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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욥기 *

▼ 욥기 34:1-20 생명 없는 하나님 지식과 무익한 훈수와 충고들

by 朴 海 東 2016. 2. 12.

생명 없는 하나님 지식과 무익한 훈수와 충고들

욥기 34:1-20

묵상내용

32장부터 길게 이어지는 엘리후의 변론과 충고에는 무슨 특별한 내용이 있어서
고난 속에 있는 욥을 치유하고 앞선 세 친구의 변론을 능가할 만한 것이 있는가
기대해보지만 어제 오늘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는 바
그것이 그것이고 저것이 저것인 두나 마나한 훈수요 충고인 것을 봅니다.

욥은 거룩하신 전능자의 위엄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부정한 자가 아니요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온 자신의 삶에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답변해 주시기를 바라는 차원에서의 항변 이었고 투정의 모습 이었는데

욥과 같은 고난의 깊이에 들어가보지 않은 앞선 세 친구나
새롭게 등장한 엘리후나 모두가 문제의 핵심을 집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 마나한 충고나 두나 마나한 훈수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엘리후는 앞선 세 친구와 별로 다를 바 없이
욥의 고난과 그에따른 심리적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욥을 법정 죄인 다루듯이 몰아 붙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 34:7-9]

욥의 고난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한 인간의 순전한 믿음을 놓고
하나님의 명예를 건 한 판 승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모든 상황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엘리후의 입에서 욥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보면서

나도 내가 전달하는 설교에서나 누군가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상담에서
상황을 깊이있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유념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 마나한 충고나 두나 마나 한 훈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내 자신이 고난 당하는 사람의 깊이에 들어가는 것이고
고난 당하는 사람의 실전에 내 자신이 서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한 가슴에 품어낼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깊이에 들어가보지 않는 한 해결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의로우신 분으로써 죄인의 자리에 서시고 치욕의 십자가에 못 박힘 당하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또 그 십자가 사건이 가져다 주는 결과만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게되는 천태만상의 고난의 깊이들을 이해하고
진정한 회복과 치유자로서 내가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표면에 드러난 일들만 가지지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아무리 길게 늘어 놓은들 그것들은 모두 무익한 변론이며
생명 없는 하나님 지식에 불과한데
엘리후를 통해 나나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번지르하게 보여도
고난 가운데 처해있는 욥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34:10-20]

이 아침 이렇게 엘리후의 말을 비평하고 있는 나 자신도
욥의 세 친구나 엘리후처럼 같은 우를 범했던 동일한 사람인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나의 실수와 허물을 이 아침 겸허히 받아 들입니다.

생명있는 하나님 지식에 나 자신을 세우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진정한 치유자로 다가가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빗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진단하고 판단하며 훈수하고 충고했던 것들을 회개합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말들이 쓸데없는 훈수나 충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에 깊이 들어가 체휼한 자로서 사람들에게 다가 갈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