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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누가복음 9:28-36 영적 황홀경에서 깨어나 오직 예수만 붙들기

by 朴 海 東 2015. 12. 5.

영적 황홀경에서 깨어나 오직 예수만 붙들기

누가복음 9:28-36

묵상내용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양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행군했던 이스라엘에게
폭양을 가리는 그늘이 되셨던 주님의 은총이 이 여름이 다 지나가기까지 함께 하소서

1.성경속에 흐르는 구속사의 강줄기 이해하기 [9:30-31]

앞선 문맥과 구절의 말씀에서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9:27]고 하셨는데...이 말씀을 하신후 불과 팔일 밖에 지나지않아
주님과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가 그 현장의
주인공이 된 것을 보여준다.

오늘의 말씀 서두에서 저들은 지금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장차 그 나라에서 입으실 충만한 영광의 현현을 잠시나마 보게 되는 경험을 갖게된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영광스런 현현의 자리에 특별히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이 함께 하여 장차 예루살렘에서 있게 될 별세를 이야기
하였는데...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크라이막스가 되는 예루살렘에서의 별세를 논하는
자리에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선지자들을 제쳐놓고 왜 모세와 엘리야 여야 할까를
곰곰 생각해 볼 때 성경속에 흐르는 구속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 세분이 차지하는 위치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가 마태복음 1장에서 구약의 전 역사를 족보속에
담아 내면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그리고 바벨론 포로
에서 예수님에게 까지라고 크게 세 구분으로 나눈 구속 역사의 의미처럼 [마1:17]

성경속에 흐르는 이스라엘 구속역사의 큰 줄기를 생각할 때
모세 - 엘리야 - 예수님의 세 분의 시대와 역활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구속역사를
구분짓는 변화의 큰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세우는 중보의 역활을 하면서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로 언약이 파기될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써 이스라엘을 세웠다면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했던 이전의 그 호렙산으로 찾아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여 이스라엘을
심판의 역사로 가게하는 한 전환점을 이루게 한 선지자였고 [ 왕상 19:8-18]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망라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있던 백성들에게
구원의 새지평을 열고 소망중에 회복시키시는 분으로 등장 하셨기 때문이다 [마1:21]

오늘의 말씀에서 변화산에 등장한 세분의 이야기는 신 구약 성경 속에 흐르는
구속역사의 이야기들이 모두 한 덩어리라는 것과 이것들이 모두 구속사의 흐름이라는
큰 강줄기에서 함께 합쳐져서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 적 용 ]-----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각 권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특히 구속사적 관점에서
모두가 통일성있게 하나로 연결된 책으로 읽어 나가는 안목을 얻어야 되겠다.

더불어 매일 매일 이루어가는 큐티 묵상도 구속사적 묵상에 촛점을 두어야 되겠다

2. 영적 황홀경에서 깨어나 오직 예수만 붙들기 [9:32-33]

기도 중에 용모가 변화되신 예수님과 또 모세와 엘리야의 영광스런 모습을 목도한
베드로는 자신이 하는 말을 자신도 모를만큼 황홀경에 압도되어 영원히 그 현장을
지키도록 초막을 짓게해달라고 하는데 홀연히 구름이 와서 그 영광스런 현장을 덮고
모세와 엘리야를 데려가며 구름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35]

-----[ 적 용 ]------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가끔 내가 나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본류를 잊어버리고
지류에 머무르는 때가 있는데 이는 신앙생활의 목표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은 성경이 기록된대로 구속사역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으며 이미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셨다[9:22]

영광스런 구속사역의 성취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베드로는 잠시 경험한
변화산의 황홀경에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자신들을 붙들어 두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의 신앙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보여질 수 있는 현상들인데
예컨데 기도의 황홀경에 빠져 보았다거나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람이 그 한가지
체험이 마치 신앙생활의 본질이고 전부가 되는 것처럼 거기에만 몰두할 때 나타나는
동일한 현상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곤고하고 힘든 신앙생활 가운데 한 체험은 될 수 있을찌 몰라도
결코 신앙의 본질과 본류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잡아야 했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경우처럼 우리[나]의 신앙생활에서도 내가 잠시 머물수 있는 곳이 있고 항시적으로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있는 것이다.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하늘로부터 우리[나]에게 들려지는 방향성의 지침이다

--- 요즘 나의 신앙 생활은 무엇에 발목이 잡혀 있으며, 전진이 멈춰지고 있는가...?

베드로에게 나타났던 경험처럼 때로 나에게 나타난 어떤 경험들이나 현재의 상황이
내가 나아가야 할 신앙생활의 전체 방향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없는 가..........?

기도하기

오늘도 지속되는 폭염의 날씨 가운데
내 영혼의 그늘이 되시고 생수가 되옵소서

힘들고 곤고한 신앙생활 가운데
잠시 경험하는 지류의 황홀경에 빠져
나의 본류를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 함께가는 방향성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