 의지했던 애굽 군대로 인하여
바벨론 군이 포위를 풀고 철수 했으니 
자칫하면 그동안 예레미야가 전했던 예언들이 
거짓으로 몰릴 수 있음으로 예레미야는 잠시 이러한 상황을 피하여 
자신의 고향 베냐민 땅으로 올라가[1:1]
돌아가는 상황의 전개를 관망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원문을 직역한 영어성경 KJV 버젼은 이런 의미를 담아 
예레미야가 자신을 백성들 가운데 분리 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려 했다는 것으로 번역되고 있다.

적용하기

어찌 되었든 일시적이나마 변화된 상황에서 
예레미야의 입장이 곤난하게 되었어도
선지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그냥 예루살렘에 있었으면 좋을 뻔하였는데 
자신의 고향 베냐민 방향으로 나가는 
예루살렘 북문을 나서다가 문지기에게 체포되고 만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살길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하여서 
유명인사가 되어있는 그를 문지기는 금방 알아보았고 
이제 바벨론 대신 애굽이 득세함으로 
선지자가 도망간다고 생각한 문지기 대장은
예레미야를 고관들에게 고발하고 
그것도 무서운 지하 토굴 옥에 갇히게 하였으니
아마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려고 했던 것에 
크게 후회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참 선지자 예레미야가 당하게 된 이런 곤욕을 보면서
말씀의 종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찌되었던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
아무리 상황이 바뀌어도 
오해 받을 자리에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된다.

3. 어두운  시련 속에서 더욱 빛난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의 종 예레미야  

그는 오해를 받아 누명을 쓰고 깊은 토굴 옥에 갇혀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시드기야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예례미야을 토굴  옥에서 불러내어 
나라의 운명을 물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는데
여기서 예레미야의 믿음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이미 바벨론 군이 철수하고 
애굽 군대가 예루살렘의 보호자로 등장하였는데도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변함없이 자신이 지금까지 예언해온 그대로 
왕이 바벨론의 손에 넘겨지게 될 것을 예고하는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변동 없이 그대로 전하게 되는 것에서 선지자의 신실성을 엿보게 한다. 

예레미야가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있는 무서운 토굴 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바벨론에서 애굽의 영향력으로 바뀌었음으로 
시드기야 왕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함으로 
유다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전달하였으니 말씀의 승리가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 왕의 마음을 움직여 예레미야를 동정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가 다시 무서운 토굴 감옥으로 가지 않고 
시위대 감옥 뜰에 거하게 하며 
또 전쟁 중에 설치된 비상식량 보급소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공급받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 예레미야를 이렇게 보호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전할 말씀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 33:3절에 나오는 말씀으로써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저 유명한 말씀이 
바로 여기 시위대 뜰에서 계시로 주신 말씀인 것을 또한 상기하게 된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가장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은
참 말씀의 종은 자신이 전한 말씀과 상반되게 상황이 된다 하여도
자신이 받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음 말씀이고 뜻이라면 
세인들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오해하던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함을 마음에 새기게 되는데
예레미야 역시 참 선지자 이었지만 그 역시 인간인지라 
그의 유약함을 보인 오늘의 말씀에서 마음에 새길 교훈으로 받는다.

그가 예루살렘 성문을 벗어나 고향 베냐민 땅으로 가려했던 것 
그리고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시드기야 왕에게 
생명의 보존을 위해 호소하고 탄원한 것들은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의 약점을 가졌다는 것을 엿보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큼은 
끝까지 일관성 있게 변동 없이 내세우는 주장에서는 
약함 가운데 강함을 보이는 참 선지자의 기상을 엿보게 한다. 

주님! 
나에게도 이러한 선지자의 기상을 주셔서 
연약한 가운데서도 바른 말씀을 위해서는  
올곧은 강직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