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구원자는 강하시니 그가 대신 싸우시리라
예레미야 50:33-46
서리가 내린다는 오늘 상강(霜降) 아침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영상 4도로 시작한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해지는 늦가을은
나무들도 단풍의 옷을 갈아입고 마침내 대지의 색깔로 돌아가
추운 立冬[입동]에 들어서기 전 겨울 채비에 들어가는가 보다.
2020년 10월 23일
오늘의 말씀은 한때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되어
고대 근동 지방에서 세상을 호령했던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세계 경영의 근저에는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과 유다[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를 위하시는
세상을 향한 그의 작정과 섭리를 집행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크게 세 가지 묵상의 소재가 마음에 닿아진다.
1. 우리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50:34]
2. 바벨론 심판에서 나타나는 칼과 가뭄과 황무지 [50:35-40]
3.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전략.[50:41-44]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자시며 대신 싸워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죄의 굴레에서 벗겨내고
정화 시키기 위해 일시 바벨론의 손에 내어 주셨으나
그들이 너무 심하게 학대하는 것을 더 보지 못하시고
그의 마음에 긍휼이 불붙어서
강한 용사가 되시며 그들의 구속자로 대신 싸우시리라고 하신다.
[물론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어서
신흥제국 메데 바사 제국을 일으켜 바벨론을 무너뜨리게 되지만
이것이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땅 위에 있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과 구원의 방법은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오늘 우리 시대에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된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신음한 것처럼
땅에 있는 성도들이 바벨론으로 상징된 세상의 죄와 유혹에 노출되어
오늘도 죄의 굴레에 매여 근심하며 고통하는 것을 주님은 잘 아신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 세상의 보편적 문화가 된 인터넷 매체가
온 세상을 덮어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해버렸다.
이 세상 문명의 이기가 밝은 면으로 사용되기보다
인간의 죄적 심리를 자극하는 어두운 면으로 몰아가다 보니
지금 우리들의 시대는 과연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교회와 성도들도 죄와 죄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것을 본다.
따라서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진실한 성도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 것처럼
마귀가 조장하는 이 죄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이들을 사로잡은 세상의 손은
애굽 바로의 손이 그랬고 바벨론의 손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한다. [50:33b]
그러나 이제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너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요
반드시 너를 위하여 싸울 것이며
너에게 평안을 안겨 주리라” [50:34] -아멘-
[적용과 교훈]
내 안에는 바벨론의 압제 아래서
해방의 날을 사모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신음 기도처럼
이 세상 죄악의 문화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백성[성도]이며
자유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원하는
성령님이 주시는 강렬한 갈망이 있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 하신다
나는 너의 구원자이며
나는 강한 자이며
나는 너를 위해 대신 싸우는 자이며
나는 너에게 평안을 주리라[50:34]
아멘! 아멘! 아멘!
주님!
오늘 주신 이 말씀 붙잡고
내 마음이 죄의 세력에 눌리어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잠길 때
나 자신만을 바라보고
신음하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여
나의 구속자 되시고
강한 용사가 되시며
대신 싸워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신 승리의 보화로써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주님! 나의 손 잡아주시고
나의 연약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아멘-
2. 바벨론 심판에서 나타나는 칼과 가뭄과 황무지 [50:35-40]
바빌론이 세계의 중심으로서 번영을 누린 것은
갈데아 왕조 신(新) 바빌로니아 시대
느브갓네살 2세(재위 BC 605~BC 562)의 치세에서였다.
[이때 여느 다른 나라들처럼 유다 왕국도 정복되고
예루살렘도 함락되며 유다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다]
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 되는데
그의 치세 아래서 모든 면에서 번영을 구가하며
세계 10 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공중정원"과
(바벨탑의 재현으로써) 지구라트도 재건하게 된다.
바벨론은 제국의 안전을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해자로 삼아
방대한 성읍을 건설하였기 때문에
적군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고 화살도 날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칼/가뭄/황무지의 재앙이 임했다.
