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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신명기*

신명기 14:22-29 물질사용에까지 미치는 거룩한 삶의 요구

by 朴 海 東 2016. 2. 3.

물질사용에까지 미치는 거룩한 삶의 요구

신명기 14:22-29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에 들어가 
수준 높은 농경문화를 이루고 살게 될 때
너는 매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명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가나안 땅은 석회질이 많아
썩 좋은 땅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는 것은 
지중해의 수증기와 팔레스틴의 열기가 헬몬산에서 부딪혀서 
파종기에 내리는 이른 비와 추수기에 내리는 늦은 비가 
적절한 시기에 내려져 풍부한 땅의 소산이 산출되기 때문인데 
이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을 보내었을 때 
포도 한 송이를 장정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왔을 정도 이다. 
(아마 포도 한 알이 주먹만 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 축복의 땅에서 보통 무화과나무의 열매나 감람나무 열매들은 
어린 아이 머리통 만했을 것이고 한 알이 주먹만 대추야자 열매는 
꿀 송이처럼 달콤한 과실이어서 야생 꿀만큼 단맛을 낸다고 하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밖에 적절한 때와 시기에 맞추어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로
가축들을 위한 초장의 풀들도 풍성하여 많은 우양들이 번식하니
땅의 소산 외에 가축의 십일조도 함께 드리라는 명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소(예루살렘 성소)가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이러한 물산을 가지고 가기가 어려운 지파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가지고 택하신 장소로 가서 
원하는 것들을 돈으로 사서 드리라고 하시며 그 날에 동행한 권속이 
레위인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시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황과 환경을 따라 규례와 명령의 적용을 적절히 조정해 주심을 본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구절은 
매 삼년 끝에는 소산의 십분의 일을 택하신 장소인 
중앙 성소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성읍에 저축하라고 하시는데 
이는 그 성읍의 가난한 자들[레위인/객/고아/과부 등]을 위한 
사회복지 기금[물자]를 조성하여 그들 역시 배부르게 만들어 줌으로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이 임하게 되리라고 하신다.[14:29]

혹자는 삼년 끝에 드리는 십일조는 본래의 십일조 외에 드리는
또 다른 십일조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신학자들의 의견을 분부하나)
성전의 운영을 위해서가 아닌 각 지파가 사는 성읍의 가난한 자들 
곧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사회복지차원의 기금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 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써 십일조 개념의 새로운 면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에 새기는 교훈은

1.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십일조를 헤아려 드림으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으로써 십일조이며

2. 이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거룩한 신앙의 표시로써 나타내는 십일조 이고

3. 특별히 (매 3년 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기금 조성으로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유지하게 되는 비결로써 십일조 이다.


[적용 1]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돌보심 의지하기

어제 수요일 저녁은 평소 수요 기도회를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거실에서 수요기도회를 가졌다
오늘 말씀의 본문을 펴놓고 함께 읽은 후 
각자 묵상 후 서로 나눔을 시간을 갖게 되는데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선교사 가족인) 우리는 레위인에 속하나?
아내는 내게 왜 이렇게 물어보았을까?
성경에서 자기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레위인에 대하여
고아나 과부의 레벨 선상에 놓고 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내가 잠시 멈칫하다가 답변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하늘 양식에 의존해서 살아가니
이 시대의 레위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해놓고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내용을 돌이켜 보며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고 살았는가 보니 
정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선교사로서 교단이나 교회의 파송을 받지 못하고  
자비량으로 떠났던 선교사역 20여년 전과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선교지를 떠나 돌아와 있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니 때 마다 순간 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는 주님이 챙겨주시는 참 신기한 체험을 하였다
아침 기도동산에 나가는 길에 
갑자기 어떤 분을 위해 기도할 마음이 생겨서
그 분의 가정과 사업체를 위해 기도를 하였는데 
저녁에 우연히 인터넷 뱅킹 온라인을 열어보니 
헌금과 관련해서 나와 전혀 사전 교감이 없었던 그분에게서 
선교헌금이 들어와 있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주님은 이렇게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 주장해 주시며
또 내가 기도하게 된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임의로 주장하시는 것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의 사정을 알아주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백성(성도)들을 통하여 
필요를 채우시며 돌보아 주시는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네가 드린 소산의 십일조를 통하여]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하는 객과 고와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9] -아멘-


[적용 2] 물질사용에까지 미치는 거룩한 삶의 요구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영역이 매우 다양하다
어제의 말씀에서는 장례문화와 음식문화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물질을 사용하는 문제에 까지 관여하신다.

매년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인 성전에 바치라는 것과
삼년에 한번은 거주하는 성읍에 저축하게 하여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라는 것이다

물질의 소득을 이렇게 사용할 때에 " 손으로 하는 모든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는 약속도 덧붙이고 있다.

하나님앞에서 깨끗한 물질생활의 비결은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눔을 위해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표현되게 하셨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이 십일조에 대한 규례가 어떻게 적용되야 하는가 이다
율법폐기론자들은 율법이 완성된 신약시대엔 
율법에 속한 십일조에 대한 규례도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구약의 율법 규례를 들어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견 동의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된 우리에게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써 최소한 십일조의 정신을 강조하셨다면
적어도 이 정신 만큼은 우리 시대에도 계승되고 적용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굽의 노예생활에 메여 살아야 할 자들이 자유인들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복락의 땅에 들어가 풍성한 물질의 소득을 얻었을 때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응답으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마땅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생명을 얻고 자유함을 얻은 신약의 백성들에겐
나의 생명과 삶의 존재 전체가 이제는 모두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감안 할 때 
꼭 십분의 일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이제는 너희 몸/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롬12:1- )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신약의 백성들에겐 
구약의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최소한의 기준 그 이상이 되어 
물질로 주님을 섬기는 일의 거룩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지금 내가 가진 모든것이 주께로부터 말미암은 주님의 은혜 입니다
물질로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않게 하시고
즐겨 냄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물질생활의 거룩함을 보이게 하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