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디 말을 이긴 한 마디의 말
▼ 요한복음 7:53-8:11
묵상내용
본래 파장 뒤 끝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괜히 들뜨거나
또는 술 한 잔에 취해서 저자 거리의 곳곳에서
별일들이 다 벌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축제였던 초막 절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7:53]
이 대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곳을 찾았던 것 같고
도시의 곳곳에서 성범죄는 그제나 지금이나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한편 산헤드린에서는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서
하속들[성전 경비병들]을 파견해 보았지만
그들까지 모두 예수의 말에 심취하여
지금까지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고 하며
빈 손으로 돌아왔을 때[7:45-46]
그들을 파견했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을 분격했고
이번에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예수를 체포하고
고소할 만한 명분을 찾기 위해 도시의 곳곳을 뒤져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한 여인을 붙잡아
예수를 함정에 빠트릴 희생양처럼 끌고 와
당신은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 하겠는가 질문한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8:5]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로서 이 사건 뒤에 숨겨있는 종교지도자들의
악랄하고 음흉한 저의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고 밝히고 있다8:6]
이런 것을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하는 법인데
여인을 살리자니 모세의 율법에 걸리고
모세의 율법을 살리자니 이 가련한 여인이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저버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 여인의 체면이나 인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정죄와 고발로 일관하는 이 사람들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을 잠재울 수 있는
한 가지 상징적인 행동과 한 마디 말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시고 스스로 물러가게 만드신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니[[8:7-8]
한 여인의 죽음이 예수님의 말 한 마디에 달려있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왜 예수님은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글을 쓰는 행동을 하신 것일까 ?
그리고 그 때 땅에 쓰신 글자는 무엇이었었을까.......?
땅 바닥에 글을 쓰신 예수님의 그 손가락은
지금 그들이 모세 율법 운운하고 있는 그 율법을
십계명의 두 돌 판에
친히 써주셨던 손가락인데[출31:18,신4:13]]
지금 그들은 율법의 입법자이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보내신 자 그 아들 앞에서
자신들이 율법의 입법자며
율법의 집행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그들은 율법을 올가미로 악용하여
한 여인을 죽이려는 것 뿐 아니라
이 율법의 입안자이시며 집행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으니
주님은 그들의 악한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이처럼 손가락으로 땅 바닥에 글을 쓰시는
한 상징적인 행동을 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님의 이같은 상징적인 행동은 구약 예언자들의
상징적 행동을 연상케 하는데
그들은 말로만 아니라 상징적 행동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예를 들면 이사야는 3년 동안 맨발로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지냈고[사20장]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했으며[호1-3장]
예레미야는 질그릇을 사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산산이 부숴버렸고 [렘19장]
그 밖에 에스겔은 칼로 자기 머리칼과 수염을 잘라
불로 태우고 바람에 날려 버리기도 한다. [겔5장]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하나의 상징 언어가 되었는데
지금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시내 산에서 쓰신 것처럼 돌이 아닌
땅 바닥에 글을 쓰시는 상징적 행동을 보이신 것은
그가 이 법 조항을 쓰기도, 지우기도 하실 수 있는
입법자가 되시며
최종 판결 자가 되시는 분이라고 해석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묵상적용
그런데 예수님의 이 상징적 행동을
그나마 이해하게 해주는 성경의 한 구절이 있는데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다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는 말씀이다[렘17:13]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 외에
종교지도자들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을 이겨내신
한 마디 말이 있는데 이 말씀이야 말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가슴에
길이길이 새겨질만한 말씀으로 남겨지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은 지금 온갖 수모와 수취를 뒤집어쓰고
자기 앞에 세워져 모세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놓인 이 여인과
또 이 여인을 올가미로 악용하여 자신을 고발할
죄목을 얻고자 하는 악한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처벌 조항으로 운운했던
모세의 율법 신명기 17:7절의 말씀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들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시고
이 여인보다 더 악할 수 있는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만드시며
그들의 손에 들려진 돌맹이들을 내려놓게 만드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이 두렵고 떨리는
“먼저”라는 말씀 앞에 과연 누가 설 수 있겠는가.......?
먼저가 되는 사람은 증인이 되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신17:7]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 자신도 죄인인 주제에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하지 말라는
정말 소중한 메시지로 받아 드리게 된다.[마7:1, 눅6:37]
그리고 진정 그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오직 한 분,
예수님 자신도 그 여인에게 말씀 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8:11]
“정죄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단[마귀]의 고발과 정죄 앞에
이 여인보다 더 무섭게 떨며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있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의 자비와 용서 때문이라고 생각 할 때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내가 죄가 있다면
첫 째는 예수를 더 빨리 만나지 못한 죄요
두 째는 예수를 더 잘 알지 못한 죄요
세 째는 예수를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죄 이옵니다
----- 어느 무명 성도의 기도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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