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1-13
주님!
2021년 2월의 첫날 입니다
해마다 2월이 돌아오면
추울 겨울을 밀어내듯
동구 밖 개울가에
얼음장 밑으로 개울물 흐르고
버들강아지 눈뜨는 개울가 풍경이
내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월이 시작되어
다시 새 책으로 펼쳐 든 생명의 삶으로
2월 한 달을 지나가면서
매일 매일 기록된 말씀 속에서 만나는
주님의 은혜가 풍성한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2021년 2월 1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은 다시 본동네(가버나움)에 오신
예수님의 행적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1. 지붕에서 침상채 달아내린 중풍병자와 예수님의 만남
2. 세관공무원 마태와 예수님의 만남 그리고 송별잔치
1. 중풍병자와 예수님의 만남에서 드러내신 예수님의 자기 계시[9:1-8]
같은 본문의 내용이 마가복음 2장과 누가복음 5장에 있다
예수님이 도를 가르치실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어서
이 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뜯고 달아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정말 엄청 파격적인 행동이며 파격적인 믿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파격적인 행동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예수님의 파격적인 말씀(선언)에 있다.
"소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당시 그 자리에 있다가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즉각 반발하여 하나님만 할 수 있는 말을 함부로 한 것이라고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갔는데 과연 이 한 마디의 말씀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리게)할만한 선언이었다
선교지에서 만난 내 친구 선교사 중 한 형제는
미국 시카코 대학 연구소에서 화공학 박사로 일하면서
바이러스와 면역체계에 대해 연구했다고 하는데
실험을 통하여 나타난 결론만으로 진리를 삼는 그가
어느 날 회심하게 되고 선교사가 된 사연을 간증하였다
당시 그는 실험실에만 갇혀사는 자신의 힘든 인생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을 때 에베소서2:19절 말씀을 받고 회심하여
세례를 받은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방문 중에
주일을 맞아 가족 함께 고베 순복음교회 주일예배에 갔는데
예배 중에 자신의 귀로 들려온 음성으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똑똑히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감격에 터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자기 일생에 그만큼 많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한마디 말씀은 그에게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그는 과학자로서의 길에서 선교사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그 자리에서 "성령이 네 안에 계신다"는 음성도 들었는데
그 당시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고 한다
어쨌든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는 이 한마디 말씀에 사로잡혀
과학자에서 선교사로 변신한 이 사람에게
주님은 오직 실험과 증명으로만 진리를 인정하는 그를 깨우치려고
초자연적인 환상들도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지금 우리 시대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미 그때
주님이 곧 다시 오시는 시급한 종말의 징표로써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선교지에서 은퇴하고 돌아와 여기에 대한 글을 썼는데
주님이 이미 보게 하신 것을 전하라는 부담감을 주셔서 썼으며
한 달 전 나에게도 영문판 두 권을 보냈기에 나는 즉시 그에게
번역과 출판권을 달라고 하여 지난 며칠 동안 번역을 완료하였다
책 겉표지도 자신이 환상 중에 보았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했는데
나는 다음 달 출간을 목표로 번역을 완료하고 어제 미국으로 보냈다.
적용하기
잠시 묵상의 흐름이 곁길로 벗어났는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이 한 마디 말씀의 선언이야말로
지금 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는 이 나사렛 청년 예수가
곧 하나님 자신이시며 복음서에서 그토록 많이 주장하셨던
하나님 곧 동일본질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한 것이니
그 자리에 있었던 바리새인들이 기절초풍할만한 말이 된 셈이다.
지금 우리와 같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의 개념이 없던 그들에게
이 말씀은 자신들이 듣기에 심히 참람한 신성모독의 말이었지만
당시 이 말씀의 청중이 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죄인들 가운데 들어와 거처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행보를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신 것이니
이 말씀의 깊이를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깊이있는 감동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선언이 참 인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고 하신 말씀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중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었는데
여기서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눈에 결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후자가 더 어려운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병인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대로 실현하심으로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는 선언 역시 진실한 선포로 증명하시며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온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신 셈인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속에 모든 해석을 담고 있다
2. 마태의 송별잔치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9:9-13]
이어지는 말씀의 주제는 마태가 제자로 부름을 받는 장면인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마치 스프링 의자의 반동처럼
즉각적으로 따라 나선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 익은 열매를 따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에 대해 무르익어 있던 그의 마음이 그날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그의 근무처(세관)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시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천국 운동 사역에 나섰을 때부터
예수님께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마치 나무의 뿌리가 땅속 샘 근원을 찾아 뻗듯이 예수님께 향하다가
그 날 자신의 직업과 직장조차 내려놓고
다른 제자들처럼 자신의 전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따라간 것이다
마태는 가버나움 세무서의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장을 떠나면서
자신의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송별 잔치를 열었는데
유유상종이라고 가까이 지냈던 세리들이 많이 참석하다 보니
여기 대해서도 바리새인들의 비판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날아든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그러나 나는 바리새인들의 이 날카로운 비판 속에서 역으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인들 속으로 들어와 계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경건한 자들의 풍습으로써 한 면만을 보았지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로 더불어 함께 어울려 한 판 벌이는
이 송별 잔치가 전달하는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답변 속에 의미심장한 해답이 들어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않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12]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모습을
이 복음서의 자자 마태는 그의 영으로 감지하고
기록한 이 말씀들이 무한 가치의 보배처럼
이아침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배부르게 한다.
주님!
하나님이신 당신이
나사렛 청년 예수로
이 땅에 오시어
사람들 속에 사시면서
혹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자신을 나타내신 이 무한 감동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기록된 말씀 속에서 성령의 조명 가운데
더욱 깊이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추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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