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부추기심
예레미야 51:1-14
한동안 운동 삼아 타던 자전거를 처박아 놓고 타지 않았는데
어제는 모처럼 다시 자전거를 꺼내어
한강 아라뱃길 관문이 있는 가을 들판으로 나갔다.
강변에 앉아서 보니 인천 앞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한강의 물은
조수 간만의 영향을 받는지 강물의 수위가 많이 낮아져 있었다
가을 찬 바람이 강물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변이 쌀쌀했지만
자전거를 강변 한쪽에 세워놓고 강둑에 앉아 기도했다
누군가가 깔고 앉기 좋은 깔개 하나를 주변에 놓고 가서
그 위에 앉아 강 건너 일산 쪽 하늘 가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티 없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님! 저는 주님을 위하여 무슨 큰일을 하지도 못했고
지금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별 볼 일 없는 인생인데
주님께서 나를 아직 세상에 더 두고 계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때 주님께서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와 분명히 말씀 하셨다
네 생각에 너의 삶이 네게는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지금 기도하고 있는 네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너는 나에게 특별하며
나에게 네 마음을 기울여 교제하는 이 한 가지 만으로도
나를 기쁘게 하며 네 삶은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믿음의 자취를 남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귀하게 보시며
이것이 아직 너를 이 세상에 더 두고 있는 이유라고 하셨다.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영상 2도로 시작하는 오늘 아침도 어제처럼 춥고 쌀쌀 하지만
가을 햇살이 비쳐오는 창가에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늘 내게 주시는 생명의 삶을 위한 오늘의 말씀을 펼쳐든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바벨론 멸망의 예언은 50장과 51장에 나오는데
앞서 심판의 경고를 보낸 다른 모든 나라들의 심판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작심하시고 전달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본문의 말씀을 잠잠히 읽으면서 마음에 닿아지는 구절은 네 가지다.
1. 하나님의 부추기심 [51:1. 11]
2. 너의 죄악 가운데서도 너는 버림받은 홀아비는 아니다.[51:5]
3. 온 세상을 취하게 하는 바빌론 금잔[51:7]
4. 재물의 많은 자에게 닥치는 재물의 한계[51:13]
1. 바빌론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부추기심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빌론과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메데 바사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시고 바빌론을 치게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추기심은 비단 성경 속에 나타나는 것만 아니라
멀리 갈 것도 없이 금세기 우리나라 6.25 전쟁에도 있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일제 36년의 억압에서 해방되었을 때
서로 나서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신탁통치와 미군정 기간을 거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싸움질만 하는 사이에 중공과 소련의 지원을 업은
북한이 남조선 해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전쟁을 도발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한의 김일성의 마음을 부추시시고
중공의 모택동/주은래의 마음을 부추기셨으며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마음을 부추기신 결과인가?
오늘의 말씀을 근거로 생각할 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신 결과라는 것을 볼 때
그렇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는가
무론 당시 우리 사회의 정치적 모리배들의 싸움도 문제였지만
하나님께서 더 크게 보신 문제는
일제 36년 치하에서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교단 총회에서
일본의 천왕 숭배[우상숭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한 것과
또 해방이 되었어도 회개하기 보다는
신사참배로 교회를 떠났던 인사들과
신사참배의 굴욕을 감수하면서
교회를 지켰다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진 것이다.
이러한 한국교회 분위기 가운데서
신사참배[우상숭배]의 죄악을 처음으로 회개한 것은
전쟁통에 부산으로 피난 간 목사님들이 부산 초량교회에 모여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며 3일간 회개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회개 기도의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에
미국이 긴급제안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소집되었고
유엔의 참전을 결의하는 이 자리에
당시 안전보장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던 소련이 참석하지 않아서
유엔 산하 16개국이 한국전에 참여한 것도
다 하나님의 부추기심/격동시키심/충동질하심을 따라 된 것이리라
적용하기
그리고 이 전쟁으로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간 우리 군이
불과 3개월 만에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고 9.28 서울 수복과 동시에 계속 북진하여
북한군을 압록강 밖 중국 쪽으로 몰아낸 것과
1950년 10월 24일 중공군이 항미원조를 전쟁의 명분으로 걸고
[抗美援朝:중국ㅇ이 미국을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의미]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온 것도
(아직 우리의 회개가 차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나)
하나님의 허용적 부추기심으로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던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뒤통수를 맞고
일본에 사용했던 원자폭탄을 더는 중공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중국 요녕성/길림성 쪽에 터트리자 하였으나
미국의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즈벨트를 이어서
후임 대통령이 된 트루먼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고
3차 대전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그를 명예 제대시키고
결국 휴전으로 가는 전략을 세움으로
결국 우리 조국 한반도가 두 나라로 갈라진 상태에서
세계 200여 나라 가운데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것도
모두가 우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충동질과 혹은 악한 일에 대한 허용적 충동질이
서로 작용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 한반도의 장래와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오늘 여기 이 한반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들의 자세에 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익을 위해서는 서로 마음이 합해져야 하는데
당파와 당의 이해관계를 위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싸움질이 여전한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서
그리고 이러한 정치판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민족의 화해와 화평을 위해 나서야 할 우리 교회들조차
이런 싸움 판에 끼어들고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세상의 거의 민주 국가들이 보수와 진보의 진영으로 나뉘어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서로 잘 보이려고
국익을 위한 건강한 견제의 싸움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좋은 일이지만
우리나라 정치판과 양분된 사회 분위기에서 보는 것처럼
나라의 안정과 명예와 국익은 상관없고
오로지 당과 당파의 이해관계를 위한 일을 위해서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일 이다.
언젠가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타게 되었을 때
그를 반대하는 당에서 이 상을 받지 못하도록
노벨상 심사위원들에게 로비를 했으며
상을 받고 난 이후에도 그 상을 취소해주도록 로비를 했다는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는 이제 언론에 회자될 만큼
공개적이고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내었다.
노벨 심사위원회에서 이렇게 해서는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고까지 했다는데
정말 물고 뜯고 싸우다 피차 멸망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며
주님 우리 민족의 갈갈리 찢겨져 있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된다.
현제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과제로써
공평과 정의에 선 나라를 위하여 마지막 남은
사법개혁- 공수처 설치까지 끝나고 나면
다음에 나오는 대통령은 어느 당에서 누가 될지 모르지만
진정 우리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차기 대통령이 나오게 해달라고 날마다 빼먹지 않고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남한 사회에서 한마음으로 통합되는 마음이
벌써 75년을 넘기고 있는 남북의 이념 대립과
서로 원수 된 것도 풀어내는 민족 통합으로 이루어
남과 북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로를 통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시발점이 되고
천국 복음을 위한 선교 일등 국가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도하기
주님!
사람이 기대할 수 없는 이런 놀라운 일들은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며
오직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기시는 충동질로
사건과 일들을 만들어 내시는 주님의 손길에 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버리지 마옵소서
우리 민족 대한민국에 긍휼함을 베푸시고
우리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사악함을 버리고
나라의 안정과 국익을 위하여 하나 되게 하시며
우리 교회들이 먼저 솔선하고 낮아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선하신 부추김과 충동하심이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 가운데 역사하시어
이 나라의 장래와 운명이
주님의 선하신 손길 가운데 인도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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