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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욥기 *

▼ 욥기 42:10-17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by 朴 海 東 2016. 2. 12.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욥기 42:10-17

묵상내용

욥기의 전체 내용을 어떤 주제로 포괄하여 접근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인데
시련 가운데 흔들리던 초기교회에서 기둥같은 장로 역활을 감당했던 야고보 사도는
"인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 보라 !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리니
---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1]

오늘의 말씀은 욥기의 결론부분으로써
극심한 고난 가운데 처하여 출구가 보이지 않던 욥에게도
몇 달 동안 헤멘 것 같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 [욥7:3]
마침내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나온 해피엔딩의 축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인내하는 고통이 썼던만큼 더 달디 단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1. 축복의 문을 여는 시발 점: [42:10]

그런데 모든 것들이 꼬이고 힘들었던 그에게 축복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시발점은
뜻 밖에도 자신을 위로하기 보다 공박하며 고통을 주었던 친구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욥기42:10]

자신의 회복을 위해서보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할 때
자신의 문제는 절로 풀려지고 잃었던 모든 소유의 갑절로 받게되는 이 말씀은

오늘 나에게 막혀있는 축복의 문을 열고 막힌 통로를 열기 위해
내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내가 땅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막혀있는 상태에서는
이미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축복들이라도 보류될 수 있음을 봅니다

용서의 문제와 관련하여 나를 섭섭하게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관련하여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리라는 말씀이
이 아침 내 마음에 닿아집니다. [마18:18]

나에게 축복의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인간관계의 막힘이 무엇이 있는지
이 아침 내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 내가 주의 전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이러한 이 문제들에 대해 막힘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2. 처음보다, 과정보다 끝이 좋은 축복 [욥기 42:12]

처음에 크고 화려하게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그 과정을 지나 결말에 가서
더 좋은 결과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고난과 인내의 대명사가 된 욥에게서
처음보다, 과정보다 끝이 배나 더 좋은 사람의 축복을 봅니다.

---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욥기42:12]

나도 욥처럼 처음보다 그리고 과정보다 끝이 더 좋은 사람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직도 미로를 헤메고 터널을 지나가는 것처럼 빛이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야고보 사도의 권면처럼 욥을 보면서
주님께서 내게도 시작보다 끝을 좋게 해주실 결말을 바라 봅니다 [약5:11]

주님 !
내가 지금 어려운 가운데 있는 것 조차도 주님의 선하신 손길 아래 있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는 분 이심을 기억케 하소서

3. 욥이 받은 축복 중 풀리지 않는 한 가지 난제에 관하여 [욥기 42:13-16]

욥에게 닥쳤던 쓰디쓴 고난의 기간이 지나가고 다시 광명한 날이 도래하여
그가 잃었던 재산들을 더블로 받는 축복이 소개됨과 아울러
그가 잃었던 열 자녀[아들 일곱 딸 셋]도 다시 받게됨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새로 얻은 열 자식이 이미 죽고 없어진 열 자식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왕이면 가축때를 배로 주신 것처럼
열 자식이 아닌 스무 자식을 주시면 똑 같은 더블 축복이 되고 더 좋을텐데...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잃었던 일곱 아들을 대신해 일곱 아들을 대신 주시고
잃었던 세 딸을 대신해 아리따운 세 딸을 주셨다는 말씀에서
아들 딸 성별을 정해주시는 신비한 영역도 주님께 속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며

잃었던 열 자식에 대해 똑같이 열 자식을 새롭게 주었다는 말씀 가운데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전에 존재했던 열 자식들은 욥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던 자식들로 생각됩니다
오죽하면 그들이 잔칫날 마다 무슨 죄를 짓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잔치날이 지나면 으례히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하며
한 자식, 한 자식에 대한 번제를 드렸다는 기록을 보면 [욥기1:5]

이전의 자식들은 욥에게 근심 덩어리들 이었음을 유추하게 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부하여도 자식들의 근심 덩어리가 되면 무슨 축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모든 가축떼[재산]을 더블로 받은 것 뿐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새로운 열 명으로 받으며 특별히 아리따운 세 딸이 자랑스럽게 강조되는 것을 보면
잃었던 열 자식들에 대한 충분한 위로와 보상이 된 것을 엿보게 됩니다

4. 아름다운 노년과 임종을 맞이하는 축복 [ 욥기 42: 16-17]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고난의 심연을 맛보았던 자
욥에 대하여 그의 노년과 말년의 임종이 아름다웠던 것을 소개하는 말씀에서
인생살이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의 말년이 어떤 것인지 봅니다

그것은 객사나 횡사나 병사로 단명하거나 비명에 가지 않고
충분한 수[壽]를 누리면서 자기 당대에 몇 대로 이어지는 후손들을
자기의 눈으로 보면서 늙어 나이가 차서 자연사로 주님께 돌아가는 것 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환난과 핍박을 통과해야 했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했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인생사에서 욥이 행복하게 눈을 감은 행복한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말년에는 내게도 이런 은혜를 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기

주님 !
길고 길었던 욥기 말씀의 묵상을 오늘로써 마감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욥에게 허락된 고난을 통하여 참 순전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았으며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의 변론을 통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나타나셔서 들려주신 말씀을 통하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 깊이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을 눈 뜨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날 동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풍부함에 이르도록 말씀과 성령안에 자라가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의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