1) 칼의 재앙[50:35-37]
그러나 역사 기록에 남은 바벨론 멸망의 날을 보면
BC 539년 메데-바사의 연합군[후에 페르샤 제국]의 고레스가
군사들을 이끌고 바벨론 성을 공격하고자 했을 때
전쟁의 칼이 그들 위에 떨어지리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50:35-37]
모든 저지선을 뚫고 이 궁전의 심장부인 왕의 처소까지 들어왔는데
이것은 두 번째 재앙으로써 가뭄으로 강을 말리는 재앙과 관련된다
2) 가뭄으로 강을 말리는 재앙[50:38]
가뭄이 물 위에 임하여 말리리라는 예언은[50:38]
고레스 원정군이 유프라테스 강물을 성 좌우로
180개씩 360개 물줄기로 돌려놓는 작업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는 강바닥 길을 열게 됨으로
바벨론 왕의 궁전 심장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3)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리라는 재앙[50:39-40]
바벨론은 오늘 우리들의 시대처럼 기획된 도시여서
시가지도 바둑판처럼 길을 놓았을 만큼 잘 조성되었고
성에는 12문이 있고 궁전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며
유프라테스를 해자로 둘러친 성이었기에
적군이 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격퇴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는 성이었는데 이 성이 함락되고
지금은 폐허의 언덕 위에 황무지로 남아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야를 점령하고 난 후
바벨론 성을 다시 재건하려 했는데
습지병으로 30대 나이에 죽게 되고
그 이후로 이 바빌론은 선지자의 예언처럼 황무지로 남아있다.
3.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전략.[50:41-44]
하나님께서 한 개인이나 한 국가를 무너뜨리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시고
격동시키는 심리를 따라서 발생되는 것임을 본다
“보라 내가 한 민족이 북쪽에서 오고
큰 나라와 여러 왕이 충동을 받아
땅끝에서 일어나리니........” [50:41]
메데 바사 제국의 바빌론 침공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당시 메데와 바사는 서로 분리된 나라였고
바빌론의 한 속주에 불과한 족속이었다
그러나 유프라테스 강 너머에 있는 이 나라들이
서로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바빌론을 공격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충동질하시고
격동시킨 결과로써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이것은 우리 인류사에 나타난 전쟁에서도 볼 수 있는데
1,2차 세계 대전에서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던 미국이
영국, 프랑스가 주축이 된 유럽 전선에 개입하고 연합하여
두 번의 전쟁을 다 승리하게 되는 배경에는
본래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 하는 미국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전하도록 충동질하시고 격동시킨 사건들이 생겨서
미국이 메데 바사의 연합군들처럼
그리하게 된 것을 역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로 전 유럽을 상대로 하여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독일이 변심하여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쏘런을 공격함으로
전쟁 발발 초기에 다 잡았던 승기를 놓친 것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충동하시고 격동시킴으로 된 것인데
아리안 족의 후계인 독일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위하여
유태인들처럼 슬라브 민족인 소련도 없애야 한다는 야심이
그들을 충동질하여 무모한 전쟁을 확대함으로
소련의 추운 동장군 스탈린 그라드에서 항복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패한 것을 역사 기록에서 보게 된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시는 세계 경영을 이루어가시기 위해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선한 충동 내지는 악한 충동을 주심으로
개인이나 나라들 가운데 자신의 작정과 섭리를 이루심을 볼 때
오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장래와 운명을 앞에 놓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정치 경제 군사력이나 그 어떤 것보다 더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시고 자기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이 나라 민족들 위에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구약성서당 > 예레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미야 51:15-24(2) 주님은 나의 분깃, 나는 그의 소유 (0) | 2020.10.25 |
---|---|
예레미야 51:1-14 (2)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부추기심 (0) | 2020.10.25 |
예레미야 50:11-20[2] 은혜 중에 은혜로써 온전한 죄사함의 은총 (0) | 2020.10.21 |
예레미야 50:1-10(2) 바벨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예루살렘으로 향하기 (0) | 2020.10.20 |
예레미야 49:23-39(2)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해갈 나라와 백성이 없다. (0) | 2020.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