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자기 자기 고향에서 빛나신 예수님
▼ 요한복음 4:43-54
묵상내용
1. 예수님의 전도 전략에서 지역 선정 문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 마을에서 이틀을 유하시며
자신이 메시야, 그리스도
이신 것을 친히 증거 하시고
그 멸시의 땅,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전하신 후
다시 그의 행보를 북쪽
갈릴리로 잡고 올라가신다[4:43]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은 사마리아에서
더 많은 날들을 체류하시며 그 이웃
마을들까지
전도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겠지만 그리하지 않으셨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유대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유대를 떠날 때부터
결심하신대로 주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의 전도 전략은
사마리아나 유대지방이 아니라 갈릴리에
초점을 두고 있음이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실제 이번에 이곳 갈릴리로 향하시는 발걸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6개월 이상을 이 곳 갈릴리 전도 사역에
집중하시게 되는데 다른
공관복음서들에서도[마4:12-15:20]
이 곳 갈릴리에서의 사역에 대해 충만히 드러내고 있다
바로 몇 일전 유대를 떠나실
때 세례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세례요한과 비교하며 예수의 인기와
급부상한 인지도와 유명세에 대해 시기하는 것 때문에
자칫
쓸데없는 충돌에 휘말린 위험이 있었는데
그러나 아직은 이런 위기 속으로 말려 들어가기보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어 이루게
하신 일들을 위해
지혜롭게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 그리고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메시야로서 자신을
충만히 드러내야 할
곳이 어디가 되야 할 곳을 아시고
이렇게 갈릴리 사역에 초기 사역의 역량을 집중하신다.
그러나 이처럼 갈릴리로 그의 초기
사역의 방향을
잡아서 올라가시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이곳 갈릴리에서도 그다지 크게
환영 받지 못할 것을 아셨는데
그것은 친히 말씀하신 바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4:44]
이처럼 최근
유대에서 급부상한 자신의 인지도로 인해
따라올 수 있는 종교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하시며
또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다 아시면서도
묵묵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위해
예수님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신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가 가야할 길을 가야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13:33]
2.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기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내심----
1)
이 표적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
요한은 자신이 한 평생 주님을 따랐던 삶을 마감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기록한
마태/마가/누가 복음서를 읽어 보면서
자신도 한 번 써보고 싶은 소원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기독교 신앙이 박해를 받는
로마 도미시안 황제시대에 그의 나이 거의 90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요한 복음서를
써내게 된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써낸 공관복음서의 내용들을
충분히 알고 숙지하고 있는 가운데서
요한은 가능한 다른
저자들이 다루지 않은 내용들을
추가하여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이미 다른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내용들이라도
거기에 충분한
신학적 의미를 담아서 써야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집필에 임했던 것을 엿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사와 표적들 가운데서 일곱 가지 표적만을 선별하여
이 복음서에서 기록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고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내신 이 표적은
그 일곱 표적 중 두 번째 표적이자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에 이어
다시 또 이 곳에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이 특별하며
요한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이
표적에 담아서 전달하고 싶은 계시의 빛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게 생각된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의 이 저서 “요한복음”을
탈고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하면서[요21:25]
자신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책을 썼는지 밝혔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며
또 독자들[우리들]로 하여금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으니[20:31]
나도 요한이 의도한 기록의 목적에 비추어
요한의 입장에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묵상적용
2) 이 표적이 의미하는 것
요한은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이 표적을 통해
그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면
갈릴리의 가나에서부터 16마일(34Km) 이상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자기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 왕의 신하에게
그의 요청대로 가버나움까지 가지 않고서도
그가 지금 서 계신 갈릴리의 가나에서
멀리
가버나움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 주심을 통하여
시공간을 초월하시며
이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하실 뿐 아니라
말씀 한 마디로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밝히고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 당시 비록 자신의 고향 갈릴리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갈릴리의 한 선지자이며
한 평범한 청년의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그는 신적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의 무한하신 신적 능력을 찬양하고 있음을 본다.
3) 이 표적이 주는 교훈 :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충만히 드러내고 있는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특별히
마음에 닿아지는 말씀은
죽어가는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절박하게 찾아온
이 왕의 신하에게 믿음의 진전이 나타나는 점이다
그는 처음엔 예수님이 가버나움까지 오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구나...(4:46)탄식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믿음의 용기를 가지게 된 것과
또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꼭 붙잡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는 중에
아들이 살았다는 종들의 전갈을 받은 데 있다.
이 왕의 신하가 처음 예수님께 찾아왔던 믿음은
자신의 아들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니
죽기 전에 내려와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기사와 표적에 매달리는 믿음에서
말씀에 매달리는 믿음으로 발전했으며
마침내 이 말씀 붙잡고 내려가다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그의 믿음은 더욱 진전되어
온 가족이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게 되는
축복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마감하면서
나는 이 축복이 오직 이 한 가족에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충분히 믿을만한 계시의 빛을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전달해주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동일하게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나가는
우리[나]에게 얼마든지 동일한 은혜와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신 것을 기뻐하며
감사드린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은 저 하늘 멀리 천국에 계시고
나는 여기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전달된
당신의 말씀이 내 손에 들려져 있으니
내가 이 기록된 말씀 굳게
붙잡고 나갈 때
주의 영으로 함께 하시며
시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충만한 은혜를 힘입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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