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요한1서

요한일서 1:1-10(2) 생명-교제-기쁨

by 朴 海 東 2021. 1. 1.

생명-교제-기쁨의 삶을 위하여

요한일서 1:1-10

 

2021년 새해 아침입니다 
여기 생명의 삶 게시판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어
2021년 이 한 해를 다 건너갈 때까지 
날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며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의의 길로 이끄시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혹 이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환경에 처할 때에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더 크게 경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21년 첫날의 말씀으로 주신 요한일서는 
제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하며
주님의 품에 자주 기대었던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바로 그 제자(요21:20)
사도 요한이 남긴 편지로써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누리는
생명-교제-기쁨의 축복을 가르쳐줌과 동시에 

2. 초기 교회 안에 은밀히 침투해 들어온
그노시스(영지주의)이단 사설을 배격하고 

3.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이 무엇인지 밝혀 줍니다. 

1. 생명-교제-기쁨

젊은 시절부터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이 세 단어는 
이제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해주는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핵심이 담겨있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셨음으로 
나도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고
생명의 원천이신 아버지와 교제하는 
영생(영원한 사랑의 교제)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축복입니다.

요한은 진정한 기쁨은 사귐(교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이 사귐 가운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되었는데
우리의 사귐은 끊어지지 않는 삼겹줄처럼
(말씀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가 된) 너와 나 사이 
(그리고)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합니다.[1:3]

2.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경계 

당시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온 가장 무서운 사상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그노시스(영지주의)였는데 
이들은 헬라(그리스 철학 사상)을 기독교에 접목하여 
물질과 육신은 악한 것으로 여겨서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며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부정하고
고도의 지식을 깨달은 자신들만이 
죄 사함을 받았고 구원받는 것처럼 말했는데 

바로 이점에 대하여 요한은
태초부터 계시다가 우리에게 오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들은 바요(have heard)
눈으로 본 바요(have seen)
자세히 보고(have looked)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have touched)고 말함으로 

육체를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하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님의 인성으로써 역사적 인물 되심을 강조하며
생명이신 그분 안에서 누리는 교제와 기쁨을 강조합니다

3. 바른 신앙- 바른 생활

더불어 영지주의 이단들은 
자신들이 고도의 지식을 깨달은 것처럼 행세하고 
자신들만이 영적 엘리트라고 자처하며 
자신들만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독점하는 자들이고 
자신들만이 죄에서 자유로워진 자들로 자처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런 영지주의 이단들의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로 더불어 나누는 진정한 사귐은
그가 주신 계시의 말씀에 반응하는 진리 안에서
그리고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함으로 가능한 것이며

또 이 빛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여 죄에 빠졌을 때는 
나의 죄를 자백하고 버릴 때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께서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을 강조합니다[1:9].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나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공적인 신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죄사함의 확신을 위하여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나)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9)

천주교에서는 사용하는 죄 사함과 관련된 두가지 용어가 있는데 
보속(penance)과 대사(indulgence)가 있습니다

보속(penance)이란....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로써
고해성사 때 사제는 신자에게 알맞은 보속을 부과합니다
예를 들면 몇 시간 기도하게 하거나 금식하게 하던지  
혹은 며칠간 봉사하게 하는 등 등의 댓가를 치루게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대사(indulgence)란 
교회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사람에게 벌을 면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그가 빛 가운데 계심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로 나가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으니[1:7]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보속을 하고 대사를 받음으로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예수의 피를 의지하지 않음이요 자기의 의를 세우고자 함이니
과연 이런 제도에서 죄사함의 확신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범죄하여 어둠에 처했을지라도
빛 가운데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하고
또 나의 죄는 내가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주님이 씻어 주시는 것이며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이미 흘려주신 보혈의 속죄에 
내가 믿음으로 참여하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지난 날 나 역시 죄 사함의 확신을 가르쳐주는 
요한1서 1:9절의 말씀을 몰랐을 때는 
내가 지은 죄의 사함을 확신하기 위하여
며칠 금식한다던가 혹은 산 기도원에라도 가서 
실컨 울고 부르짖어야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의 확신은 
속함을 위한 나의 어떤 보속적인 행위나 
혹은 감정적 확신으로가 아니라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이미 십자가에서 대속의 보혈을 흘려주신
주님의 은혜와 희생적 사랑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며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께 내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자백을 통하여 사죄의 은총에 참여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 사함의 은총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십자가로 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세족식 상징 행위에서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발씻김을 황송히 여기고 거절할 때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고[요13:8]
또 그렇다면 나의 온몸도 씻어주시라고 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하심에서[요13:10]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합된 자들에게 있어서 죄 사함이란

1. 천주교의 보속 같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2. 나의 죄를 내가 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씻어주는 것이며
3.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더럽고 냄새나서 발이어서 부끄럽지만 내밀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께 나를 솔직히 드러내는 자백이 필요함을 배웁니다[1:9]

4. 더불어 죄사함의 확신을 위하여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내가 죄 사함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욱
주님께서는 나의 죄를 사해 주시며
나와 더불어 나누시는 교제가 끊어지지 않기를 
너무나 바라고 계시다는 것이며

5. 내가 어떤 죄를 지었던지 
내가 정결함을 받아야 할 속죄의 영역은 
온 몸이 아닌 발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과 
또 발은 쉽게 더러워지고 매일 매일 씻어야 상쾌한 것처럼 
매일 매일 나의 허물과 부족함을 주님께 아뢰며
주님께서 그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회복을
연속적이며 일상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죄사함의 확신을 위하여 가르쳐주는 
요한1서 1:9절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세족 행위에 담긴
죄 사함의 진리[원리]는 나의 평생에 
내가 주님과의 사귐이 끊어지지 않기 위한 
생명줄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써 
오늘 2021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깁니다

주님!
날과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다시 열어주신 2021년 새해 아침입니다

이미 진리 안에서 열어주신
생명-교제-기쁨의 삶으로 이어지는
이 한 해가 되게 하시고

혹 범죄하여 실족하게 되었을 때도
죄 사함의 확신을 위하여 주신
요1서 1:9절의 말씀에 의지하여
어둠 가운데서 나와 빛으로 들어가 
주님과의 사귐이 끊어지지 않는 일 년 365일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