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물댄 동산같이 되게 하소서
마태복음 12:38-50
예수님의 대갈리리 전도사역이 중반기를 넘어가면서
예루살렘과 유대쪽에 있는 종교지도자들 중에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혹은 정보 수집을 위하여
예수를 따르는 무리 속에 합류한 이들이 많은 것을 본다
앞선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축귀 사역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의지해서 한다고 곡해하면서
테클을 걸고 나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30대 청년이었던 예수를 자신들이 기다려온
매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기엔 간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당신이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인지 증명할만한
놀라운 표적(기적)을 좀 보여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1.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느니라 [12:38]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적 창출 요청에 대한 반응으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시며
요나가 밤낮 사흘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밤낮 사흘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답변을 통해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증명해 보이시지 않고 이렇게 하셔야 했을까?
기적이란 일어나는 것이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신 많은 표적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허락 없이 자기 맘대로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내지 않으시는 분이시었고
또 그가 보이는 모든 표적 속에는 의미를 담고 계셨기 때문인데
그것은 자신을 여기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만일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서
보여주기식 기적을 행하신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요술쟁이나 마술사 정도로 격하하게 되며
또 설령 이렇게 기적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하여도
그들은 잠시 놀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마음이 바뀌거나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나타내 보이셔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부활의 표적을 나타내는 길로 가셔야 한다는 것을 미리 예고하신다.
2. 요나보다 크신 이시며 솔로몬보다 크신 이[12:39-42]
더불어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오셨고
매시아적 표적으로써 자신의 선포와 가르침과 치유 사역으로
사람들에게 믿을만한 증거들을 충분히 나타내주셨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그 시대를 향하여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과 비교하시며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지금 여기서 너희에게 말하고 있으며
또 자신을 지혜의 왕 솔로몬과도 비교하시며
남방 여왕(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많은 공력을 들여서 멀리 땅끝에서 찾아왔는데[왕상10:1]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지금 여기서
너희와 눈과 눈을 마주하여 말하고 있는데도
어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인용하시어 자신을 인증하심은
구약 성경이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증하시면서
한편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하는 책인 것을 밝히신 셈인데
이처럼 요나 선지자보다 큰 이가 되시며
지혜의 왕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되심을 드러내신 자존적 증거는
오늘 이 시대에 이 말씀의 독자가 되는 우리(나)에게도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며
너는 나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고 물으시는 것으로 받아드린다.
주 예수님!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주님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가장 존귀하신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어두웠던 나의 눈을 열어
기록된 주님의 말씀 속에서
주님을 바로 알아보게 하시고
옛 언약의 말씀 구약에 나타난
모든 선지자보다
모든 왕보다 더 큰 이로
내가 모시게 되었으니
내가 영원히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섬김에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적용하기
3. 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 [12:43-45 ]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당 시대를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시면서 다섯 번이나 언급하시는데
따라서 이 세대에 대한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특별히 바울 신학에서 보여주는 세대 구분을 보면
오늘 우리 시대의 세대주의 신학자들처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 옛 세대와
예수님이 초림 하심으로 시작된 새 세대를 구분하여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 옛 세대(Old Age)와
새 세대(New Age)가
위와 아래로 중첩된 세대이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는
이 중첩된 아래 세대로써 옛 세대도 끝나게 되고
영원한 새 세대로만 어어 가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옛 세대 속으로 천국이 침노한 이 세대야말로
내가 장차 어디에서 나의 영원한 장래를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가져오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해서 요나 선지자보다도 못하게 여기며
솔로몬보다 못하게 여김으로 그에게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하나님 나라 통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 바로 그 세대를 향하여
주님은 매우 무서우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시는데
그것은 더러운 귀신이 나간 집이 깨끗이 청소되었으나
여전히 그 집이 비워져 있음으로 나갔던 귀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거주함으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된 것으로 비유하신다.
예수님의 초림 이전이나 이후에도
세상에는 많은 철학과 종교의 가르침이 있었고
특별히 율법에 정통한 유대교는 더욱 그리하여
사람이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논함으로
마치 사람의 영혼이 사는 집이 깨끗하게 하는 것 같았으나
사람의 영혼의 집이란 이런 것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이는 사람의 영혼이란 영적 세계와 영적 존재들과 관련되고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혹은 마귀와 귀신 같은 악한 영적 존재들에 의해
혹은 거룩한 영이신 성령으로 지배받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서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자
자신이 나갔던 영혼의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고 하는데
여기서 더러운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갔다는 것은
곧 물 없는 황량한 광야같은 곳을 좋아한다는 것이며
영적으로 해석하면 사람의 영혼이 거친 광야같이 되어
거칠고 황페 하여진 영적 상태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거처를 찾고자 한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40일 금식후 마귀를 대면한 곳이
곧 광야였다는 것 역시 상징성을 담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관리할 필요를 느끼는데
이 것은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나의 영혼이 물댄동산같이 되지 않고 광야같이 되어 버리면
마귀와 귀신들이 찾아오기 좋은 처소가 됨을 의미함이며
혹시 세상 도덕 윤리 철학 종교같은 것으로
내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도
생수가 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적셔지지 않으면
악한 영들이 얼마든지 들랑거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비록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 악한 세대 속에 천국의 통치를 가지고 들어오신
나의 구주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에 모심으로 인하여
나의 영혼을 물댄 동산같이 만들어주시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이
언제나 나의 영혼을 적셔 주시고
이로 인하여 내 영혼의 정원에 아름다운 꽃 피고
벌 나비들이 날아오는 아름다운 곳이 되어
주님과 함께 거닐고 교제할 수 있는 동산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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