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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8:1-14 내 영혼에 새기고 싶은 예수님의 초상

by 朴 海 東 2015. 12. 7.

내 영혼에 새기고 싶은 예수님의 초상

요한복음 18:1-14

묵상내용

해마다 사순절 기간이면 매섭게 불어왔던 꽃샘바람을
다시 온몸으로 받으며 총총 걸음으로
새벽 교회당을 향하는 사순절 열여덟 째날 아침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모두 끝났고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시듯
어둠의 시간을 향하여 나아가시되
오늘의 말씀은 결코 움츠러든 모습이 아니라
당당히 고통과 죽음을 맞서서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요한은 그려내고 있습니다.

1.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시며 [18:1]

13장에서부터 16장까지 이어진 다락방 강화와
17장에서 드려진 대제사장적 기도에 이어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
최후 기도의 동산인 겟세마네로 들어가십니다.[18:1]

그런데 저자 요한이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이 기드론 시내 골짜기 계곡의 이름을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는 무엇일까요 (?)

이것은 마치 오래전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배반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간 장면을
연상하게 하듯 [삼하15:23]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뒤를 밟아
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올 배신자 유다와
그가 이끌고 올 원수들을 내다보시며
이 시내를 건너가시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악한 무리들에게 자신이 체포되시는
마지막 시간과 장소가 다른 곳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 기도의 장소로 삼았던
기드론 시내 건너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맞이하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이 아침 마음 깊이 닿아지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장소를
어디에서 맞이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를
암시해 주시는 교훈도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2. 예수님의 체포를 주도한 유다가 서있는 자리[18:4]

어찌되었던 예상대로 배신자 유다는
악의 무리들을 예수를 체포할 수 있는 장소로
이끌어오는 끄나풀 역할을 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유다의 모습은
단순히 끄나풀 정도가 아니라
악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예수님의 체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18:3]

이 같은 배신자 유다의 모습이 가장 안타깝고
가련하게 여겨지는 모습은 요한의 설명처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는 구절입니다.

한 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랐던 제자의 무리에
서 있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무리에
서 있다고 하는 이 대목이야말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람의 무서움을 보여주며

내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주님 편에 서서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겸손히 마음을 낮추고 기도해야할 필요를 일깨워줍니다

3. 내가 그니라 [에고 에이미-나는 ooo 이다] [18:4,6,8]

예수님의 체포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말씀은 “내가 그니라”는 구절인데
요한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을
세 번이나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8:4, 6, 8]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의
가장 선명한 표현인 “에고 에이미[나는 ooo이다]가
요한복음에서 모두 일곱 번이 소개되었는데

이제 이 모든 에고 에이미의 총체적이며
절정적인 표현인 “에고 에이미” 가
여기 겟세마네 동산에서 악한 무리들에게
체포 되는 장면에서 되 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악한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질문하셨을 때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그것도 세 번이나 밝힘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의 체포가 여느 다른 범죄자들처럼
막다른 상황에 몰려서 체로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이 체포되시는 주도권을 가지시고
모든 상황을 당당하게 주도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예수님의 위엄 있는 모습에 잡으러 온 사람들이
도리어 뒤로 나자빠져 땅에 엎드려지는 모습이야말로
예수님은 그를 믿고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 조차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정도가 아니라
땅 바닥에 엎드려져도 모자랄 만큼
권세 있는 하나님 되심을 엿보게 합니다.

묵상적용

4. 베드로의 칼에 잘려진 말고의 귀 [18:10]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두려움과 분노가 겹쳐져 나타난 베드로는
칼을 휘둘렀는데 예수님의 제자로서
칼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것도 문제지만
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신이 곧 붙잡힐 것을
암시했던 그 밤에 이미 이 칼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을 앞에 놓고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를 칼로 표출한 베드로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으로 받아드린
예수님을 비교하여 대조시킴으로써

때로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당면하는 억울한 일들과
고난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더불어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AD95년경]
로마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심했는데

당시 핍박당하는 초기교회 예수 신앙의 공동체가
자신들의 고난을 어떤 자세로 받아 드려야하는지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났던 그 밤의 교훈을
일깨워주며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핍박의 상황에 몰려있는
자기 백성들을 내버려두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오늘 나에게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나는 어떤 자세로 받아 드려야하는지 일깨워줍니다.

하늘의 열두 영 더 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하기보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받아 드리고[마26:53]
스스로 묶임의 자리로 나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영원히 내 마음에 기억해야할 아름다운 초상입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 예수님 !

악의 무리에게 잡혀가는 순간에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계시하는
신적 권위의 모습으로
모든 상황을 당당하게 주도하신
주님의 모습을 내가 배우기 원합니다.

분하고 당황하여
칼을 사용했던 베드로의 방법으로가 아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기꺼이 받으시는 주님의 방법을
내가 잘 배우고 따라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