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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야고보서 *

야고보서 2:1-13 사람을 차별하는 죄 넘어서기

by 朴 海 東 2015. 12. 21.

 

 

 

사람을 차별하는 죄 넘어서기

야고보서 2:1-13

묵상내용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있은 후
사십 일을 세상에 더 체류하시다가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승천 사건과

또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으로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대로
예수님 승천 이후 십일 후에
다락방에 임했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복음의 세계화가 급속히 퍼져나갔고
예루살렘 교회를 시발로 처처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모여지는 곳에는
사람의 출신 성분과 성별 그리고 외모와 소유의 다소로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고 차별이 존재하게 되는 것처럼
교회라고 해서 그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혈육 동생이었지만
주님의 종으로 자처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 야고보는
주님의 심장으로 영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곧 세상의 교회들을 향해 적어도 교회 내에서만큼은
세상적인 차별이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2:1]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2:9]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집단들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구조가 발생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이 존재하고
자신이 평가 받는 가치대로 대접을 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도리요 이치라고 하여도

적어도 예수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어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차별적 가치관이 개입되서는 안된다는 교훈이다

한국 교회사 130 여년을 돌아보는 초기 역사를 읽어보면
가장 감동적으로 닿아지는 이야기들은 다른 무엇보다
양반 상놈의 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에 교회가 앞장서서
반상의 차별을 넘어서서 예수 안에서 하나 된 것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서울 승동교회 이야기 인데
동학농민항쟁[1894년] 한 해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처음엔 사무엘 무어 목사에 의해
곤당골 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고종의 주치의 였던 에비슨이 이 교회를 다니자
많은 정부 관료와 양반들이 이 교회를 다녔는데
청일전쟁 이후 곳곳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에비슨과 동료 선교사들은 반상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게 되는데
이 때 많은 하층민들도 교회로 몰려 들어오게 된다

이 때 양반들이 상놈들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없다하여
따로 나가 홍문수골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3년 후
두 교회를 “승동 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라는 이 아름다운 사상은
조선 오백년 역사를 짓눌러온 반상의 차별을 없애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문을 열어놓게 되었다

이 교회에 백정 출신 박성춘 장로의 이야기는 귀감이 된다
당시 백정은 칠 천반(七賤班)이라 불리는
하류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백정은
인구조사에서도 제외되었고, 거주지역도 제한되어 있었다.

상투를 올릴 수도 없고, 망건이나 갓을 쓰는 것도 금지되었다
당시 망건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미성년의 표시로 여겨져서
백정은 나이가 많아도 아이 취급을 당하며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후에 이 교회의 초대 장로가 된 박성춘은
당시 내각총서로 있던 개화파 “유길준”에게
‘백정차별금지법’을 만드는 장문의 탄원서를 보내게 되고
마침내 그 요구가 관철되어 최초로 조선 500년 역사에서
반상의 차별을 없애는 길을 열어놓게 되는 것을 보면
당시 기독교가 차별적 제도에 매어있던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엿보게 한다.

묵상적용

반상의 차별을 초월한 서울 승동 교회와 유사한 기록들이
한국 교회 초기 역사에 많이 보이는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화 마을에 있는
금산사 교회 이야기는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닿아진다.

당시 그 지역의 일대 부호였던 조덕삼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미국 남장로교 Lews Boyd Tate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아
금산교회를 개척하고 자신의 재산을 들여 교회를 지었다
현재 전라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교회이다

언젠가 이 교회를 방문해서 “ㄱ”자 구조로 되어 있는
이 교회를 사진에 담으면서 이 교회 초기 역사에 얽힌
감동 깊은 이야기도 들었다

테이트(한국명:최의덕) 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은 조덕삼은
그의 전 가족 뿐 아니라 종들도 함께 세례를 받았는데
경상도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천애 고아 이자익 이라는
소년을 자신의 집에서 키워 마부로 삼았는데
그에게 글을 깨우쳐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였고
후에 같이 세례를 받았으며 교회의 일꾼으로 키웠는데
후에 이자익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선교사가 교회를
비울 때는 대신 설교도 할 수 있을만한 일꾼이 되었다.

후에 교회가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을 때는
주인과 종이 함께 후보로 추천되었는데
주인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종이자 마부였던 이자익이 선출되자 조덕삼은 앞에 나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께 감사하면서
성도들에게도 감사를 표한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종이었던 이자익을 존중하며 깍듯이 대하여
후에 신학교에 보내서 공부도 시켜 목사가 되게 했는데
이 분이 한국 교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연임하신 이자익 목사님 이다.
[13회,(1924) 33회,(1947) 34회(1948)]

반상의 차별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정신을 실천한
조덕삼[금산사 교회 두 번째 장로]의 이야기는
입 소문을 타고 퍼져서 용화리 마을 밖의 월평에 까지
펴져서 당시 차별로 눌리며 살았던 많은 여성들도
교회로 나오는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사에서 신분과 성별과 반상의 차별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던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더욱 귀감으로 삼고
이어가야 할 교훈 들이다.

금 수저, 흙 수저의 논란으로 사회적 차별이
더욱 심해지는 요즈음 교회가 세상과 다름을 보여주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보여주며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길은
야고보 장로가 전하는 편지[계시]의 말씀대로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 초기 역사가 보여주는 대로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우리 안에서부터의
조용한 혁명에서부터 시작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님!
주님의 교회에서 같은 성도되고
형제 자매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님께서 대신해서 피 흘려 죽어주실 만큼
소중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바라봐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