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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다니엘 *

다니엘 11:20-35(연합보충) 비열한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길

by 朴 海 東 2020. 12. 10.

비열한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길

다니엘 11:20-35

 

1. 비열한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길[11:20-27]

오늘의 말씀은 특별히 북왕국 시리아의 비열한 왕으로 등장하여 
후에 예루살렘에 가공할 만한 핍박을 가하게 될 자로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니스에 촛점을 두고 있는데 
그는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등장되고 있다

앞선 문맥에 등장했던 안티오쿠스 3세가 
애굽과 로마 연합군에게 패하고 죽은 후
장남 "실루커스"가 그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주전 185~175)

그는 아버지가 갚지 못한 전쟁 배상금 지불을 위해 
토색하는자들로 강압적인 세금을 거둬들이게 되는데 
심지어는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보물들까지 
빼앗아 오게 했다고 한다. [11:20]

그러나 그는 자기의 부하에게 피살되고 
그 뒤를 이어 정권을 잡는 자는 안디오쿠스 4세인데 
그는 왕위에 오를만한 인물이 못 되는 
비천한 자(비열한 자)로 소개되고 있다[11:21]

본래 그는 안티오쿠스 3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가 로마에 패배했을 때 로마로 잡혀가 
14년간의 인질 생활을 하고 돌아오게 되어
제대로 된 왕자의 수업도 받지 못한 자로 왕이 된다. 

그는 전쟁 배상금을 위하여 강압적인 세금을 징수하다 죽은 
"실루커스"의 동생으로 자기 형님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실루커스 5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자이니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 세종의 아들 단종과 충신들을 죽이고
자기의 왕권을 강화시킨 세조에 비견할만한 인물이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항상 비열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웃 나라를 정복할 때에 맨 먼저 "거짓된 평화 조약"을 맺어 
화친 관계를 맺은 후 평화롭다 여겨지는 때에 
불시에 공격하여 점령하고 승리를 얻으므로 비겁한 자,
비열한 자, 궤휼에 능한 자로 소개되고 있다.[11:22-23]

그리고 이러한 비열한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고 
많은 재물을 약탈하여 분배하는 방법을 통해 
정치적 기반이 약한 자신의 측근 세력들을 키워나갔다(11:24).

오늘의 말씀 말미에 나오는 남방 왕(애굽)군대와의 전쟁에서도 
왕의 측근들을 매수하여 자기의 주군을 배신하게 하는 [
궤휼을 써서 이기며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데(주전 169년)
두 왕이 한 밥상에 앉았으나 서로 해하고자 하여 
거짓을 주고 받게 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1:26-27]

[ 적용과 교훈 ]
본문에 등장하는 이 비열한 왕의 모습은
비열한 사람이 득세하는 비열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함께 한 밥상에 앉았지만 서로 해하고자 하는 거짓을 품고 
서로 마주 앉아 있는 두 왕의 모습은 흡사 서로 속고 속이는 
이 어두운 세상의 진면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11:27]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비열한 사람들이 오늘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가?

비열한 방법을 써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것같은 
세상에서 선한 양심과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비열한 방법을 나도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 같은 비정한 세상 속에서 
마귀는 나에게도 그런 방법으로 살아서 남으라고 속삭이지만

땅위의 성도가 살아 남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그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My shield is God Most High, 
who saves the upright in heart.[시편 7:10]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주님!
비열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나의 방패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므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거룩한 저항 [11:28-35]

본문 후반부는 다니엘의 동족 유다인들이 고토로 돌아간 후 
그 후손들의 시대 약 400년 후에 당면하게 될 
위의 비열한 왕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에게 
환난과 핍박을 당할 날을 예고하고 있는데 

거룩한 성전이 더럽혀지며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여 지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세워지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배교를 강요받고 타협하며 
타락하게 되는 바로 그 핍박의 날이다.[11:31-35]

이 비열한 북방 왕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남방 왕 이집트 [프톨레미 5세]를 치러 내려왔다가
남방 왕 프톨레미 5세의 지원 요청을 받은 
깃딤의 배들로 상징된 로마 제국의 개입으로[11:30]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심하고 퇴각하는 길에 
예루살렘을 지나가게 되면서 (분풀이를 하듯)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헬라화된  
유대인 배교자들을 주목하였는데[11:30] 
이는 그들을 통해 자기의 뜻(유대인들의 헬라화 정책)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마카비1서 1:11-15. 마카비2서4:4-17]

그의 군대는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하여 더럽히고
성전 제사를 폐하게 하였으며 거룩한 제단에 우상의 단을 세우고
핍박으로 유대인들을 회유하여 그들이 신앙을 버리고 타락시켜
그의 신과 헬라화 정책에 따르도록 유도하였다.[11:31-32] 

그러나 그때 그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고 했는데[11:32]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떻게 표현되며 증명되는 것일까?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훼손되는 그 치욕의 날에
가만 앉아서 당하거나 타협하여 편안한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거룩한 분노를 가지며 저항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핍박자의 창검에 날아가는 
순교의 제물이 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훼손되는 것을 
결코 견딜 수 없는 사람들로서 [11:33-34]
이 핍박의 와중에서 분연히 일어나 마카비 혁명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제한된 기간이나마 
자기 백성에게 환난의 날을 허락하시는 것은
자기 백성의 연단과 순결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11:35]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환난과 핍박의 날은 
계시록 13장을 통하여 
장차 주의 재림 직전에도 나타나게 되는 
큰 환난날의 모형으로 계시되고 있다[계13:15]

 [적용과 교훈]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고 하였는데[11:32]
그렇다면 성도에게 강함과 용맹을 주는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신 계시의 말씀
곧 기록된 말씀으로써 성경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매일 그날그날에 주어진 말씀을 읽고 묵상 하는 것을 통하여
또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을 통하여 
성경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사는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는 강한 자가 되어 시련의 날에도 넉넉히 승리할 것이다.

그동안 매일 묵상은 습관적으로라도 해왔으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어나가는 일은 소흘히 했는데 
성경의 각장별 제목을 정하고 맥을 잡아서 
나의 기도 가운데 암송해 나가는 것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주님!
주의 거룩하신 이름이 훼손되는 그날에 
살아서 굴욕 받는 것보다
차라리 분투 중에 쓰러짐을 택하는 
거룩한 저항의 길에 서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