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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다니엘 *

다니엘 11:1-19(연결중복)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by 朴 海 東 2020. 12. 9.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다니엘 11:1-19

1.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11:1-9]

오늘의 말씀은 이미 앞선 문맥에서 나왔던 
7장과 8:19-26에 대한 확대 해석이며
10장 힛데겔 강가에서 본 
이상과 전달 받은 계시의 상세한 내용들이다

다니엘이 보았던 이상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마치 암호 코드를 해독하듯이
장차 인류 일반 역사 가운데 나타날 일들을 
상세하게 해석해 주고 있는데

바벨론의 패망에서부터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등장과 
그리스 제국(헬라)의 충돌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 이후 
네 개로 나눠진 제국들 중에서  
남방 왕(애굽)과 북방 왕(시리아)의 세력다툼과 
그 사이에 끼어있는 유다민족의 운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또한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의 등장까지
약 400년간 더 이상 선지자가 나타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계시도 없었던 이 침묵의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주신 계시를 통해
세상 인류 일반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기 세상 나라들의 돌아가는 형편과 사건들에 대해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 내신다. 

앞선 문맥 10장에서 왜 그토록 사단과 그의 추종 세력들이 
다니엘에게 전달되는 계시를 차단시키고 막았던 것일까....?

오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진행되는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예지 예정과 전지전능하신 주권 아래서 펼쳐지며
그가 모든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이시므로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마치 자기에게 속한 것처럼 속이는 
사단에게 큰 치명타를 안겨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사단은 거짓과 속임수로 세상을 미혹하지만 
그는 결코 인간과 세상의 장래사를 알 수도 없는 유한 한 존재요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과 역사의 주인으로서 
모든 것은 그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만 홀로 영광 받으셔야 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고 사라져가는 나라들의 흥망성쇄와 
왕들과 열강의 각축들이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위태롭게 보여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그들위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사실 유다 백성들이 포로 후 고토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결성하여 나아갈 때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400년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이 변화무쌍한 주변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매우 위태 하였지만 그들은 보호되었고 마침내 
자기 백성의 진정한 왕으로 오시는 
매시야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다니엘에게 전달된 이 계시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험악한 역사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과 삶을 지탱해주는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 교훈과 적용 ]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 존재했고 소멸해간 모든 나라를 계수하시며
그 나라들의 세세한 역사를 주도하시고 아시는 분이시며

또한 한 나라의 왕으로 부터 시작해서 비천한 종의 자식까지 
심지어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세세히 아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고 사람 사는 세상의 장래는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래사의 길흉을 알기원하여 
헛된 신(마귀와 귀신들)을 의지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지만 
이러한 도모는 모두 헛된 것들 뿐이다.

오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세상 나라들과 사람들의 운명이 좌우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땅에서 그를 예배하고 섬기며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얼마나 다행하고 복 된 것인가(?)
세상에 마이더스의 손은 없다
오직 세상의 역사를 주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만 있을 뿐이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아멘-

 

2. 참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11:10-19]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북방 왕(시리아)과 남방왕(애굽)의 세력 충돌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 인들의 운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말씀이다.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대략 주전 230년부터 
주전 190년 사이에 벌어진 국제 정치질서의 판도를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그리스의 역사학자 폴리비오스[BC 200-118]의 글 
"로마사"에도 잘 나타나 있어서 기록된 성경 말씀의 참고 배경이 된다.

다니엘이 주전 536년에 받은 오늘의 말씀 계시가 
약 30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 세계 정치질서의 판도를 좌우했던 
북 왕국(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와
남 왕국(애굽)의 톨레미 4세 그
리고 신흥강국 세력으로 부상한 로마와 3각 구도를 이루면서 펼쳐진다.

이러한 열강들의 3각 구도 속에서 
북 왕국 안티오쿠스 3세가 정략결혼에 이용한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며[11:17] 
애굽과 로마의 동맹으로 시리아의 세력을 꺾은 
로마 장군 " 루디우스 스키피오"의 이야기는[11:18]
인류 일반역사에도 잘 나타나있는데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장군(스키피오)는
후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군대도 격파했다.

이러한 역사의 진행과 중요 인물들이 
이미 다니엘이 받은 계시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을 보면서 
세상 역사를 주도해 가시는 
우리 하나님의 세세하신 작정과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본문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구절은 
14절과 16절에 나타난 유대 백성의 운명이다. 
북 왕국(시리아)와 남왕국(애굽)이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충돌할 때
그 틈새에서 독립운동을 일으켰던 유다의 정치세력들이 
애굽[이집트]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좌절하게 되며[11:14]

다시 시리아가 패권을 잡았을 때는 북왕(시리아)에게 
압제와 핍박을 당하게 되는 모습이다 [11:16]. 
따라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열강들의 틈 바구니 속에서
참 평화와 안정을 얻지 못하는 유다의 운명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의문을 갖게 된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주로 부터 시작해서 
출애굽 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거주 지역을 지중해 동쪽 해변인
팔레스틴으로 정하신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 같다

지정학적으로 이 지역은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항상 남방(애굽) 세력과 
북방 세력 (앗수르/바벨론/페르샤/시리아)의 충돌 접전지역이 되었는데 
따라서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가 없이는 평화가 보장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유다의 한 포악한 세력이 
남북왕국 세력의 충돌 틈새에서 독립과 평화를 가져보려던 시도가 
무효하게 되어지는 말씀을 보면서[11:14]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 안정과 평화는 
오직 저들의 보호자시며 왕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음을 본다.

[ 적용과 교훈 ]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 평화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남방 세력과 북방 세력의 충돌 지점이 되어온 
유다 백성들에게 참 평안과 안정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고 계셨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해안가 절벽 바위틈에 
어미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품고 보호 하는 것 같은 평화이다.

세상은 폭풍우 바다처럼 언제나 포호하고 싸우며 
평안할 날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며 지키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 평화는 
환경적인 안정 가운데서 오는 평화라기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폭풍 같은 현실이지만 
주님 품 안에서 안심하는 평화이다
이 평안은 결코 세상이 줄 수 없으며 
또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이다[요14:27]

남방 세력과 북방 세력 사이에 끼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참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없었던 유다의 운명을 보면서 
오직 주안에 나의 참 평안이 있다는 희망의 음성을 듣는다

주님!
폭풍우 몰아치는 날,
어미 새의 품에 안긴 한 마리 작은 새처럼
험악한 세상 속에서
주님 품에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