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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9:14-26 은혜의 포도주를 감사와 누림의 부대에 담기

by 朴 海 東 2021. 4. 13.

은혜의 포도주를 감사와 누림의 부대에 담기

마태복음 9:14-26

 

1. 은혜의 포도주를 감사와 헌신의 부대에 담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와 교제하게 되시고
그의 보내신 성령으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생명-교제-기쁨" 이 세가지 단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어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예수님이 오시고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을 때
과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고했던 
바로 그 매시야 시대의 축복이 현실이 되어서

마치 구약에서 7년 째 마다 희년이 돌아오고 
7년 희년이 일곱 번을 지나는 
(7년 x 7회) 50년 대희년의 날들처럼 
모든 종들이 묶임에서 풀려 자유를 누리고
채무로 저당 잡혔던 모든 소유도 다시 돌려받게 되며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어 선언하셨다[눅4:21]

이러한 축복은 그 누구보다 더 
그동안 유대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죄인 취급당하면서 그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해야 했던 
세리와 죄인들이 가장 먼저 누린 것을 보는데 
지금 마태가 가버나움 세무소를 사직하게 되면서 
자신의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한판 벌인 잔치자리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기쁨의 잔치를 누리는 모습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던진 질문에서 엿보게 된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9:14]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오심으로 구약의 대희년의 날과 같은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도 구약 율법과
자신들이 만들어 낸 전통에 매어서 
하나님 앞에 금식으로 슬퍼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레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때 세례요한은 투옥되어 있었음)

구약과 율법의 마침이 되는 그들의 선생 세례요한의 시대가 지났고
지금은 세례요한이 가리켰던 것처럼 예수님의 등장으로 시작된
은혜의 해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시며 
너희도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있음을 기뻐하는 이 사람들처럼 
이제 그만 금식하며 슬퍼함의 기색을 버리라고 하심이 아닐까(?)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기질이 달라서 그런지 모르나
금식을 밥 먹듯이 하며 늘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상대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예수를 믿어도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만 머물러 있고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주신 축복의 자리로 나가지 못하여
밝음으로 나가야할 신앙생활이 우울과 무거움에 잡힌 사람들도 있다. 

내가 어떤 유형의 신앙생활을 하는가는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지만 
나는 오늘 세리 마태의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한판 벌이고 있는 
잔치 자리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용납받았다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의 친구가 되어 흥겨움으로 한 판을 벌리는 것처럼
주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희년의 날들을 누리고 싶다 

본래 구약율법에서 명한 금식은 대속죄일에 하게 되어있는데[레23:27]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거룩하게 산다고 자처한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보다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금식이 되는
불순한 동기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금식 혹은 단식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동기가 있는데 
요즘도 국회 앞이나 광화문이나 덕수궁 입구 대한문 근처에 가면
단식 **일째 라는 푯말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분명한 목적이 있는 금식 혹은 단식이라면 말릴 것이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바리새인들이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했던 당시의 금식처럼
금식을 위한 금식이 되어 이렇게 해야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통을 만들어서 하는 금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는데 이미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셨는데 
그것은 금식이나 제사보다 긍휼과 자비의 실천인 것을 본다[사58:5-9]

요즘 기도와 묵상 가운데 자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종교적 열성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내려는 것보다
이미 예수님 안에서 나에게 내려주신 죄 사함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며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축복에 참여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구약의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시면서 
이 아버지 사랑 안에 그리고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신 
이 축복의  말씀을 내 신앙과 삶 가운데서 이루어가는 것이다(요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