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누가복음 20:27-40 / 결혼도 없는 천국이 행복할 수 있을까...?

by 朴 海 東 2015. 12. 7.

결혼도 없는 천국이 행복할 수 있을까?

누가복음 20:27-40


묵상내용

이 세상에서 짧은 한 평생을 마치고 내세 들어간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상태로
있는가에 대한 부활논쟁에 대하여
내세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감추어진 계시의 빛을 비추어주신다.

1. 육체의 죽음 그 이후 사람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


사람의 영혼이 집으로 삼고 한 평생 살았던 육체를 빠져나갈 때 그들의 영혼은
그들 각자에게 정해진 곳인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가서
주님의 재림때까지 곧 그들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게되는 부활의 싯점까지 기다린다

성도들은 주님 재림의 그 날에 주님이 부활 하셨을 때 입으셨던 영체처럼
영과 육으로 결합된 영광스런 영체를 가지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며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의 부활로 나타나 영원히 고통받는 자리에 들어갈 것이다.

어떤 잘못된 귀신론의 주장자들은
육체를 빠져나온 영혼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영혼들은 구천을 떠돈다하며
특별히 한을 풀지못한 영혼들은 구천을 떠돌면서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교접한다고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다 비성경적인 이야기 들이다

사람의 내세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이 내세[ 낙원/천국]에 들어가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존재들이 되어 있음을 강조하신다 [20:36]

이미 앞선 장[16:19-31]에서도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 계시를 통해
설명해 주신바와 같이 혹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구덩이에서
혹자는 영원한 위로와 영광의 품에서 자신들의 거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편의 강도는 죽어가면서 주님의 은총을 구했고
주님은 그에게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다만 은혜로 들어갈 수 있는 내세의 축복을 보증해 주셨는데.... 이러한 말씀들은
오늘의 말씀에서 논쟁이 된 사두개인들의 부활질문에 대해 좋은 해답이 되는 것 같다

----[ 적 용]----

사람의 영혼이 육체의 장막에 거처하는 기간은 정말로 짧은 기간이요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되는 바

내가 어디서 나의 영원한 장래를 보내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이 세상에서
올바른 내세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영원한 장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2. 결혼도 없고 가족관계도 해체되는 천국이 행복할 수 있을까?


저 세상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도 없고 따라서 가족 관계도 없으리라는 말씀을
얼핏 잘못 생각하면 천국의 소망을 반감시키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이처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이 없는 것으로 받아 들이게 한다

천국의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크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행복의 가치로 생각하는 결혼조차도
필요 없다고 하실만큼 역설적으로 말씀하실까...이해하게 된다.

과연 천국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결혼도 필요없을 만큼 행복한 곳인가.....?
과연 천국은 가족 관계도 필요없고
내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도 필요없을 만큼 위로와 평안과 축복이 넘치는 곳인가....?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부활이 있는지 없는지 실존의 문제에 한 걸을 더 나아가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극치로써
결혼이나 가족관계 조차도 필요없을 정도라고까지 말씀하심으로
성도들이 누리는 부활의 실체를 확증해주신다

어린양 예수의 신부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교제(세상에서 성적 교감의 극치와 비교도 되지 않는 영적 일체)를 나누는 행복한 부활의 그날에
그날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마13:43]


-----[ 적 용 ]-----

지금 이 세상에서 육체의 한계에 갇혀서 부활의 날에 내가 누릴 천국의 축복을
다 알지 못하고 느낄 수 없지만 가장 진실하신 주님께서 확증해주신
그날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될 수 있어야 겠다
지금은 조금 맛보아 아는 축복들이 그날엔 충만하게 누리는 축복이 될 것이다.

묵상적용

3.사두개인들의 부활논쟁 질문에 대해
왜 예수님은 모세의 글과 그에 대한 이야기로 답변하셨을까 ?


당시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고 사두개인들은 믿지 않았는데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붙들어주는 유일한 권위의 근거로써
모세와 모세의 글을 의지하였던 바

예수님은 내세의 상태에 대하여 그들에게 여러가지 다른 설명을 해 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이미 알고 있으며 또한 최고의 권위로 생각하는 모세와 그의 글을 통해
그들의 논쟁적 질문을 풀어 주심으로 오해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

----[ 적 용 ]------

논쟁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답변은 그들이 모르는 것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이미 알고 있고 권위로 인정하는 것들을 근거로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대답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설명을 통해 배운다.

부활 논쟁에 관한 예수님의 이러한 답변과 설명은 사두개인들의 입을 함구하게 하고
서기관들의 입에서는 " 옳습니다, 잘 말씀 하셨습니다"라는 아멘의 화답을 이끌어냈다.

4. 예수님은 왜 부활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인용하셨을까 ?


이것들이 사람의 부활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인용구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아직 육체로 살아있을 때 사용한다면 더 좋은 인용구절이
될 수 있을텐데...이 세상에서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굳이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 육체로 살아있는
상태만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가치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지만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잠시 장막으로 사용되는 육체보다
영원한 영혼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 있었을때
그들과 가졌던 친밀관계보다
지금 그들이 내세에서 더욱 생생하게 하나님과 친밀관계로 교제하고 있음을
주님은 다 아시고 내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 말씀의 구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 들이게 된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실때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시는 문법적 구조는

그들이 이전에 세상에 있었을때는 물론 지금 더욱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들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증해주며 또한 이것은 장차 나의 부활도 보증해주는 소망이된다.

5. 말씀에 반응하는 서기관들의 화답에서 배우는 것 [20:39]


사두개인들의 부활논쟁으로 시작된 질문에 대해서
말씀을 인용하여 잘 풀어 설명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서기관들이 기쁨으로 화답하며 아멘으로 받아 들이는 모습은 [20:39]

오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듣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들은 바 말씀에 대한 응답을 어떤 모습으로든 표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는다

들은 바 말씀에 대하여 서기관들처럼 " 옳습니다, 아멘 입니다"라고 하던가
혹은 기쁨의 찬송이나 혹은 말씀에 응답하는 결단의 기도 등으로 나타냄으로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살아있는 자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되겠다.
(이러한 반응은 여기 생명의 삶 게시판의 글을 보고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에서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영원토록 살아 계셔서
생명을 주신 모든 자들과 교통하시는 주님을 찬양 합니다

내 영혼이 잠시 육체의 장막에 거하는 동안에
힘든 세상을 지나고 있지만
주님과 합일체를 이루어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나누는
부활의 그 날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살게 하옵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