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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9:35-41 두 종류의 소경 이야기

by 朴 海 東 2015. 12. 7.

두 종류의 소경 이야기

요한복음 9:35-41

묵상내용

1. 믿음에도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이며 거지로 살아갔던 사람이
고침 받은 후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후 출교당한 것을
듣고 그 사람을 다시 찾아 가셨다

첫 번 째 만남에서는 다만 신체적인 시력을 주셨지만
두 번 째 만남에서는 마치 사마리아 여자에게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처럼 이 사람에게도 예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해주시는 영광을 주신 것 뿐 아니라
이번에는 그의 영혼의 눈까지 뜨게 만드시어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는 빛을 주셨고
이 사람은 이미 떠진 눈을 더 크게 뜨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드리고 있다.

사마리아 여자가 수가 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상대했을 때
처음엔 한 유대인 나그네로 [4:9]
그 다음엔 주[선생]에서 선지자로 [4:19]
그리고 마침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는 직접 계시 앞에서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메시야”로 받아 드리는
믿음의 발전을 보인 것처럼 동일한 변화가
이 소경되었던 자에게서 나타났는데

처음엔 예수라 하는 그 사람[9:11]에서
그 다음엔 선지자로 [9:17]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9:33]에서
마침내는 눈과 눈을 마주하여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는
직접 계시 앞에서 [9:37]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는 영혼의 눈이 떠졌고
무릎 꿇고 경배하는 믿음의 발전을 보여준다.[9:38]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이 책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믿음의 변화와 발전이 비단 사마리아 여자나
소경이었다가 빛을 얻은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이것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땅히 나타나야 할 믿음의 변화이자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2. 예수님은 쫓겨난 자들에게
---더 큰 축복을 가지고 찾아가신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이며 거지로 살아갔던 사람이
고침 받은 후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후 출교당한 것을
듣고 일부러 그 사람을 다시 찾아 가셨다.
자비하신 주님의 두 번째 발걸음이신 셈인데
이번에는 더 큰 위로와 축복을 가지고 찾아가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을 다 아시고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동정하시며
함께하시는 표시를 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셨다.

종교 개혁의 선구자 루터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출교를 당했을 때
주님은 그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비텐베르크 성의 영주를 통하여 그를 보호하셨고
그 성안에서 더 큰 빛의 계시를 받아서
로마서를 비롯한 성경들을 주석하게 하셨으며
유럽 각처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에 동조하는 수많은
동맹군들을 일으켜 주심으로 위로하시고 도우셨다.

이처럼 예수님 때문에 쫓겨남을 당한 것처럼 되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세상에도
얼마나 많이 있는가(?)

내가 관련하고 있는 C국 선교지에서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교직에서 물러나는 불이익을 당해야 했는데
그는 지금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한 교회의 전도자가 되어 마음껏 주님을 섬기고 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을
다 아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더 큰 위로와 축복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신 것을
예수님 때문에 출교를 당한 사람을
다시 찾아와 주시는 것으로 나타내 보여주셨다.

예수로 인하여 신체적 눈을 뜬 그 사람이
예수를 거짓 메시야로 몰고 가려는
바리새인들에게 타협하여 출교 당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울타리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자가 되었다면
이처럼 주님이 다시 찾아 주시고
영혼의 눈까지 뜨게 되는 축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오늘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의리를 지키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더욱 그를 의지함으로 일어설 것이다

묵상적용

3. 자신을 인자로 계시하신 예수님 [9:35]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표시로
인자[The Son of Man]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셨는데
이는 다니엘서에서 특히 7장과 12장에 하늘로부터
사람들의 나라, 세상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소경되었다가 눈을 뜬 자에게 영혼의 눈까지
뜨게 해주는 축복을 위하여 두 번째 방문하셨을 때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질문으로 찾아오셨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인자”의 호칭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할 때
이 어휘를 사용하시는데 [막8:31,9:9,12,31,10:33,45]

치유된 소경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메시야로서 인자되심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온전한 신앙에 서게 되었다.

자신을 지칭하는 많은 호칭 가운데서도
자신을 "인자"라고 지칭하신 이 이름을
나도 더욱 친근히 사랑하며
이 호칭 속에 담겨 있는
더 깊은 영적 의미들을 깨닫게 되기를 소원한다.

4. 육적인 맹인과 영적인 맹인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신체적인 맹인만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신체적인 맹인보다 더 불행한 영적인 맹인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 중에서도
많이 안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 많은 것을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 결론으로 선언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9:39]


자신의 죄와 허물과 한없는 결핍을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써 성결과 의를 구하며
캄캄한 가운데서도 빛을 찾는 자들이 되어
치유된 소경처럼 빛 되신 예수께로 나오지만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사람들은
자신의 교만과 고집에 눈이 가려져서
이 빛이 비추고 들어올 틈새가 없게 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
빛이 어우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5. 하나님의 하시는 일

가장 불행하게 보인 거지이며 소경이었던 자가
예수님을 만나 신체적 눈을 뜨게 된 것 만 아니라
영혼의 눈을 떠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예배자의 모습으로 변화된 이 모습이야말로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말씀의 해답이 된다[1:3]

요한복음 9장을 처음 시작하면서
제자들은 이 소경의 불행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로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써
그 소경에게 베풀어진
놀라운 그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가
영육간에 치유받은 이 소경에게 나타난 것을 본다.

이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써
영육간에 치유하시는 능력과 은혜와 사랑
그리고 어둠 가운데서 빛을 비쳐 주시는 역사가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캄캄한 이 세상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해주시길 이 아침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